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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Sep 03. 2023

특정 세대가 아닌 한국인이 변하고 있는 것

[빨리빨리 문화의 변화] 융통성의 세상에서 규칙의 세상으로 

안녕하세요! 편집왕입니다. 

오늘은 제가 요즘 강연할 때, 앞부분에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이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은 ≪2000년생이 온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글의 내용은 '2000년대에 출생한 세대의 변화'에 집중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예전 [연재 2화]에서 세대와 시대의 관계의 물고 물리는 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린 바 있지만, 제 브런치 글을 읽으실 때마다 <2000년생>이라는 프레임이 계속 생각나실 겁니다^^ (이것이 대다수 부정적 댓글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오늘은 그 '2000년생'이라는 숙명(?)의 프레임을 벗어나서, 좀 더 변하게 '지금 시대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시대의 변화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은, 2000년대생을 비롯한 특정 세대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넘어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한국인(Korean)'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비교해서 봤을 때, 한국인들은 공통점이 많은 편일까요? 아니면 차이점이 많은 편일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사람들만이 가진 특이한 점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한국인들의 특징이라면, 역시 '김치'를 빼놓을 수 없겠죠? : ) 어려서부터 김치를 먹는 연습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테니깐요. 


이와 관련해서, 오래전부터 인터넷에서 전해져 온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한 외국인이 한국인을 보고 "아무리 김치를 좋아하는 너희라도,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 김치를 같이 먹지는 않을 거 아냐?"라고 물어봤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 외국인은 분명 한국인의 '김치 사랑'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김치볶음밥에 김치 반찬을 먹는 것도 부족해서, 김치찌개까지 곁들여서 먹는 민족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런 식성에 대해서 "이상하다"라는 생각조차 품지 않죠.  



저는 한 외국분이 한국에서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고백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보통 쌈장에 찍어 먹지만, 고추장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ㅋㅋ)


그런데 이런 식성과 관련한 차이점 말고, 전 세계인들이 대표적으로 말하는 '한국인들의 특징'이 뭐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빨리빨리!! 입니다.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PALI PALI!)'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 정도로 '한국인' 혹은 '한국'을 이야기할 때, 이 빨리빨리는 가장 먼저 언급되는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하두 빨리빨리를 외쳐서 국가번호도 82번이 되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죠. (물론 이 말은 진실이 아니고, 국가번호는 국제 전기 통신 연합 (ITU)에서 E164라는 국제전기통신규격에 따라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왜 진짜 82번인가요? 아시는 분?


아무튼,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라고 하죠.  

그것은 바로 무빙워크입니다. 공항터미널이나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볼 수 있는 이 무빙워크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죠. 아시죠? 무빙워크에서 서 있는 한국인을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죠. 


그런데 저는 '한국인들이 무빙워크에서 걷거나 뛰는 이유'가 단순히 빨리빨리 문화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무빙워크를 보는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 봅니다. 


원래, 무빙워크(Moving Walk)란 '사람이나 화물이 자동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든 기계'를 뜻합니다. 즉, 서 있어도 자동으로 이동을 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 이 무빙워크를 우리나라말로 다듬어서 '자동길'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고 있죠. 


전 세계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무빙워크를 '자동으로 이동하는 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인식 자체가 다릅니다. 


네. 한국인들에게 무빙워크는 '자동으로 이동하는 길'이 [인간의 이동속도를 높여주는 도구]로 인식이 됩니다. RPG 게임에 나오는 이동속도 +1 부츠처럼 말이죠. 


이러한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에스컬레이커나 무빙워크에서 "걷거나 뛰지 말라"는 호소가 통하지 않는 것이죠. (*저 위의 사진은 제가 얼마 전에 김포공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모든 무빙워크에는 '걷거나 뛰지 마세요'라고 적혀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한국사람들만이 겪는다고 알려진 난독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죠. "당! 기! 세! 요!"

