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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Aug 27. 2023

왜 인세는 꼭 10% 여야 하죠?

[도서출판 11%] 창립 비화 및 제조업으로서의 기본에 대한 생각 전달

지난주 '납득이'에 대한 이야기를 드린 것과 관련하여, 제가 2년 전에 한 2001년생 대학생 친구 A씨와 나눈 한 가지 일화를 공유드려볼까 합니다.  


한 지역 토크콘서트에서 만난 A씨는 출판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짧은 시간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질문을 던졌고, 저 또한 '왜 출판에 관심이 있는지' 등등이 궁금했기 때문에 자뭇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그는 '예전 알쓸신잡에서 봤는데, 대체 왜 인세는 딱 10%인 것이죠?"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아마 그는 2017년 알쓸신잡 '경주로 가요' 편에서 김영하 작가님과 유시민 작가님의 대담을 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당시 '작가는 모두가 가난한가'를 주제로 토론이 펼쳐졌을 때 김영하 작가께서는 "인세는 일반적으로 10%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다 10%" 라는 말씀을 주셨었고,



이에 유시민 작가께서는  "작가가 돈 얘기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라고 말씀하시며, "작가가 너무 돈을 밝힌다고 소문나기 때문에" 인세는 항상 10%를 받는다고 화답하셨죠.


누군가 저에게 ”이 말(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인세는 똑같이 10%)이 맞는말이냐?“라고 물어보신다면, 절반은 맞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소위 유명하고 잘 나가는 작가에게도 10%를 제안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든 저자가 10%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출판사가 첫 책을 내는 저자들에게는 8% 이하의 인세를 제안합니다. (*그래서 저도 첫 책은 8%, 그 이후의 책들은 10% 인세 계약을 했습니다)


인세와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보통 인세의 많고 적음의 적절성을 논쟁하곤 합니다. 가령, ‘저자 입장에서 8%는 너무 적다’ 혹은 ‘출판사 입장에서 10%로 주는 것도 부담이다’와 같은 논쟁들 말이죠.


그런데, 앞선 A학생들의 질문은 상대적인 인세의 높고 낮음을 물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10%라는 기준 자체가 합당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꽤 오래전에 첫 책을 낸 저도 ‘10% 기준’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적이 없기에, ’도대체 왜 10%인지‘에 대한 문헌 조사를 진행해 봤습니다.


문헌 조사와 출판인들의 인터뷰를 한 결과, “왜 10%인지에 대한 결론”을 꽤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유 없음” 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늘상 모두 그렇게 해왔기 때문” 정도가 될 것 같군요.


2013년에 나온 관련 기사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좀 더 구체화된 워딩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이래 지속 돼온 출판계의 암묵적 관행

솔직히 저는 10%든, 11%든 크게 상관은 없다고 봅니다. 단지, 다수의 출판 계약을 직접 해보고, 주변 지인들의 출간 계약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10% 보다 낮은 계약은 많지만, 10% 넘기는 계약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부 10%를 넘기는 계약은 쉬쉬하며 진행된다는 의미입니다.


위의 문장은 올해 한 출판 제작 수업에 참여하면서 경력이 출중한 편집자 출신 강사분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저자에게 10% 이상 인세를 주면 안 된다고 강조하신 이유는 뭐 특별한 사유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출판사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만든 출판사가 도서출판 11% 입니다. 이 출판사의 차별점은 “유명 저자든 초보 저자든 모두에게 동일하게 11%의 저작권사용료(인세)를 드리는 것입니다. 암묵적인 관행은 따르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것이 기존 출판사들에 비교하여 1%를 더 주는 것으로 저자들을 유인하는 유치한 Cost Leadership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1%가 그리 큰 차이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 얼마 안 되는 1%를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중쇄가 일어나고 판매가 늘어났을 경우, 단계에 맞춰 인세을 자동으로 올려주는 방식(에스컬레이션이라고 부르더군요)을 채택했습니다.


