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11%의 '도서 개별 인증 프로세스' 개발 소식과 함께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편집왕입니다!
오늘은 옛날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릴까 해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출판 경험이 없던 저는 책이 어떤 식으로 출간이 되고,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출판계에 있었던 여러 경력자분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구하고 다녔었습니다. 물론, 작가로서 '글만 잘 쓰면' 됐지만, 호기심이 많은 제가 처음 경험하는 업계였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 출판업계 경영자로부터 아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출판업은 사실 부동산업이에요"
그는 "많은 수의 출판사는 하나의 초대박 베스트셀러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의 책이 잘되면 이익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그 이득으로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에는 책이 아닌 부동산에서 돈이 나오니 떵떵거리며 사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별로 중요하게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맥도날드의 레이크록(Ray Kroc)이 이미 1974년에 '난 햄버거가 아니라 부동산 사업을 한다'라고 이야기한 판에 출판회사가 부동산으로 이득을 내는 게 무슨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말 끝에 "만약 임 선생이 나중에 책을 내게 되면, 인세를 제대로 받는지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라는 조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꽤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엇비슷한 경고와 조언을 들었었습니다. '출판계 판매 구조는 투명하지 않다', '저자 몰래 책을 더 찍기도 한다', '초보 저자에게 인세 8% 제안을 하는 곳과 계약하지 말라', '자기들도 몇 권 팔리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인세를 제대로 주냐?'와 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를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웹드라마 ≪좋좋소≫의 정필교 사장처럼 말이죠.
이러한 마인드가 깨진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 후, 실제로 '억'이 넘는 인세가 임의로 미지급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였습니다. (이 자세한 사연이 궁금하시다면 '90년생이 온다 인세'로 검색을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1년 반이 넘는 소송 끝에 계약서에 적힌 그대로의 저작권료를 다 받아냈기 때문에 이 단일 이슈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이 과정에서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왜 출판계에서는 21세기 넘어서도 이런 고질적인 이슈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것이지?"에 있었습니다.
이러면 또 많은 분들이 저에게 되묻겠죠. "아~제가 아는 출판계분들은 그렇지 않던데요?", "당신이 당한 특수한 이슈를 전체화시키지 마세요"라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출판계는 다 썩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이미 출판업계의 일원이며 지금도 많은 수의 신실한 출판사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지, 저는 심성이 좋고 선량한 출판사들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죠.
사실 문제의 시발점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고 하는 [도서 위탁판매] 방식에 있습니다.
위탁판매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서점이 구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책을 받아서 우선 진열을 한 뒤 판매된 책에 한해서만 대금을 지불하고, 팔리지 않는 책은 반품하는 도서 유통 방식입니다.
이 위탁판매는 1909년 일본의 지쓰교노니혼샤(實業之日本社)가 서점에 <부인세계>라는 잡지를 판매하면서 최초로 시도한 방식( "우리 잡지 진열해 주실래요? 안 팔리면 반품해도 괜찮습니다")으로, 이 방식이 대성공을 이루자 단행본들도 곧 뒤따르게 되었고, 이후 "책과 잡지는 소매 서점이 돈을 먼저 주지 않아도 들여올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특수한 소매업태를 뒷받침하는 존재가 도서유통사입니다. 일본은 전국 서점의 90%가 대형 도서유통사 두 곳을 통해 책을 들여오고 있어서 한국의 도서유통사들보다 영향력이 막강하죠. 한국에서 일본의 [위탁 판매]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온 폐습'을 타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유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예전부터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서점 입장에서 당장 도서를 매입해야 하는 부담이 적고, 출판사는 자신의 책을 팔 공간을 구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상부상조하고 있는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위탁 판매 구조 안에서는 책이 얼마나 팔리고, 몇 개가 재고로 남아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안에서 출판사 자신도 자기들이 만든 책이 정확히 몇 개가 팔린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출판사들이 저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책이 팔린 기준으로 인세를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자신들도 정확히 몇 개가 팔린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팔린 기준으로 인세를 주겠다는 말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일부' 출판사가 장난을 칠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정확히 얼마가 팔린지 알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팔리지 않은 유통 재고'를 임의로 부풀리면 됩니다. 그러면 적어도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인 인세를 바로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재무적 메리트가 생겨납니다.
