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상에 왜 우리는 말라죽어가는가
소설 ≪토지≫는 집필 기간만 하더라도 무려 25년(1969년부터 1994년까지)이 걸린 작품이다. 말이 25년이지, 반 오십 년에 해당하는 기간, 하나의 생명이 성인에 된 후에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라는 점에 대입하면 그 기간은 더욱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 박경리는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3년 전인, 1966년 발간된 한 수필집에 실린 ‘창작의 주변’이라는 글에서 “이제부터 나는 써야 할 작품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것들을 모두 습작이라고 한다. 그것을 쓰기 위해 나는 이삼 년을 기다려야 할까 보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실제로 연재를 시작하기 10개월 전에 발표된 단편소설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에서 나오는 삼각관계는 토지 1부에서 강청댁과 용이, 그리고 월선이의 삼각관계와 거의 내용이 비슷하기도 했다.
왜 박경리는 이토록 간절하게 이 작품을 쓰려고 한 걸까? 그 이유는 작가 자신이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문단에 나오기 전에 외가의 먼 친척뻘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즉 어느 시골에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광대한 토지가 있어 풍년이 들어 곡식이 무르익었는데도 호열자(*콜레라를 의미한다)가 나돌아 그것을 베어 먹을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 <베어 먹을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나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어요. 벼가 누렇게 익었는데 마을은 텅 빈 그런 풍경이 눈에 잡힐 듯 떠오른다 할까. 그 뒤 문단에 나와서 작품을 쓰다가 문득 그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그때부터 그것으로 뭔가 작품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작품이 들었어요 - ≪박경리와의 대화 : 소유의 관계로 본 한의 원류≫ 김치수ㅡ <박경리와 이청준>, 민음사, 1982, 165~166쪽 中
이렇게 박경리는 풍년이 깃든 풍요로운 토지에 반해, 죽음이 깃들어 비어버린 사람들이라는 대조되는 풍경이 그녀의 창작의 원인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가 밝힌 대로, ≪토지≫의 시작이 풍년 속에 곡식이 무르익은 들판이 펼쳐지고 팔월 한가위에 풍년의 기원하는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축제는 풍년을 기원하지만, 그 축제는 마치 ‘죽음의 그림자’를 이끄는 문을 여는 것과 같은 존재로 비친다. 작품에서는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가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장이라 할 수 있을는지 ..(중략)..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하는 축제는 아닐는지, 우주 만물 그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 말대로 팔월의 한가위 후에 최참판댁에 바우 할아범이 죽고, 당주인 최치수는 살해당하고, 이후 흉년과 호열자로 평사리 사람들은 저주받은 것처럼 죽어나간다. 이어 풍요로운 대지가 다시 생겨나지만, 이런 풍성한 벼를 벨 사람이 없는 풍경이 된다.
백여 년의 시간을 넘겨, 지금의 시대를 생각해 본다. 이제는 한해의 풍년과 흉년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굶어 죽는 것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아사’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를 검색해야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어린 적이 기본 상식으로 배우던 ‘부족해서 생기는 병’들, 즉, 비타민A가 부족하면 생기는 야맹증, 비타민B가 부족하면 생기는 각기병, 비타민C가 부족하면 생기는 괴혈병 같은 병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풍요의 병이 되었다. 비만, 당뇨와 같은 대사질환 그리고 그에 부수한 귀족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꼭 넘쳐서 생기는 귀족병만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풍요롭지만 비어있다. 풍요로운 대지 속에서 굶어 죽기보다 비대해져서 죽는 현실 앞에 있지만, 그보다 마음속으로 죽음을 먼저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우리는 풍요와 불모의 모순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 남아야 한다.
세상에 곡식이 가득하지만, 베어 먹을 사람이 없는 현실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조금은 다른 형태로 말이다.
≪토지≫는 대지지주인 최치수의 과잉 소유와 불모성의 모순을 시작으로 이 같은 생명의 법칙을 깨달아가는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다. 최씨가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은 조준구가 끝없는 욕망으로 황폐화되는 과정과, 모든 것을 잃고 새로 시작해야 했던 서희가 최씨가의 뼈아픈 역사를 받아들이고, 나눔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토지의 창작 의도와 가장 밀착된 이야기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백 년 지난 지금의 시대 안에서 어떠한 이야기 선을 만들어야 할까? 무언가 나누어야 한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단지, 그것이 쌀과 빵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