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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Mar 13. 2023

아무도 말하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저출산 원인'

[18화] 우리나라만이 겪는 뜻밖의 칵테일 효과 그리고 '자식 농사'

지난주,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讀賣新聞)'과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늘 브런치글은 해당 인터뷰를 그대로 옮겨보고자 합니다.


먼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일본도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마침 지난 3월 5일 모리 마사코 일본 총리 보좌관이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저출산) 추세가 이어진다면 나라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사실 저출산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더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최근 절대 인구 감소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다시금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조만간 저출산 관련 종합 대책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종합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대책을 참조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대한민국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겠죠? 왜냐하면 일본의 1.27명 수준의 합계출산율은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대한민국은 0.78명의 합계출산율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죠.


저는 사실 인구학자와 같은 인구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저출산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딱히 크게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미우리 신문 기자님께서는 제 책 ≪그건 부당합니다≫와 관련한 <아래 기사>를 보고 저에게 인터뷰를 따로 요청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2022년 作 ≪그건 부당합니다≫에서는 남/녀 각자가 느끼는 '부당함' 입장에 한정하여, 저출산을 예시로 들었을 뿐, 저출산에 대한 저의 모든 생각을 풀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저만의 생각을 간략하게 적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왜 우리나라만 유독 심각한 것이냐?

결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언론이 궁금한 단 하나의 질문은 위와 같겠죠. 저출산 문제가 주요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겪는데 문제임이 분명한데, 왜 대한민국만 유독 심각하냐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주류 언론과 미디어는 이 문제에 대해서 수 백번이 넘는 기획기사를 내지 않았겠습니까? 공통적인 이유는 뭔가요? '치솟는 집값과 사교육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 'SNS의 발달로 모두가 비교 가능하게 된 세상', '수도권 집중 문제와 집약된 인구밀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애를 낳지 않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 등등 말이죠.


이것들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분석은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하게 이슈라고 말할 수 있나요? 부동산이나 기타 자산 가치의 상승은 우리나라만의 일인가요? 서양의 Z세대는 나(ME)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를 전국으로 분산이 된다면 과연 지금의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칵테일 효과(Cocktail Effec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화학에서 쓰이는 말로, 보통 '화학 물질이 개별로 존재할 때는 독성이 미미하거나 낮은 편이지만,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만났을 때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성이 커지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종종 이와 반대로, 조합된 약이 부스팅되어 약효가 강해진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초저출산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일종의 칵테일 효과' 때문입니다. 즉, 여러 가지 저출산 유발 요인이 혼합되어서, 그 효과가 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왜 그 독성이 강하게 나타나냐고요? 바로,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특성 독성 화합물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Illustration by Olivia Boan, The Pine Log (https://www.thepinelog.com)

그 독성 물질의 이름은 'Social Pressure(사회적 압박)'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사회와는 다른 특이하고 유일한 '소셜 프레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셜 프레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로는 '자식농사'가 있습니다. 자식 농사는 단순히 '자식을 낳아 기른다'를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식농사란 '내 자식이 좋은 학벌을 획득하고,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하이엔드급 직업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특이하게도 자식농사는 자식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기른 부모 자신이 '사회적 성공(=주위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음)'을 이뤘다는 증표로 활용됩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 자식 농사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식이 망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인생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는 한국사람이 갖는 강렬한 '지위의식'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지위의식은 자식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소셜 프레셔'를 작동시킵니다. 내 자식이 사회적 낙오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후자금을 사교육비로 쏟아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식 교육 외에도 생애주기 안에서 남과 비교되는 모든 것(사는 지역, 집과 자동차의 크기, 자식의 결혼 유무, 자녀의 구성 등등)이 사회적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다른 나라에는 이 정도로 강력한 Social Pressure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하버드와 같은 아이비리그를 보내고자 하는 열망이 더 크다고요? 일부 동의합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서울대를 보내기를 바라는 한국사회와 미국은 다릅니다. 적어도 내 자식이 명문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을 살 거라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와 많은 부분이 유사한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대학교 동기 중에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인과 결혼을 한 친구가 있는데, 오랜 기간 아이 없이 딩크족으로 살고 있는 그 친구는 "여기 일본에서는 어느 누구도 아이를 왜 낳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사회의 오랜 '소셜 프레셔'를 증폭시킨(Boosting) 것'이 바로 'SNS를 통한 무한 비교 범위의 확대', '모든 것을 세부적으로 카운팅 할 수 있게된 디지털 세상'이 되겠습니다. 각자 떨어져 있었으면, 그러려니 했을지 모르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와 우리 사회의 특성이 합쳐지면서 칵테일 효과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에서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사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무한비교와 소셜프레셔가 함께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 하나만으로는 결혼할 수도 없습니다. 양가 부모의 도움 없이 (모두가 살고 싶은 제1의 보금자리)서울에서 반지하 전세방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빌라에 사는 아이를 '빌라거지'라고 부르는 사회에서 (예전과 같이) 반지하 월세 혹은 전세에서 아이를 낳고 차근차근 모으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결혼하면 주위의 수많은 사람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이니?"와 같은 언어폭력을 시전하고 달려들겠죠?  


결국,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화가 바뀌지 않고서는 결코 지금의 출산율이 나아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가 정부의 정책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거나 돈을 적게 줘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2020 저출산 심포지엄'에서 정책 당국 면전에 대고 '포기하라'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놔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을 해야 한다느니, 젊은 세대에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기적을 알려줘야 한다느니..이와 같은 시시콜콜하고 무의미한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낍니다.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는데도 글이 이렇게 길어졌네요. 아..!!! 그리고 오해하지 마실게, 저는 결혼하고 아이 둘을 잘 낳아서 기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육아휴직도 했고요^^)


다음 주에는 (필자인 저 자신도)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지만, ‘아이 낳지 않는 세대’의 마음을 공감하는 이유를 설명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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