아무리 많이, 당기세요를 붙여놔도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으니까요

애걸복걸해도 소용없죠. 왜냐고요? 우리는 아무리 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을 거니깐요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깔끔하게 당겨달라는 요구를 포기하는 가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죠. 


사실, 우리 인간의 신체적 구조상, 당길 때보다 밀 때 더 적은 수고가 들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미는 행위가 익숙하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공통적인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난독증은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지 못하는 단어가 '당기세요' 하나만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기세요라고 써 있으면 밉니다. 반대로 '미세요'라고 적힌 문은 당기죠. '고정문'이라고 버젓이 써있는 문은 한 번쯤 흔들어봐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러한 한국인들의 특징(?)이 마치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다고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정해져 있는 그대로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말을 듣지 싫어서'가 아니라, 故정주영 명예회장님의 명언인 "이봐~해봤어?"처럼, 도전하는 의식이 좀 더 가미가 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당기세요'나 '미세요'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이유는 사실 우리의 과거 학습 데이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에 '당기세요'가 써있지만, 실제로 문을 밀었을 때 밀리는 경험을 한 번쯤 하곤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고정문]이라고 써있지만 고정되어 있지 않은 문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이러한 학습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뭐라고 써있더라도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버릇이 생겨난 것이죠. 


그래서 저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의 이면에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통 한국인들이 '효율을 추구하는 방법 자체'가 '누가 지시한 방향'이나 '매뉴얼'과 같이 정해진 바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자체적인 생각과 판단에 따라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고,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창의적으로 산업을 일구는 과정에서 학습된 생존전략일 수 있습니다. 기존의 만들어놓은 원칙이나 매뉴얼 자체도 없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시행착오를 이겨내는 방식이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극강의 효율러'인 우리 한국인들은 모든 영역에서 효율적인 선택을 취합니다. 


가령, 일면식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겉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데는 긴 시간이 들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누군가를 깊게 알기 위해서는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친밀감을 가지는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저 조용히 않아서, 그 긴 시간을 인내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로를 빨리 알기 위해 일종의 지름길을 택하죠. 


그것이 바로 우리 조직사회의 국룰과 같이 여겨졌던 '회식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회식(會食)이란 사전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를 뜻하지만, 보통 '술'이 가미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로가 마주 앉아 술을 한 잔하며, 각자가 친 마음의 벽(AT필드)을 잠시 내려두고 빠르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개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몇 살인지"를 확인한 뒤에 사회적 서열을 자연스럽게 정리합니다. 과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회식을 진행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나요? 아니면 '한 달에 몇 번 이상 회식을 해야 한다'라고 취업규칙에 적혀있나요? 그렇지 않죠. 회식은 원칙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팀 자체적으로 알아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의적 선택들이 모여서 문화가 되었을 뿐이죠.  


하지만, 이런 회식문화가 지금의 세대가 유입되면서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회식' 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수년 전부터 많은 회사들의 회식은 점심회식으로 대체가 되었고,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서 사전에 공지된 일부 회식만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죠. 


그렇다면, 앞으로 2000년대생을 비롯한 지금의 젊은 한국인들은 누군가를 알아가고자 생각이 없는 것일까요? (오로지 일터에서 일만 한다고 할지라도 서로를 알고 진행하는 것이 용이할 텐데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젊은 한국인들도 기존과 마찬가지도 똑같이 누군가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지, 기존과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전에 올린 글에서, 상대방의 MBTI를 묻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말씀드렸죠? 이것이 그들 입장에서 서로를 알기 위한 하나의 방식입니다. 참조로 외국에서는 똑같은 젊은 Z세대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MBTI를 잘 묻지 않습니다.