2만부 이상은 12%, 3만부 이상은 13%, 4만부 이상은 14%, 5만부 이상은 15%. 모든 저자 동일한 계약서 적용입니다.  평소 “중쇄가 늘어나면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에서 왜 사전에 저자가 요구를 하지 않으면 이러한 특약을 넣지 않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이 또한 클리어하게 적용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개선책들이 대단하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단지 제가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납득이 되지 않은 것들을 온당한 모드로 바꾸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원래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식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출판업계에 조금 관여하게 되면서 (처음부터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분들과 비교하여) 다른 업계와 비교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들이 있습니다.


<중쇄 찍는 법: 읽은 독자에서 읽는 독자로>라는 책에서는 저자 박지혜 대표님이 과거 출판사 편집자로 일할 때 겪었던 한 가지 일화가 나옵니다. 출판사 직원들의 근면한 업무 태도를 강조하던 당시 대표님께서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출판업은 제조업입니다. 여러분은 저자가 아니라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죠.


서적출판업(업종코드 221100)의 업태는 현재 정보통신업에 속해있지만, 그 시작점과 본질은 “제조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지식을 창조하고 문화를 선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책”이라는 물리적 상품을 제조하는 틀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저도 제조업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조업’의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햇반을 한 번 예로 들어볼까요? 햇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원재료인 ”쌀“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햇반을 만드는 제조사는 이 쌀과 용기를 먼저 구매하고, 이 원재료와 용기를 통해서 햇반이라는 제조품을 생산하여 이마트 같은 유통업체로 출고하여 판매를 촉진하는 활동을 진행하죠.


여기서, 원재료를 제공한 쌀 값은 언제 지급할까요? 당연히 제품을 만들기 전에 필요한 만큼의 쌀을 산지로부터 구매하고, 쌀값을 지급하겠죠?


이게 보통 제조업의 현금흐름입니다.

같은 제조업인 출판계로 한 번 돌아와 보죠. 책을 만드는데 가장 필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글’을 제공하는 저작권자 저작권(Copyright)과 그 글을 찍어낼 수 있는 그릇인 종이(펄프)입니다.


출판사가 제조사라면 이 글값과 종이값을 어느 시점에 지급해야 할까요? 제공받은 시점에서 지급해야겠죠? 그래서 출판사는 종이를 구매하고 책을 찍어낼 때 종이값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그 글값인 저작권만은 다릅니다. 저작권은 언제 지급할까요?


보통은 책을 찍어낼 때가 아니라, 책을 유통사에 건네고 그 책이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판매가 되었을 시점에서 지급합니다. (판매부수 기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책이 최종적으로 판매가 되지 않고, 반품이 일어나면 그 값을 빼고 인세를 지급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햇반을 제조해서 파는 (주)CJ제일제당이 수요예측을 제대로 못하거나, 유통 과정 중에 파손되거나 반품된 햇반의 값을 역으로 쌀 생산업체에 청구하나요? 그렇지 않죠?


하지만 출판사는 이를 저작권자에게 청구합니다. 저는 이게 제조업으로서 유일무이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품을 최소한으로 예측하고 관리하는 일은 제조업체/유통전문업체의 기본적인 업무이고 능력입니다. 이걸 원재료 업체에게 분담시킨다고요? 우리는 그것은 보통 불공정거래라고 부르죠.



지난주에 많은 분들이 저에게 “부디 초심을 유지하고 흑화 되지는 마시라”라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이기 때문에 저 또한 언제든 흑화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흑화 되든 흑화 되지 않든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도서출판 11%]와 계약을 하는 저자님에게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나 출판사를 믿지 마십시요“ ”누군가를 믿고 말고 할 것도 없고, 우리 출판사에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물어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고요? 찍은 대로 그냥 다 드리고, 반품이고 증정이고 우리가 다 부담할 테니깐요 “


지금도 많은 저자들이 자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투명하게 볼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이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시스템 등을 만들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생각을 한 번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애초에 “왜 저작권자가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를 알아야 하나요?” 햇반에게 쌀을 제공한 생산업체가 햇반이 얼마나 팔렸는지 물어보나요? 그걸 왜 궁금해하나요? 이미 다 돈을 받고 거래를 끝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보통의 제조업체가 하는 권한과 책임입니다. 저는 이러한 노멀 한 시스템을 구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전 28화 2000년대생은 모두 '납득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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