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손끝, 취미 변천사

by 이디뜨

나 어릴 적 우리 집엔 통기타 한 대가 있었다.

삼십 대였던 아빠가 취미로 치시던 기타였다.

야간 근무를 가시기 전 낮이나 주말이면, 아빠는 기타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 '돌아와요 부산항에' 같은 트로트를 연주하곤 하셨다.

그때 나는 아빠 손에 쥔 둥그런 각의 세모난 플라스틱이 '피크'라는 도구라는 걸 처음 알았다.

뚱땅뚱땅 아빠가 기타 줄을 튕겨 연주하시는 트로트 한 자락이 좁은 아파트 천장을, 작은방 카펫 바닥을 울릴 때, 부엌에서는 압력밥솥에 밥이 되어 가는 찰찰찰찰 소리와 보글보글 된장찌개 냄새가 내 귀와 코를 자극했다.

"아빠가 군복무 할 때 기타를 배우셨대."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나는 질문했다.

"근데 왜 아빠는 항상 트로트만 연주하시지?"

국민학교에 다니던 나는, 기타로 트로트를 연주하는 아빠의 취미가 적잖이 시시해 보였다.

클래식을 연주하면 세련되고, 트로트를 연주하면 촌스럽다는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면, 기타 치는 아빠 옆에 앉아 좀 더 다정한 딸 노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빠! 동요도 연주해 주세요!" 하면서 말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아빠는 한때, 수지침도 취미로 공부하셨다.

때 우리 집에는 침술 도구와 부항 기구, 한의학 책, 인체 도면을 그려 빽빽하게 침술 공부를 한 종이뭉치들이 그득했다.

아빠는 한의사가 되고 싶으셨던 걸까? 단순한 취미라 하기에는 꽤 오래 진지하게 공부하셨다.

가족들이 아플 때 직접 침을 놔주시기도 하고, 입소문이 나서 이웃 아이들이 체하거나 급하게 어디가 안 좋을 때 몇몇이 우리 집에 와서 간단한 처치를 받고 가곤 했다.

나는 아빠의 수지침 키트를 열어 알코올솜으로 닦아 정리를 도우곤 했다.

도구 정리가 재밌기도 하고, 반쯤은 아빠를 한의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기타와 침술 두 가지 취미가 서서히 아빠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우리 집이 이사를 가고 아빠가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부터였다.

아빠는 어느 날부터 텃밭 가꾸기에 몰두하셨다.

지금은 텃밭을 가꾸어 건강한 먹거리를 손수 짓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활동이, 평범한 직장인이 시간 내어 할 수 있는 아주 건강한 취미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호미와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아빠의 모습이 멋져 보이지 않았다.

텃밭 일은 막걸리 한 잔과 함께일 때가 많았기에, 막걸리 심부름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발라드 가수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내던 그 시절에, 아빠는 회사 일과 텃밭 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셨다.

우리는 대화가 없었다.

밤늦게 독서실에서 나오면, 빙긋이 웃으며 마중 나와 계시던 아빠와 무슨 말을 하며 집까지 걸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고 보니, 아빠의 삶이 다시 보인다.

때로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취미 한 가지로 고된 삶에 휴식 한 스푼을 더하고,

못다 이룬 꿈이었을지도 모르는 한의학 공부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접는 결정을 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할 것도 아닌데 취미로 더 해서 뭐 하게?' 하며 애써 멀리하셨을지도...

IMF를 맞아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고, 고용 불안이나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아빠의 쉼터는 텃밭이었다.

땅을 파고 잡초를 뽑으며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야 눈앞의 현실을 잠시라도 잊었으리라.


그것이 아빠가 사는 방식이었음을, 이제야 돌이켜 보니 보인다.

통기타, 수지침, 텃밭으로 이어지는 아빠의 취미 변화는 단순한 취향 변화가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는 삶의 여정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재충전하고, 수지침으로 몸과 정신을 돌보는 치유의 시기를 거쳐, 텃밭 가꾸기, 즉 자연 속에서 평화를 찾는 취미로 이어진 것이다.




아빠가 퇴직하신 후 우리 집에 손주들을 봐주러 자주 와계실 때였다.

아빠의 일상이 무료해 보이던 어느 날 아빠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아빠는 왜 옛날부터 영화 보러 안 다니세요?"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아빠는 대답하셨다.

"사느라 바빠 그런 데 관심 둘 시간이 없었지."

"아빠! 다시 옛날처럼 기타 연주 해주세요. 또 듣고 싶어요." 라고 말씀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아빠가 돌아가신 지 십 년도 넘어서야 아빠의 취미 변천사를 돌아본다.


기타 줄을 튕기던 멋쟁이 아빠

꼼꼼하고 차분하게 침술을 공부하시던 아빠

성실하게 텃밭을 일구던 묵묵한 아빠

밤길에 독서실 앞에 마중 나와 가방을 들어주시던 아빠

무엇보다, 손자, 손녀와 같은 눈높이로 친구가 되어 주시던 다정한 아빠


아빠가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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