약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출판사들이 이런 '판매부수'가 아니라 '발행부수'라고 해서 '출고된 수(-반품)를 기준으로 인세를 지급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출판시장의 계속해서 축소가 되다 보니, 점차 '판매부수' 기준으로 인세를 지급하는 출판사가 늘어났습니다. 왜냐고요? 그 방식이 출판사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지금 당장 출판사의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팔리지도 않은 책의 인세를 달라고 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세한 출판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단지, 그러한 구조 안에서 투명한 인세 지급은 이뤄질 수 없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전처럼 (혹은 일부 대형출판사처럼) '발행부수'로 계약을 맺으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저작권자는 출고량과 반품 현황 등을 출판사 인세보고의 방식으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책 판매 현황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출판사의 말을 믿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저자 자신이 인쇄소나 물류창고에 컨택을 해서 인쇄발주증이나 재고 확인증 등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그 증빙자료가 위조되더라도 그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는 2021년부터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당 시스템은 도매상을 통한 위탁판매 형식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기껏해야 70~80% 수준의 판매/유통 정보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대형출판사를 중심으로 자체적인 '인세 공유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곳이 늘고 있지만, (직접 사용을 해본 입장에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궁극적으로 기존의 인세보고와 마찬가지로 출판사의 자체 보고(Self-Report)라는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 또한 결국 '시스템'이 아닌 '믿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14년 故 마광수 교수의 ≪인문학 비틀기≫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 20세기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인지(검인지)'가 붙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검인지는 신뢰가 낮은 우리나라 출판문화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1990년도까지 책 판권면에 저자의 인지가 부착되어 있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었죠. 과거에도 지금과 동일하게 판매 현황을 알 수가 없었고, 인세 누락 등의 이슈가 발생했기 때문에 저자가 직접 도장을 찍은 인지를 부착해서 발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작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2000년대부터 인지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저자와의 협의하여 인지를 생략 합니다' 문구가 대신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기사에서는 이것이 '출판계의 잊힌 낭만'으로 표현했지만, 제 생각에는 "출판계에서 쉽게 잊혀서는 안 될 규정'이라고 봅니다. 인지를 생략하는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출판산업의 고도화'를 내세웠지만 이 부분이 아직까지 합당할 만큼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검인지(인지)'를 부활시키는 대안이 현재로서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 간, 이 대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검인지' 또한 맹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검인지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위조할 수 있다는 것이죠.
1991년에는 ≪태백산맥≫이 인지위조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 출판사와 작가의 소송 전으로 비화되기도 했으며, 그전에도 작가의 도장을 맡아서 무단으로 책을 찍어내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과거의 '검인지'를 단순히 부활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는 위조방지 홀로그램 혹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를 적용하는 방식 등을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과제 성과물로 개발된 홀로그램 저작권기술을 활용하여,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과 미래기술연구소의 기술제휴를 받아 "도서 개별 인증 프로세스'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서 개별 인증 프로세스'는 쉽게 말해서, 위변조가 불가능한 검인지입니다.
이 기술은 미래기술연구소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스마트그램(Smartgram)이라는 위변조 방지 기술을 활용하여, 총 4단계(①홀로그램 ②invisible ink ③Water-mark ④Hidden Code)로 인증 단계를 구현할 예정입니다.
또한, 발행되는 모든 책에는 1권부터 발행 권수까지 한 권 한 권 개별 라벨링 된 홀로그램 스티커를 부착함으로써, 저자에게 몇 권이 인쇄되었는지를 정확히 알리고 그 수에 맞는 '저작권료(인세)를 입금드릴 것입니다. 몇 권이 인쇄되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인세 미지급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출판 법인(도서출판 11%)을 설립하여 이 개선된 시스템을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2000년생이 온다≫ 직접 출간하게 된 이유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를 처음 준비하는지라 많은 부분이 힘들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브런치스토리 '응원하기'와 관련하여
지난주 수요일(8/9)부터 카카오 브런치스토리의 새로운 응원하기 시스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이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매주 월요일에 <2000년생이 온다> 연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만약 저에게 후원을 해주신다면, 그 금액은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100% 공익적인 용도로 사용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가정 먼저, 이번에 개발한 ‘도서 인증 프로세스’를 다른 출판사들도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홀로그램 스티커 마스터 비용 및 출력 비용으로 활용/ 도서출판 11% 계약 도서는 제외)
사실 저는 나중에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되어 세상에 나올 ≪2000년생이 온다≫을 구매해 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11월까지 출간할 예정이며, 그전에 재미난 이벤트를 할까 합니다)
오랫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품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글이 다소 길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편집왕 임홍택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