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yes24 건축가 유현준 씨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다음으로 나온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 작은 건축가로서의 유현준 씨의 소견이 덜 드러난 것 같아. 한번 읽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런가 이번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꺼내 들기 망설인 것도 있었습니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런 생각들을 깨 주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완성하셨다고 하는데 그 내용들과 고민 그리고 유현준 씨의 생각은 그 짧았던 원고 완성의 순간에도 잘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비롯한 건축학적 주제뿐만 아니라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씨와 정재승 씨 그리고 김영하 씨와 있으면서 토론하게 된 사회적 이슈들을 건축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잘 풀어나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로이드와 르 꼬르뷔지에를
로이드는 외재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건축 스타일 르 꼬르뷔지에는 내재적인 건축 자체로서의 건축
이라 정리하신 것부터 유현준 씨의 건축 담론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고민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학술적 내용이 아닌 유현준 씨가 아는 두 거장의 차이를 유현준 씨의 단어로 설명하니 그 둘의 개념 차이가 더욱더 확실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이 책에서 유현준 씨는 그동안 아마 건축이 국내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문 개발서 정도의 건축적 소양을 담았던 이전 책을 뛰어넘어
유현준 씨가 건축을 할 때 설계를 할 때 가지는 건축가로서의 생각과 자존심 그리고 고민이 훨씬 명확하게 드러나서 너무나 반가웠던 책이았습니다.
'유명인사 유현준'이 아닌 '건축가 유현준'을 만나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건축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는 발달하지 않은 탓에, 통상 《공간》 잡지나 《환경과 조경》같은 잡지를 보는 것으로 건축에 대한 갈망을 풀어왔었는데요. 유현준 씨의 이번 책은 이러한 갈망을 완화해주었습니다. 늘 생각했지만 말할 사람이 없어 혼잣말하는 것 같았는데 이 책을 보니 말동무가 생긴 기분이었습니다.
서울과 지방을 인구밀도로 나눠 설명한 대목에서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개념이 확실해졌습니다. 요즘은 지방에도 마트, 아파트 같은 필수 대형시설들은 다 들어섰지만 정작 2~30대들은 여전히 서울로 상경하는데 그걸 명확히 설명해줄 이유를 찾지 못했었습니다. 유현준 씨는 이것을 인구밀도에 연관시켜 인구밀도가 떨어지니 지방에 현대미술관과 같은 젊은 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기본적 인구밀도에 미달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젊은 층은 계속해서 서울 수도권으로 상경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설명했습니다. 낮은 인구밀도는 결국 경제활력을 저하시키고 낮은 경제활력은 카페와 같은 제3공간의 질적 하락을 야기시켜 젊은 층을 계속해서 서울로 상경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제3 공간, 저렴하거나 뉴욕처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공원이나 미술관, 지역별 접근성 좋은 도서관 같은 의식주의 반경에서 벗어나는 제3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뉴욕을 예시로 들며 뉴요커가 아무리 작은 집에 살아도 주변에 걸어가기 좋은 제3 공간이 많아 끊임없이 도시가 발전하고 사람이 몰린다는 것을 책으로 확인하니 제3공간의 도심에서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또 정책적으로는 지금처럼 계속 공공기관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지방의 특정 중심지역에 몰아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인구밀도를 유지하려면 지방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닌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골목길"을 단순한 길이 아닌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정체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서울지역에 골목길은 상당히 흔했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도심개발이 이뤄지더니 골목길은 사라지고 대형 아파트의 담장으로 막힌 길만 남게 되었습니다. 유현준 씨는 도시와 건물의 경계가 없는 현재의 길은 궁극적으로 미래 세대들로 하여금 자연과 변화하는 풍경으로 멀어지게 만들고 미디어 즉 스마트폰과 같은 매체에 몰입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어쩌면 아파트와 다 똑같이 생긴 학교에 갇힌 세대가 만들 미래가 다양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현준 씨가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설계하려 했으나 공공기관이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려될 때 느꼈을 절망감을 생각하니 우리나라 건축 현실 특히 정부와 관련된 건축사업들이 얼마나 큰 생각 없이 이뤄졌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또 사회적 이슈와 연관시켜
기둥식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건물의 수명을 높여야 한다는 환경적 주장
도심을 개발할 때 강남을 바라보고 강남처럼 만들지 말고 지역의 특색을 맞춰 개발해야 성공한다는 조언
골목길을 무조건 없애지 말고 골목길의 형태는 어느 정도 유지하되 건물을 새로 올리고 그 뒤에 마천루를 올려야 골목길이라는 중간지대가 남게 돼 사람들이 더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
접근성 좋은 공원을 만들기 위한 공원의 위치와 조건
애플 신사옥을 통해 보는 애플 사옥이 개선해야 할 점
폐쇄적 건축이 낳은 요즘 세대의 정주공간은 스마트폰을 위시로 한 미디어 세계라는 주장
도심에 사람을 몰리고 더 치밀하게 설계해 진짜 모든 사람이 연결될 수 있게 해야 인류가 발달한다는 생각
이것뿐만 아닌 건축의 기본적 구조적 요소를 통한 건축가로서의 소견, 현대건축의 구조체가 보이지 않아 감동이 떨어진다는 의견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게 만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유현준 씨는 건축사회활동가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건축이라는 주제가 정말 미약하고 왜 건축이라는 요소를 생각해야 하는지 조차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유현준 씨가 같이 대중서적을 통해 건축의 중요성을 설파해주는 것이 의식을 바꾸는 데에 큰 기여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의식이 바뀌어야 우리나라의 경관이 바뀌고 그 경관을 통해 인간이 더 자유로운 생각과 교류를 하고 그 결과로써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으니깐요.
사회를 개혁해야 바꿔야 한다는 서적은 많았지만 유현준 씨와 같은 건축가로서의 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바라본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더욱 영감을 줌과 동시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 충분해 보였습니다.
말로서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가지고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하는 사람과 건축을 실제로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 혹은 관찰하게 된 것 아는 것을 바탕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건축가로서 책임을 지고 그 바탕으로 사회가 필요한 것들을 주장하는 이 책이 참 맘에 들고 멋있었습니다.
책의 핵심은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파생되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유현준 씨는 이것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에 대한 답은 우리들이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개발 어떤 건물이 그냥 올라가는 것을 넘어선 그 건물에 담길 우리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어떤 건물이 살고 어떻게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었습니다. 유현준 씨는 큰 틀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 큰 틀 안에서 어떻게 될지는 우리 개개인이 어떤 공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책은 유현준 씨의 생각을 알았으니 유현준 씨가 실제로 설계해 완성되었거나 완성되지 못했지만 유현준 씨의 생각이 드러나는 건물을 보고 싶어 졌습니다.
유현준 씨를 통해 거장 건축가들의 이야기나 건물을 듣기보다는
한국인 건축가 유현준 씨의 건물, 이야기 그리고 생각을 보고 싶습니다.
또 유현준 씨 주위의 한국인 건축가, 건축사무소 혹은 친한 건축가들은 어떤 건축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담론을 가지고 건축에 임하는지 보고 싶습니다.
또 한국 건축가로서의 생각도 보고 싶어 졌습니다.
다음 책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