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겪는 새로운 과제 혹은 도전
셀럽과 일반인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저는 왜 오킹처럼 적극적이지 못할까요?
작년 한 강연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청년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끝나고 Q&A를 받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분께서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민 하나를 털어놨습니다.
해당 청년분이 가진 고민의 핵심은 평소 자신이 요즘 사람들처럼 인싸(인사이더의 준말)와 같이 행동하고 싶은데, 원래부터 내성적이었던 탓에 그런 적극적인 행동이 말처럼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질문 끝에 "나는 왜 오킹처럼 적극적인 사람이 되지 못할까요?"라는 자책성 발언을 덧붙였습니다. (*오킹은 트위치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1993년생 인터넷 방송인을 이야기하는데, 시청자에게 기부를 받으면 현란한 무릎춤을 추기도 하는 재기 발랄하고 개그감이 좋은 소위 말하는 인싸류의 셀럽에 속하는 친구입니다)
저는 질문을 한 청년이 자신을 인터넷 방송계의 셀럽과 비교를 하고 있다는 점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청년 시절 수많은 고민을 동일하게 했지만, 단 한 번도 저 자신을 그 당시에 잘 나가는 셀럽들과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제가 20대 때 주로 봤던 예능이 <무한도전>이었는데, 당시 그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왜 유재석처럼 센스 있게 상황에 맞는 개그를 치지 못할까?"라든가 "아. 나는 왜 노홍철처럼 긍정왕이 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요.
토머스 데이븐포트 같은 경영학자와 찰스 데버 같은 사회학자들은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를 연구하며, 관심이 기업의 생존이나 수익 창출, 나아가서 사회생활 전반에서 핵심적인 변수가 되었다는 주장을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후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관심(Attention)이란 자원이 전 세계인, 그리고 사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것은 21세기가 시작된 이후부터였죠.
원래 ‘관심 경제’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지심리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발표한 ‘정보 풍요’ 착상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입니다. 여기서 허버트 사이먼은 “정보의 풍요는 관심의 빈곤을 야기한다(A Wealth of information creates a poverty of attention)”라는 말했는데, 전 세계인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SNS와 스마트폰을 통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은 풍부한 디지털 정보를 어디서든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인류 개개인의 주의력을 궁핍해졌고 그 낮은 주의력을 얻어가기 위한 도박판이 펼쳐졌습니다. 이렇게 지금 사람들의 관심 혹은 시간은 세상을 돈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인 동시에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뉴진스도 "Attention is what i want"를 간절히 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금의 시대에 관심이라는 한정된 ‘판돈’을 가지고 경쟁을 한 것이 플랫폼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 경쟁 시장에 기업뿐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들이 참전을 선언한 상태이죠. 물론 이 방식은 구글과 페이스북, 틱톡과 같은 거대 플랫폼이 자신들의 플랫폼의 광고 수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창조해 낸 새로운 협업 비즈니스 모델(BM) 덕분에 생겨난 것입니다. 기업은 자신의 거둬들인 판돈을 콘텐츠 저작권자에게 나눠주는 나름의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었고, 2000년대 초부터 재미 혹은 취미의 개념으로 순수하게 UCC를 만들어내던 개인들은, 자신의 독특한 말투 혹은 행동, 그리고 취미가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서 볼만한 ‘관람 가치(perceived watching value)’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꽤 많은 돈을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존에도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이 되면 지금과 같이 높은 지위와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유명인과 일반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 있는 듯했습니다. 이 벽을 넘기 위해서는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공채 탤런트이나 공채 코미디언 시험에 합격하는 등의 정해진 루트를 통과하는 정도의 제한된 몇몇 방식만이 존재했죠. 아니면 정말 운이 좋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일반인≠유명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즉, 누구나 유명인이 대열에 서고 싶었지만 그들과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유튜브나 아프리카 TV 같은 플랫폼을 통해 이제 누구든 인터넷 방송을 직접 만들거나 출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젠 어느 누구라도 ‘유명인’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TV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와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TV속 유명인과 일반인인 나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것입니다.
2000년대에 출생한 세대의 경우 그들이 태어나고 자아가 생성되기 시작한 10대 시점부터 그들의 삶에 밀접하게 맞닿아있던 유튜브와 같은 신규 비디오 플랫폼이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흔히 유튜브를 뉴 미디어로 분류하며 기존의 TV와 라디오 같은 올드 미디어와 구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지만, 2000년 대생들 입장에서는 그러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유튜브는 단지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라, 압도적이고 자연스러운 주류 미디어에 해당하죠.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은 그의 에세이 ‘앤디 워홀의 폭로(Andy Warhol’s Exposures)‘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나는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문장이 질렸기 때문에 더는 쓰지 않는다. 나의 새로운 문장은 이것이다. 바로 ‘누구든 15분 안에 모두가 유명해질 것이다(In fifteen minutes everybody will be famous.)’" 그의 말처럼 이제는 누구든 15분 동안만 유명해지는 것이 아닌, 단, 15분 만에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유명인이 될 수 있는 현실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관심의 추구(The Pursuit of Attention)>의 저자 찰스 데버는 대중문화와 소비자본주의가 개인 수준의 관심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갖게 했다고 말합니다. 유명인과 같이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일반인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과도한 욕망은 하나의 집착과 같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죠. (나랑 비슷해 보이는) 누군가가 어느 순간 깜짝 스타가 되고, 큰돈을 손에 쥐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다른 소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일반인과 셀럽의 경계가 종이 한 장처럼 옅어진 세상 속에서는 일반인들의 삶의 비교 대상이 친구와 동료가 아닌 셀럽 군으로 넓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지만, 위와 같은 상황이 2000년 대생들이 2020년대에 마주하고 있는 시대적인 특징에 해당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세대별로 맞이하는 상황이 다르다'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무한한 비교>가 가능해진 시대 속에서 성장기를 맞이한 이들에게는 (앞선 청년의 고민과 같이) 마치 어제의 나 같았던 셀럽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나도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겪는 고민을 넘어서,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공통의 도전이 되었습니다.
핵심은 아마도, 단순히 '셀럽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와 나를 비교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비교 범위가 단순히 내 주위 몇몇을 넘어, 전체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이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마 'SNS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다음 화에서는 과연 'SNS가 문제인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만 인생의 적으로 돌리면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주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