단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방법 자체가 과거 팀단위 혹은 개인단위로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회식'이라는 방식에서, 서로가 (과학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을 그렇게 믿고 있는) 성격유형을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타입별로 조심해야 할 점이나, 나와의 궁합에 있어서 상대방과의 관계의 지름길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젊은 남녀가 소개팅할 때, 서로의 MBTI를 묻는 것을 넘어서, 인스타그램의 탐색버튼(돋보기)를 눌러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인스타그램에서 탐색버튼 안의 나타나는 콘텐츠들은 개인이 평소에 선호했던 콘텐츠에 기반하여 추천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탐색버튼 안에 있는 콘텐츠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취향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되죠 (*저 위의 이미지는 현재 제 인스타의 추천콘텐츠들입니다. 저는 복싱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이러한 트렌드로 봤을 때, 기성세대든 젊은 세대들 모든 한국인들은 똑같은 '극강의 효율러'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그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일 뿐입니다. 


저는 이 방식을 [융통성의 세상]에서 [윈칙의 세상]으로 넘어간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말은 과거의 한국인들이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유연하고,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의 효율은 딱딱 정해진 매뉴얼이나 원칙을 통해 이뤄지는 방식으로 변경될 것이라 의미입니다.   


말이 조금 어려운 것 같아서, 아래 하나의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버튼의 이름이 뭔지 아시나요? 


이 버튼의 이름은 '비상점멸표시등'으로, 우리는 흔히 이를 '비상깜빡이'라고 부르죠. 

그렇다면 이 버튼은 언제 사용하는 것일까요? 쉽습니다. 말 그대로 '긴급하거나 위급할 때' 즉, 비상시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버튼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자면, "미안해", "고마워", "한 번만 봐줘", "우리가 남이가",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의 다채로운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우리 사회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바로 이 '비상깜빡이'의 사용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이 비상깜빡이를 사용하는 이들이 무지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간혹 모두가 순서를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중간에서, (심지어 차선을 변경할 수 없는 실선구간에서) 무리한 끼어들기를 하고 비상깜빡이 버튼을 누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많은 한국인들이 "아~그래. 그래도 최소한 운전 매너는 있네"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저는 앞으로 그렇게 정이 넘치는 결말은 흔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위 도표는 지난 10여 년간 공공기관 공익신고 접수 추이입니다. 10여 년간 점진적으로 공익신고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 증가추이가 2020년대에 들어와서 급격하고 높아졌다는 점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에 접수된 공익신고는 10년 전과 비교하여 약 13배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우리나라 공익신고의 80% 이상은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입니다. 스마트폰 혹은 블랙박스를 통해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누군가를 신고하는 것이죠. 만약, 누군가가 과거와 같이 도로교통법을 살짝 어기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비상등 점멸을 시도하더라도 결국에는 교통범칙금 딱지를 받게 될 것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근 몇 년 사이의 한국 사회가 '융통성의 세상'에서 '원칙의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회의 많은 곳에서 새로운 갈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통 그 양 끝단에 서로 다른 세대가 위치하다 보니 많은 갈등을 'MZ세대 vs. 기성세대'의 대결구도로 봅니다만, 많은 수의 갈등은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라  융통성의 세상과 원칙의 세상 사이의 갈등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무한 뷔페 논쟁도 위와 결을 같이 합니다. 

한 무한뷔페 초밥집에서 인당 50~60 접시 이상을 먹자, 사장님이 '너무 많이 먹어서 마진이 안 남는다'며 그만 먹고 퇴정 하기를 요구했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었고, 논란은 "'무한 리필 식당'에서 손님이 어느 정도까지 먹는 것을 용인해야 할까요?"로 번졌죠. 



아무리 뷔페여도 상식을 넘어서는 리필 요구는 '민폐다'라는 의견과 무한뷔페 집에서 무제한으로 식사를 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사기다'라는 의견이 맞섰죠. 이것이 바로 융통성의 세상과 원칙의 세상의 갈등입니다.


앞으로 이런 융통성과 원칙의 갈등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관리해 나가느냐가 바로 사회의 갈등을 줄이는 키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다음 주에는 이 한국인의 변화와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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