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 육아휴직도 5년차
"집에 트니트니 선생님이 오세요?"
몇 년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파트 옆집 어머니께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매일매일 우리 집에서 쿵짝쿵짝 노래를 틀어놓고 아이랑 같이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길래, 트니트니 선생님을 따로 집으로 부르는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나는 먼저 트니트니 선생님들이 집으로도 왕진(?)을 오나? 하는 의문점이 들었지만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그거 아마 저 일 겁니다"
아마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많이들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저 아빠는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집에서 놀고 있는 거지?"라고 말이다. 2018년 4월에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받은 다음부터 4~5년을 집에만 있으니, 아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사실 동네에서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파트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들을 볼 때이다. 아마도 내가 담배를 폈으면 영락없이 똑같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나름 직업이 있어요. 한량 아니라구요"라고 굳이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첫째 딸의 돌이 지나고, 육아휴직을 하고, 이후에 퇴직을 하고 둘째가 태어나고 계속 그저 흐름이 가는 대로 살면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일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그중에서 가장 주력으로 하는 일은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일이다. 요즘에야 아버지가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데려다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렇게 특별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모습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꾸준하게 아이를 데리고 찾고 하는 사람들이 흔치 않은 관계로 등/하원길에 만나는 다른 부모님들과 보육시설 선생님들은 항상 나를 보는 표정에 이런 질문이 서려있는 듯하다. ‘대체 뭔 일을 하는 사람이길래..’
사실 <코로나19>와 관련한 재택근무가 늘어나는 상황들이 굳이 내가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건을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하다. 하루는 아랫집 어르신께서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항의를 하신 적이 있어서, (노후된 아파트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깐) 배수관 누수 공사를 하면서 아랫집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어르신께서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 하는 건가요?” 나는 “아..예”라고 단답형 대답을 했는데, 크게 보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굳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안 해!”라는 말은 십여 년 전 인기를 끈 광고에 나오는 말과 같은 지루한 말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 신경을 안쓸 정도로 쿨하거나 대범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언젠가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가 굉장히 쿨한 생각으로 인식된 적이 있지만, 난 오히려 그러한 생각들이 솔직하지 못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극단적으로 “그럴 거면 빤스만 입고 다니지 그래?”라고 말하고 싶지만 않지만, 굳이 남의 시선을 들먹이는 자체가 남을 신경 쓰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야 물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누군가의 생각들이 나에게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누가 나를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보든, 백수로 보든, 로또 당첨자로 보든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사람들의 시선들의 관찰하고 그러한 시선들이 나오는 이유를 나 나름대로 분석하고 이를 글로 풀든 말로 풀든 혼자서 생각을 하든 선택을 하는 것이 나에게 이득인 시간이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목표는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내가 정한 울타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사는 것이다. 아무도 날 모르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그저 오늘을 살면서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간은 바로 2019년 8월 7일이다. 그날은 딸과 함께 앤서니 브라운의 뮤지컬을 보는 날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들어가고 싶다는 딸의 희망을 꺾을 수 없었기에 난 들어가지 않고, 마침 그날 시간이 맞아서 식사를 하기로 한 장모님과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청와대에서 갑자기 연 기자회견을 통해서 내가 쓴 책을 대통령께서 직원들에게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고 발표를 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전달 들었고, 그 이후에는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들이 오기 시작했다. 얼떨떨했지만 그 뉴스에 대응을 하느라 굳이 가족들과의 있는 시간 그리고 장모님과의 단둘이 있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이 위험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살고 싶었던 삶에 자칫하면 균열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갑자기 엄습했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책을 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젊은 세대를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의 분류가 경제경영이기도 했거니와 세대론의 계속 끌고 오며 살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소위 말하는 이대남이나 이대녀 혹은 젊은 세대의 정치 성향이나 미래를 판단하고 조언을 주는 위치에 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선택했던 것은 당분간 언론의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으라고 했지만,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생각이 없는 누군가에게 노를 저으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나는 얌전히 서핑이나 즐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일이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책과 관련한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굳이 거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치와 사회 전반의 내용을 논하는 주제에는 출연을 꺼리는 편이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이다. 책 한 권의 주목을 바탕으로 정치에 나갈 생각도 없기 때문에, 높으신 국회의원님들의 초청에서 한 사코 응한 적이 없다. 단지, 국회사무처의 강의 요청이 오면 간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얘기하는 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직장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선이다. 바보 같다고 누가 비판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나를 구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특정 업체의 이름을 거론해서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몇 년 전에 한창 아이를 데리고 트니트니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본 트니트니 프로그램은 그 프로그램 자체도 재미가 있긴 했지만, 그 일을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은 육체와 정신 모두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 혹은 짠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시킨 대로 잘하지도 않는 어린 아가들을 이끌고 특정 미션을 수행하면서도, 주위에 자기 자식만 하트 뽕뽕한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지도 않으면서도, 미션 마지막에는 아이들에게 한 바퀴 제비를 돌려주어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까지 함께 지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보였다고 할까?
당분간 내 삶의 궤적에는 트니트니 선생님이 남았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가 오해할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웃으면 뛰어놀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점점 아이들이 크고 무거와지더라도 그에 지지 않는 완력을 통해서 아이들을 들고 나르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는 존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