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2개의 자아와 2개의 엔진을 동시에 돌려야 하는 운명적인 운명
안녕하세요!
이번 주부터 3주에 걸쳐, [2000년대생]의 '세대적 특징' 3가지를 서술하고자 합니다 : )
(금년 하반기에 나올 책에서는 일부 수정이 될 예정이지만) 우선, 저는 대한민국 [2000년대생]들이 공통적인 특징으로 초개인, 초자율, 초합리를 3가지를 뽑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초'의 한자는 뛰어넘을 초(超)로서 '뛰어넘다'라는 긍정적인 의미와 선을 넘어버렸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초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초개인을 말하기 전에 '개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個人)'은 말 그대로 [국가나 사회, 단체 등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원래부터도 하나하나의 사람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지만, 2002년부터 초저출산 국가에 진입하고 이제 국가의 소멸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그 하나하나의 사람은 국가와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보이게 되었죠.
하지만 국가와 사회를 넘어 '개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가 인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겠죠. 사실 예전 저출산 이야기를 할 때, 한 가지 빼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의 세대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3월 28일인 제가 인터뷰한 일본 요미우리 신문 특집 기사의 제목은 [결혼은 빈곤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작년에 쓴 책 ≪그건 부당합니다≫에 나온 내용을 일부 인용한 것인데, 핵심은 결혼 자체가 무조건 가난과 빈곤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지금의 경제 구조안에서 중간 수준의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과거에 윗 세대의 가장들이 회사형 인간이 되어, 회사에 충성하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러한 삶의 방식 자체가 그 시대에 합리적인 결과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가장 혼자서의 벌이로, 소위 '처자식(=4인 가구)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소득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활을 (좋든 싫든)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가장의 외벌이로 결혼과 출산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벌이가 필수가 되었고 그 맞벌이 상황과 기존의 믿음이 자연스럽게 상충되게 되는 것이죠.
KBS의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의 MC였던 유재석은 2010년 신년 특집에서 주위 패널들이 “결혼한 다음에 장단점이 어떤 것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수많은 장점이 있지요. 많을 것을 얻어요”라고 담대하고 모범적인 답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단점도 있을 것 아니에요”라고 몇 번을 보채자 그는 유일한 하나의 단점을 말합니다.
“단지, 나를...나를 잃었어요”라고 말이죠.
저출산 문제와 관련하여 복잡한 경제 문제와 사회 시스템 문제를 분석하기 전에, 결혼 그 자체의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나 자신을 잃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것은 마치 모든 것(everything)을 잃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예능에서 나온 발언일 뿐이니,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개인'의 관점을 넘어서는 '초개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초개인'은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 박사가 말하는 '개개인성(individuality)'이나 개개인 니즈를 예측하여 맞춤형 경험을 제공한다는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단순한 조작적 정의로서, 새로운 시대의 '초개인'은 개인이라는 하나의 존재를 넘어서 '확장된 2개의 자아를 갖춘 개인'을 뜻하는 것입니다.
'확장된 2개의 자아'가 인간의 이중인격을 의미하거나, 예전에 잠시 유행했던 '본캐 vs 부캐'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이들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현실 세계의 자아]와 [프로필 세계의 자아]를 의미합니다.
이를 설명드리기 위해서, (매우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을 예시로 들어보죠.
현실 속에서 저는 '임홍택'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이자, 한 가정의 가장 혹은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지금도 한 회사에 속해있는 근로소득자이면서 앞으로 뭘 해야지 먹고살 수 있나 걱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죠. 저는 주로 현실 세계에서 가족과 회사 동료, 혹은 친구들과 만나면서 각각의 역할에 맞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지 제대로 된 평판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가령, 글을 쓴다고 아이와 대충대충 놀아주거나 집 분리수거를 제때제때 안 하면 줘터지는 삶을 사는 것이죠.
