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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Sep 11. 2023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

[유연한 세상에서 원칙의 세상으로] 심정중심주의와 복합유연성을 넘어

제17대 대통령 선거 - 2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선 TV광고 (*정치적 댓글은 지양해주세요^^;;)

눈 내리는 하룻날 저녁, 시장 국밥집에서 국밥을 만드는 할머니가 보인다. 한 중년남자가 국밥집을 들어오자, 국자로 국밥을 뜨고 있던 할머니는 대뜸 반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 오밤중에 웬일이여? 배고파?”

그리고 국밥이 든 뚝배기를 들고 들어오며 격한 말을 계속 내뱉는다 “맨날 쓰잘데기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랄이여. 에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중략) 밥 더 줘? 더 먹어 이눔아~”


이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기호 2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선 TV광고 중 일부입니다. 이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컨셉을 활용한 대선tv광고는 지금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대선 광고로 뽑히고 있죠.


외국에 없는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욕쟁이할머니라는 존재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지역 곳곳에 존재하는 오래된 음식점에서 구수한 욕을 내뱉는 할머니들이 실제로 적지 않는 수가 존재했었습니다.


욕쟁이할머니 음식점 에피소드는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순풍산부인과>와 같은 TV 시트콤과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 그리고 광고 캠페인에도 활용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원래는 욕쟁이 할머니가 아니었지만 욕쟁이 할머니붐에 편승하여 새로 만들어진 가게도 적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컨셉만 따갔다고 할까요? 저도 예전에 회사에서 영업 직무로 일할 때, 욕쟁이 할머니 집이라는  간판이 달린 음식점에 가본 적이 있는데, 기대했던 욕의 달인(?)의 모습을 코빼기도 찾아보지 못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이, 일명 욕쟁이 컨셉 음식점에는 ‘욕쟁이 할아버지 맛집, 욕쟁이 아줌마 맛집, 욕쟁이 아저씨 맛집’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욕쟁이할머니 맛집’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로 이 욕쟁이라는 수식어에서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 계층은 할머니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지만 주로  묵묵히 가족을 위해 헌신한 모성애가 담겨있는 푸근하고, 정 많고, 챙겨주는 존재이기에 욕을 하더라도 정말로 혐오를 담아서 욕하는 게 아니라 애정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형태이기에 일종의 츤데레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래서 예전에 손님도 할머니 음식 맛이 괜찮으면 굳이 과격한(?) 서비스 태도를 문제 삼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그 욕을 단골에게만 허용된 친근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었죠.


그런데, 생각을 다시 해보면 이러한 '욕쟁이 할머니 맛집'은 그 자체가 성립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돈을 내고 적당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내 돈을 내고 밥을 사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 원치도 않은 '욕설'을 들을 일은 보통 없으니깐 말이죠. 적어도 외국인들에게 '욕을 하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소개하는 '위너 서클'(Wiener's Circle)'에서의 에피소드 (*유튜브 링크)

물론, 외국에 욕을 하거나 과격한 언사를 하는 음식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시카고의 유명 핫도그 전문점 '위너 서클'(Wiener's Circle)'의 경우가 대표적이죠. 이 시카고의 명소는 핫도그의 맛뿐만 아니라, 예의 없는 직원들로 유명합니다. (특정 시간에만 그렇다고 합니다만) 이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손님에게 욕설을 하고 그들을 다른 사람 앞에서 깎아내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정확하게 한국의 '욕쟁이 할머니'와 닮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위너 서클'에서는 손님들도 똑같이 직원들에게 욕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뤄지는 이 욕배틀 자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죠.


그럼, 이렇게 받은 욕을 그대로 돌려주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욕쟁이 할머니집'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님께서는 tvN <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여, 한국인들이 욕쟁이 할머니에게 욕을 먹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를 '심정중심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보통 마음을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명확한 행동으로 판단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회는 행동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그 반대로 마음을 보자고 덤비는(?)는 것이 한국인의 진심 확인법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초해서 봤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주인집 할머니에게 욕을 먹어도 괜찮은 이유는 욕이라는 행동 안에 담긴 할머니의 '진심'을 알고 있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이를 한국인의 '복합유연성'과 연결하여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복합유연성'이란 양극적 가치나, 관계를 순환적, 반복적으로 사고하려는 경향. 쉽게 말해서 어떤 극단적인 가치를 양 극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서로 상극인 가치를 순환적이나 복합적으로 사고하며 둘 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성향이라는 것입니다.


집밥의 경우는, 집에서 자체적으로 해 먹는 만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고 조리가 번거롭지만, 취향에 따라먹을 수 있고 가족이 밥을 해준다는 정이 가득합니다. 반대로 외식의 경우는 번거롭지도 않고 간편하지만, 돈을 낸 만큼만 먹고 집에서 가족이 해주는 '정'을 느끼기도 힘들 것입니다. 서로 양극단의 가치를 지니고 있죠. 하지만 욕쟁이할머니 음식점 같은 경우는 표피는 분명 외식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지불한 음식을 제공받고 그에 따른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는 곳이지만, '서비스직'의 본분에는 다소 어긋나지만, 그 츤데레 같은 욕설을 받으면서 마치 실제 시골 할머니집에서 느낄 수 있는 집밥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죠. 결국, 한국인은 외식과 집밥 둘 다의 양극단을 포기하지 않고 이 욕쟁이 할머니집을 통해 이 복합적인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분석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생들이 학생의 문턱을 지나, 성인이 되어 사회로 진출하고 있는 지금의 2020년대는 이런 문화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11월에 방송된 SBS <골목식당>의 ‘맛있게 먹자 빌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맛있게 먹자’라는 긍정적인 대사와 악당을 의미하는 ‘빌런’이 합쳐지게 된 이유는, 당시 방송에 출연한 돈가스집 사장이 학생으로 보이는 손님에게 돈가스를 내오면서 “자. 맛있게 먹자”라는 반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장님은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을 하지도 않았고, 단지 실제 친할머니와 같이 정겹게 ‘Have a Nice Meal!’라는 인사말을 던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사장님은 빌런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낸) 손님에게 반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사장님의 속 마음이 '손님이 아니라 내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는지 안가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 사장님은 빌런이 되었습니다.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실제 속마음이 아닌 행동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사회는 심정중심주의나 복합유연성과 같은 유연한 세상에서 원칙의 세상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원칙의 세상’을 사는 앞으로 세대에게 복합적이면서 모순적인 한국인만의 모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젠 나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친할머니와 동년배 식당 사장님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할머니고 사장님은 사장님일 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을 찾기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도 2000년대 초반처럼 욕쟁이 할머니 맛집이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 2018년 3대 천왕, 그리고 2021년 현주엽tv에 등장한 평창동 욕쟁이 할머니를 반론으로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당 욕쟁이 할머니집은 진짜 욕쟁이가 아니라 일종의 ‘욕쟁이 콘셉트’에 가깝다고 봅니다. 진짜 욕쟁이 할머니는 시작부터 욕지거리를 던져야 하지만, 해당 방송에 등장한 음식점의 할머니는 기본적인 예의와 존대어가 장착한 상황에서 적절한 상황이 되었을 때만 적당한 수준의 ‘욕 드립’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렇게 '유연성의 세상에서 원칙의 세상으로 넘어가고 있는 현상'의 이론적인 부분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피드백과 반론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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