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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랑 무화과 따먹은 추석이야기

팔순과 텃밭에서 배운 사람과 자연의 시간

by 이디뜨


늦은 아침을 먹고 치우고 나자, 어머님은 다용도실에서 갖가지 모자를 꺼내 펼쳐놓으셨다.

"모자 하나씩 골라 써라! 햇빛 뜨겁다."

자주색. 주황색, 갖가지 무늬가 휘황찬란한 모자들의 등장에, 세명의 딸들이 재밌어하며 하나씩 골라 썼다.

나는 아이들이 고르고 남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텃밭 가자! 손녀들 텃밭 구경시켜 줄게. 너네 집에 갈 때 가져갈 대파랑 얼갈이도 뽑아오자! 도시 살면서 언제 텃밭 구경하겠노."

그렇게 우리는 어머님의 텃밭으로 향했다.




어머님이 나고 자라신 고향집 자리에는 큰 도로가 나는 바람에 옛집이 사라졌다. 대신 어머님은 근처 아파트에 사시면서, 옛 고향집 근처에 텃밭을 일구고 계신다.


손녀들이 할머니의 텃밭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머님, 아버님은 손녀들에게 각종 작물의 이름을 알려주시느라 바쁘셨다.

밭 입구에서부터 쪽파와 콩, 가지, 대파, 고추, 배추가 각자 알맞은 크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결명자와 녹두가 마치 들꽃인 듯 자라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두 작물의 모습은, 모르고 지나쳤다면 그냥 풀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아버님을 따라서 위쪽 둔덕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들깨와 마늘도 심어져 있었다. 꺾어진 밭 한쪽에는 동그란 애호박 한 덩이가 무성한 호박잎과 꼬불한 줄기 사이에서 대롱거렸다.


아이들은 잘 가꿔진 텃밭이 신기하다고 조잘대면서 텃밭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막내는 익숙하게 밭을 누비는 할머니의 능숙함에 감탄하면서 할머니께 고추 따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아이들이 텃밭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오히려 텃밭 한편에 있는 그루의 나무들에 관심이 갔다. 나는 주황색 점박이 나비가 우아한 날갯짓으로 대추나무와 감나무를 오가는 모습에 한참 동안 시선을 뺏겼다.


"다 농약 안 친 거다. 그냥 그대로 키운다. 새도 먹고 벌레도 먹고. 우리도 가끔 따먹고."

농약을 치지 않으셨다는 어머님의 말씀대로 대추나무에는, 설익은 대추와 반쯤 익은 대추, 햇빛을 잘 받는 쪽에 있어서 빨리 익은 대추가 제각각의 모습이었다. 대추들은 똑같은 빛깔과 크기의 마트 대추들과 사뭇 달랐다.

감나무에도 아직 떫어 보이는 초록색 감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이 가까워 빨리 익은 주황색 감들은 반쯤 파여 새와 벌레들의 달콤한 먹이가 되었다.




나는 대추나무에서 대추 하나를 땄다. 윤기 나는 대추를 옷에 슥슥 닦아서 한입 베어 었더니, 퍼석하지만 달콤하고 생생한 자연의 맛이 났다.

"어머님! 금방 따서 엄청 싱싱해요."

"저 아래에 무화과도 따먹어라."

어머님이 아래쪽 무화나무를 가리키셨다.


아직 연두색인 작은 무화과와 입술처럼 벌어질 듯 말 듯한 노란빛 무화과는 기다림이 필요해 보였다. 자줏빛 붉은 무화과에는 손끝에 끈적한 당분이 묻어 나왔다. 손에 쥐고 자세히 보니 수십 마리의 개미가 달콤한 과육을 점령하고 있었다. 바글바글한 개미들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나는 손에 쥔 무화과를 바닥에 내던지고 말았다. 다시 한 개를 따서 개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맛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덜 익어서 사 먹는 무화과만큼 달콤하지 않았지만, 나무에서 바로 따먹는 기분이 설렜다.




얼마 전 무화과 한 상자를 사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거 어릴 때 동네에서 놀다가 흔하게 보이는 나무에서 자주 따먹던 건데..."

"무화과를 어떻게 흔하게 따먹어?"

남편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개구쟁이 어린이였던 남편도 무화과를 따먹다가 개미들에게 놀란 순간이 있었을까?'


