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캐릭터는 완성, 나는 미완

by 퇴고의 늪



심문하다가 역심문 당한 날


한번 물꼬가 트여서인지, 운이 좋게도 나는 첫 작 이후로 계속해서 계약작을 쓰는 중이다.

처음에는 한 작품만 딱 더 써볼까, 했다가. 세 작품을 채워보면 내가 웹소설 작가로서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다가. 고작 세 작품으로 재능 여부를 논하겠다는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새 작품을 덜컥 시작했다가. 장르를 바꿔서 도전해보자 싶었다가. 입금 내역을 보고 욕심이 났다가. 뭐, 그런 식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 온갖 이유를 끌어와서 이어가고 있다.




신작 캐릭터 아크에 집중하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나의 작업 방식 자체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중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작정하고 캐릭터 한 명을 내 앞에 불러다 앉혀 놓고, 취향부터 과거사까지 하나하나 심문하듯 질문을 던졌다. 꼼꼼히 시트를 채워 넣을수록, 인물이 점점 살아나는 게 짜릿했다.


그런데 문득, 정말 난데없이, 질문이 엉뚱하게 튀었다.

“좋아하는 건 뭐야?”

“인생 책은?”

“인생 영화는?”

순간,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문이 막혔다.


나는 도대체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태어나서 줄곧 대도시에서 살아왔고, 유행도 제법 뒤쫓았고, 재밌다는 영화와 드라마도 빠짐없이 봐왔는데. 막상 손으로 건져내려 하면,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캐릭터는 완성인데, 정작 나는 미완이었다.




취향 근육 만들기


나는 그저 ‘소비’만 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추천, 리뷰, 순위표에 따라 움직이기만 했을 뿐, 내 취향으로 걸러내고 쌓아 올리는 과정이 없었다.

사실 취향을 발견하고 디깅 하는 데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야근에 치여 매일을 간신히 버티는 삶 속에서, 취향탐색은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몸 하나 겨우 챙기며 살아가는데, ‘좋아하는 것’에 귀 기울일 여력이 어디 있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작게 시작했다. 누가 추천한 책이 아닌, 내 손이 닿는 책부터 읽어보기. 누군가 인생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한 권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책, 참 좋았어요.”하고 기꺼이 추천할 만한 책이 몇 권쯤 더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기록하기. 단, 기록을 위한 기록은 하지 않기로, 주와 부가 바뀌지 않도록 노력했다. ‘좋아서’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안의 취향이 쌓여가는 중이다.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가 아끼는 책 몇 권과 음악 몇 곡쯤은 기꺼이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방문자 0, 단상 100


틈 나는 대로 현재 나의 기분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보려고 했다. 펜을 쥐고 노트에 끄적거려 보기도 했으나, 글 쓰는 일을 키보드 위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무덤 속에 묻어둔 블로그를 꺼냈다.


네이버 블로그는 체험단이나 스마트스토어 운영자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이기도 했다.

나도 남이 보지만 혼자 쓰는 것 같은(왜냐하면 방문자 수가 0이었으므로) 일기 형식의 단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길게 쓰지도 않았다. 한두 문장으로 끝나는 꼭지글도 있었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들었던 음악을 올리기도 했다.


무엇이든 시작을 해야 역사는 일어나는 법이다.

어느새 하루 틈에 끼어든 단상 조각글이 백 개를 넘어섰고, 그 과정은 ‘나’라는 사람의 채도를 한 단계 높여주었다. 별 것 없는, 어찌 보면 지나치게 평탄한, 재미라고는 없는 내 삶에서도 이야깃거리는 크건 작건 매일 존재했다.

‘에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 내 글은 형편없고, 그렇다고 혼자 쓰고 혼자 보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고민이 이어지던 어느 날.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에세이 쓰기 프로젝트> 모집 글이 번쩍거렸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글쓰기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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