반면, 저는 브런치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보통 '편집왕'이라는 필명을 쓰고 활동을 하면서, 제가 오늘 한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거나, 쿨해 보이는 모습만을 정제하여 포스팅합니다. 가령, 강연을 가거나 언론에 나오거나, 글을 쓰거나 여유롭게 평일에 산을 타는 모습 등을 올리죠. 물론 그 자체에 거짓되거나 과장된 활동은 없습니다. 단지, 온라인SNS 활동에 맞게 '제가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살뿐이죠. 이제 온라인 프로필에 접촉하는 대상 중 일부는 현실 세계의 지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 세상에서만 볼 수 있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얼마나 성실하고 진정성이 넘치는 인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로 표현되는 저의 팔로워수, 좋아요 수, 올라오는 포스팅 수와 같은 데이터일 뿐이죠. 이러한 데이터는 피드백을 걸쳐서 좋게 순화될 수도 있지만,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편집왕'은 제 부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필명은 제가 2010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시작한 명칭이지만, 제 현실의 삶과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보이고 싶은 부분만을 정제하여 올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브런치나 제 SNS를 보는 분들도 그러한 점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저 [현실 자아]라고 올린 프로필 사진조차 이미 포토샵으로 리터칭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딱히 180도 다른 인간의 사진이라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것이죠.
이렇게 '확장된 2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항상 의미가 있는 순간을 기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집니다. 주위에서 SNS를 운영하지도 않으면서 꼬박꼬박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죠? 그 이유는 '2개의 자아'를 가진 모든 이들은 필연적으로 ①내가 사물을 직접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②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도 함께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현실의 누군가를 보고 평가를 할 때, 누군가의 프사와 SNS프로필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관찰하게 되었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보는 법을 배우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죠.
인증샷을 찍는 순간, 나중에 이를 어디에 공개적으로 올리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행위를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2020년대 세상'을 살고 있는 2000년대생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2개의 자아'를 동시에 발달시키고, 검토해야 하는 인생이 (예전과 비교해서) 분명 더 고달프고 번거롭다는 것에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정말 100% 음식에만 집중하고 쓸데없고 번거로운 카메라 ON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습관적이고 강제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있을 테니깐요.
예전에 MBC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에서 ‘하이브리드 샘이솟아 리오베이비’라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추석특집 무한상사와 유재석TV 행쇼에 등장한 적이 있는 출연자 ‘하하’의 부캐릭터로 '하나의 심장이 멈춰도 하나의 심장이 뛰는 우월한 컨셉'을 잡고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두 개의 자아, 그리고 두 개의 심장을 함께 돌려야 하는 지금의 세대의 입장에서, 무한도전에서의 우월했던 컨셉과는 정반대로 열악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좋아서 두 개의 심장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의 마음으로 두 개의 심장을 돌려야만 합니다.
근로소득엔진 하나만으로 한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었던 과거에는 굳이, 위험성과 변동성이 높은 자본 소득 엔진을 필수로 돌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와 SNS상에서 개인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도 그리 크지 않았죠.
두 개의 엔진과 두 개의 자아를 동시에 돌려야 하는 상황은, 관심의 분화를 나타내게 됩니다. 과거에 한 회사 안에서 '성실성'을 바탕으로 조직 내 평판을 유지해야 했던 역할이 요구가 되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현실 세계의 성실함으로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회사 생활 외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우리는 (현실 세계에 기반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프로필을 유지하거나, 또 다른 자본소득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성실함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1차적인 자아가 있는 조직 생활 그 자체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일 자체가 그리 합리적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정년을 보장하거나 근무 시간의 여유를 보장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직 안에서의 로열티를 갖출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물론, '로열티가 강한 척'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마침 그런 거 참 잘하는 인간입니다.
저는 앞으로 '개인이 개인을 넘어서 초개인이 된 상황'안에서, 조직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관계주의를 어떻게 제대로 믹싱 하여 분석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