세 그루의 과일나무는 나에게 달콤하고도 소소한 자연의 가르침을 주었다. 과일은 위치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고, 맛있게 먹으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자연 상태로는 새나 벌레들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나는 굳이 농약을 치지 않으신 어머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님의 텃밭은 소일거리로 하신다기에는 규모가 컸다. 일 년 전보다 밭이 넓어지고 작물 종류도 많아졌다. 지인이 가꾸던 바로 위쪽 텃밭을 이어받으셨다고 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면서도 하루에도 몇 시간씩 텃밭을 일구시는 어머님, 아버님의 근면한 시간이 넓은텃밭에 녹아 있는 듯했다. 나는 유난히 뜨겁고, 유독 남부지방만 가물었던 올여름의 시간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연신 감탄의 말을 쏟아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희보다 건강하신 것 같아요. 이 넓은 텃밭을 어떻게 매일 돌보세요? 저희는 못할 거 같아요. 엄마, 아빠는?"

"나는 못해."

"나도 자신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단하신 거지."

부부의 이구동성 대답에 아이들은 말했다.

"우리는 그냥 마트에서 사 먹어야겠다."




나는 대파 몇 뿌리를 쑤욱 뽑아 그 자리에서 뿌리를 자르고 다듬었다. 잠시 허리를 숙여 일하는 동안 내리쬐는 뙤약볕에 머리가 핑 돌고 허리와 무릎이 아파왔다. 조금 일하고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이에, 어머님은 익숙한 손길로 어린 배추를 뽑아 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네는 땀이 날듯 말 듯 어지럽고 힘들제? 우리는 매일 하는 일이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한다. 집에 가서 싹 씻으면 그만이다. "

텃밭 장인의 내공에서 나온 명언이었다.

어머님에게 텃밭 가꾸기는 소일거리 차원을 넘어서, '살다 보니 거기 있는 하루'나 다름없었다. 내가 힘들어한 잠시 동안의 텃밭 체험 시간이, 어머님에게는 평생 동안 일상 그 자체,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버님도 말씀하셨다.

"새벽에 엄마 따라 텃밭에 가서 오전 내내 잡초 뽑고, 기둥 세우고, 거름 주고, 물 주고 하지? 다음날 오면 또 한껏 자라서 할 일이 그대로다. 농사는 끝이 없는 일인거지."

"우리가 먹는 모든 먹거리는 누군가의 손길이 거친 것이네요."

"텃밭에 잠깐 있는 것도 힘드니까, 이 중요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 같아요."

다시 할머니집으로 오는 길, 아이들은 작물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깨달은 듯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걱정되어서, 텃밭 그만하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도, 이날만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딸들에게 뿌듯한 듯 부모님의 텃밭을 보여주었다.




전날에는 동갑인 어머님, 아버님의 합동 팔순 잔치가 있었다. 스무 명 남짓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건강한 모습으로 두 분이 함께 팔순을 맞게 되어서 마음이 뭉클했다. 일찍 돌아가신 친정부모님 얼굴도 아른거렸다.

평소 무뚝뚝하던 아들 둘과, 며느리들도 그동안의 감사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건강을 기원했다. 코끝이 찡해지고 눈이 얼얼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텃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카페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텃밭으로 향했던 오전의 시간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와 이불 위에 풀썩 쓰러져 내리 네 시간을 잤다.

꿈속인 듯, 식구들 라면 끓여 먹는 소리를 시끄러운 자장가 삼아 실컷 자고 일어나니, 부엌에서는 어머님이 갈치를 굽고 계셨다.

"더 자라! 실컷 자라. 밥 되려면 아직 멀었다."

"실컷 잤어요. 제가 아까 일시적으로 더위를 먹은 거 같아요. 텃밭에 잠시 있었다고 그러네요."

식탁에 숟가락을 놓고 그릇에 밥을 퍼는 내 손길에 민망함이 묻어났다.

"엄마 텃밭에서 과일 따먹고 대파 조금 다듬었다고 지쳐서 몇 시간을 잔 거야? 하하하"

저녁 식탁에서 아이들이 놀리듯 말하자 어머님이 덧붙이셨다.

"매일 하는 사람이랑은 다르지. 안 해 보면 힘들다."




어머님의 인내와 포용은 80년의 연륜과 텃밭에서 깨친 자연의 섭리에서 온 것일까?

팔순과 텃밭이 남긴 여운은 작은 감동으로 남았다.

자연스럽게 때를 기다려야 원숙해지는 것은 사람과 자연이 똑같다. 나는 앞으로도 가을 하늘 아래 흙냄새와 단냄새가 어우러지던 오늘이 자주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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