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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Oct 15. 2024

글쓰기요? 뭐. 그럭저럭 좋아합니다.

사랑하기엔 벅차고, 싫어하기엔 아쉬운 글쓰기라는 녀석에 대하여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브런치스토리 팝업 <작가의 여정(Ways of Writters)> 전시에 다녀왔다.

포샵을 가득해놔서,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그 작가의 사진을 보고도, 자기들의 아빠라고 알아봐 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단지, ‘글을 써야 작가’인 것인데 한 줄의 글조차 쓰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을 깨닫고, ‘글쓰기’에 대해서 최근에 바뀐 생각을 조금이나마 끄적거리고자 한다.



나는 가급적 글쓰기나 책 쓰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인데, 가끔 포럼 등에서 “글쓰기를 좋아하셔서 작가가 되신 건가요? “와 같은 질문이 나오면, 단호하게 “아니요. 좋아하지 않습니다”로 답변하곤 했다.


그럼 보통 질문자를 포함한 청중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어서겠지. 그러면 나는 다음과 같이 부가적인 설명을 곁들이곤 한다. ”하지만 딱히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



난 실제로 ‘글쓰기’라는 녀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면 괴롭기 때문이다. 삶을 갈아서 글을 쓰는 나쁜 습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책 한 권을 마무리할 때쯤 몸의 한 구석이 고장 나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에, 가급적 글이라는 녀석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장송(葬送)이 아닌 장수의 길’이라는 방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불어,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힘입어 ‘텍스트 힙(Text Hip)’이네 뭐네 떠들썩 한 지금의 시대에도,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일에 회의적이다. ‘책 한 권을 쓰면 인생이 바뀐다’ 느니 ‘평생 인세를 받고 사니‘와 같은 말은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말일뿐더러, 지금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는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못 읽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시 독서붐이 일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출판을 계속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저 이것이 내가 원하는 말을 자유롭게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조리 있게 말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말이다. 더불어 개인의 적성 차원에서는 숫자를 다루면서 사는 삶이 최악이리고 보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글을 다루는 일이 최악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이 ‘글쓰기’에 대한 워딩(Wording)’을 조금 바꾸게 되었는데 그것은 한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대사 때문이다.


마왕을 쳐부수고 난 이후의 세상을 다루는 『장송의 프리렌(葬送の フリーレン)』의 1화 마지막에 어린 시절 페른이, 마력을 제대로 다루고 싶은 마음에 프리렌에게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요?”라며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프리렌은

*프리렌: 그 전에 하나 물을게, 마법 좋아해?

*페른: 적당히 좋아합니다(ほどほどでございます)

*프리렌: (웃으며) 나도 그래


“ほどほどでございます(호도호도데 고자이마스)”는 ‘그럭저럭’ 혹은 ‘적당한 정도’를 공손하게 표현하는 말로써, 페른과 프리렌이 마법에 대해 과하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접근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서로에게 보여준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이후 누군가 글쓰기를 물어볼 때, “그럭저럭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마냥 사랑하고 있기엔 너무 벅차고, 단순하게 싫어하고 있기에는 너무 아쉬운 글쓰기라는 녀석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그럭저럭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그럭저럭 좋은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오늘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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