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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Apr 24. 2023

2000년대생의 세 번째 세대적 특징 ≪초합리≫

[24화] 아날로그 인간 vs 반디지털 인간 vs 디지털 인간의 합리성

안녕하세요! 편집왕입니다!

이번주 브런치 글을 올리기 전에, 한 가지 공지사항을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사유로 <2000년생이 온다> 브런치 연재를 1차적으로 이번 주 24화까지만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연재를 영구히 중단하는 것은 아니고 재정비와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한 뒤 7월 말에 시즌2 연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매주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많은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다시금 전달드리며, 앞으로 많은 공부와 고민을 통해서 더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주 주제는 <2000년대생>의 세 번째 세대적 특징인 '초합리' 입니다.

합리(合理)란 사전적으로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 혹은 논리적 원리나 법칙에 잘 부합함을 뜻합니다. 흔히 최대한 '감정'이 아닌 '이성'에 근거한 판단을 이루려는 태도 혹은 성질을 말하죠.


특히, 고전 경제학 이론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보와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을 합리적 또는 경제적인 행동이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감정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해 왔습니다. 물론 21세기 현실 경제학에서 합리성이란 개념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전개되고 있지만, “보통의 인간들은 최대한 합리적 선택을 위해 노력을 경주한다”는 기본 명제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렵게 경제학과 심리학의 이론들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합리적이다'라는 표현을 딱히 부정적으로 느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란 것은 보통 긍정적인 의미를 뜻하죠.


하지만 그러한 '합리'가 적당 함이라는 선을 넘어서 지나쳐버리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날까요? ‘뛰어넘을 초(超)’자를 덧붙여, 지나친 합리 즉, 초합리(超合理)가 된다면 말이죠. 2000년대생분들의 마지막 공통적인 특징으로 저는 이 초합리(超合理)를 뽑고자 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합리적이고, 기성세대는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런 단정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순히 '출생연도의 차이 하나만으로 특정 기질이 생긴다는 주장'은 그리 설득적으로 들리지 않겠지요. 하지만 어느 시대에 출생했으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 노력을 하겠지만, 누군가는 '철저하게' 합리적인 선택을 요구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그보다는 '유연한 선택'을 선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철저하고 완벽한 합리'를 추구하고, 또 어떤 누가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디지털적이냐? 아날로그적이냐?로 나눠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많이 본 느낌이죠?

맞습니다. 사실 이번 주 내용은 새로운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몇 번이나 언급한 내용들을 정리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지금 시대에 이러한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하는 정도를 차이를 이루는 가장 큰 요인이, 살아온 환경이 '얼마나 디지털에 노출되어 있었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디지털이고 아날로그냐를 나누기를 어렵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휴대폰'을 예로 들어보도록 하죠.


 여러분이 생전 처음 쓴 휴대폰 브랜드를 기억하시나요?



만약 여러분이 처음으로 쓴 휴대폰 브랜드가 위의 브랜드와 같은 류에 속해있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처음 쓴 휴대폰은 스마트폰 종류가 아닌 피쳐폰(폴더폰)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10대 성장기가 아닌 20~30대(혹은 40대)에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기기변경을 했을 겁니다. (*제가 그랬죠^^)


그렇다면 적어도, 저와 같은 디지털 경험을 한 세대는 완벽한 디지털 인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좀 더 올라가, <걸면 걸리는 걸리버 폰> 혹은 "본부!! 본부!!"를 외치던, <애니콜 (영어 Anycall 아님 주의) 안성기 폰>까지 가보면 어떨까요? 확 추억의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죠? 이렇게 1990년대 초중반부터 휴대폰을 처음 경험한 세대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아날로그 쪽에 가까운 인간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의 90년대생 극후반 혹은 2000년대생분들은 최초에 쓴 휴대폰이 아이폰 혹은 갤럭시 같은 스마트폰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를 저는 디지털 인간에 가깝다고 나눠보겠습니다.   


(※노파심에 먼저 이야기하자면, 저는 아날로그를 '늙거나 구닥다리'라고 보고, 반대로 디지털을 '젊고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상대적인 차이점을 언급하기 위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1차적인 구분입니다. 이 1차 구분은 단순히 디지털을 접한 시기에 따른 세대적인 구분이기 때문에 완전한 구분법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아날로그적'이나 '디지털적'이냐는 판단하는 것이 단순히 어느 출생연도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일 것입니다.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서 한 번 아래 문장에 들어갈 단어를 떠올려보시죠!!


사실 이 문장을 제대로 넣을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대부분은 이 짧은 문장을 직관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이 "하면 된다!!"라는 문장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습니다. 문맥적으로 따져보면 "하면 ~이다"는 조건절에 해당되는데 "무조건 된다"는 것이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죠. 물론 우리 의지의 한국인들은 바로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하면 될까?"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소 한국적인 유연한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적 정형 사고'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되면 한다"와 같은 100% 확실한 조건 문장이 더 맞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이는 이런 식의 구분도 가능합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 어떻게 보면, K-직장인으로 가져야 할 하나의 덕목 혹은 능력이었다면, '디지털 인간'에게 이것은 애초에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먹어야지 정확한 판단이 되겠죠.


이와 같은 차이점에 대해서, 오랜 기간 IT기업에서 개발을 하신 한 선배님께서는 '지금의 디지털 세대들은 프로그래머적 사고를 한다'라고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약속된 특정 언어를 넣었을 때만 특정 방식으로 반응하게 설계가 되어있다는 것인데, 사람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었죠.


저는 아날로그 인간과 디지털 인간의 특징의 구분을 아래와 같이 진행해 보았습니다.

아날로그 인간, 디지털 인간 중에서 어느 인간형이 더 지금의 사회에 맞고 옳은지는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우리 대한민국은 원칙적이면서 가끔은 비정한 오른쪽보다는 왼쪽이 가깝다는 것을요.


참고로 저는 생물학적으로 80년대생이기도 하지만, 약간은 [디지털 인간] 쪽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 중간인 반 디지털 인간 ㅎㅎ) 그래서인지 저는 전통적인 한국 사회의 정에 의한 판단보다는 원칙에 맞는 판단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령, 저는 한국 사회에서만 자동차를 비상 버튼을 [미안해] 혹은 [고마워]로 사용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만의 '유연한 사고'를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일반적으로 비상버튼을 유연하게 사용하다 보니 '끼어들기를 하고도 미안함을 표현하면 된다'는 부작용이 퍼졌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아무튼 좋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날로그 인간이든 디지털 인간이든 모두 행동의 특성이 다를 뿐, 이 둘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두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아래와 같이, 정상적인 범위는 넘어서는 '비정상 범위'에 해당하는 인간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날로그 인간형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법과 원칙 따위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는 [막무가내 형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이를 [개꼰대]라고 부르는데, 꼰대 중에서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상꼰대를 의미하죠.


이와 반대로, 극단적으로 원칙만을 강조하고, 사람의 사정과 상황의 변화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정해진대로만 행동하려고 하는 경우 [사이보그 형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도 안해무인 혹은 또 다른 형식의 막무가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요즘 말이 나오는 [뉴웨이브 진상] 혹은 [젊은 진상]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자신의 논리만을 무적으로 내세우며, 상대방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가 이에 해당하죠.


우리는 간혹 이 양극단에 해당하는 사람을 특정 세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으며,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원료로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양쪽의 극단적인 일부가 아니라, 정상적인 범위 안의 사람들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의 양쪽의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엮어 나갈 수 있는 동물이니깐요.


또다시 재미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편집왕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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