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서의 범위를 넓혀서 더, 더, 더 읽었다. 틈틈이 메모를 하고,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따라서 글을 써보기도 했다.
작법서를 한 권씩 씹어 삼킬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세계관, 플롯, 캐릭터가 치밀한 설계 아래 맞물려 움직인다는 사실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에도 스토리의 원형은 불변한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그 비밀을 알아버렸으니, 내 손끝에서 대작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대감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신수정 작가의 <일의 격> 같은 책을 권한다면 어떨까.
그 깊은 통찰을 읽는다 한들,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소화할 수 있겠는가. 나였다면, 통찰이 아니라 체증부터 올라왔을 거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고, 제 그릇만큼 담아가는 법이다.
단편 소설조차도 완결 경험이 없는 내가, 웹소설 인풋이 쌓이지도 않은 내가, 덜컥 장편을 쓰겠다고 달려들었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뻔한 조언쯤은 벌써 잊힌 지 오래였다. 이만큼 아는 데 왜 글이 안 써지지? 왜 재미가 없지? 왜 캐릭터가 제 멋대로 움직이지?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 거지? 연애를 글로 배운 것 마냥, 글을 글로 배웠더니 부작용은 꽤나 컸다.
어느 날부터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두통이 일었고, 식사를 하면 소화조차 되지 않았다.
학습(學習)은 배우고 익히는 것인데, 담기만 하다 보니 습(習)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급함이 시야를 가렸고, 실전이 없는 이론만으로 자만심을 키웠다.
결국 나는 작법서를 급히 삼킨 탓에 단단히 체해버렸다.
‘지나고 보면 다 이유가 있더라.’
예전엔 이 말이 으레 지난 시간을 합리화하는 변명처럼 느껴졌다. 젊은 날의 수고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상을 주듯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매일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겠지.’
이 문장을 쓰고, 나도 모르게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10대와 20대 중반까지 공부를 하고,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길러진 건… 쓸데없는 버티기 스킬 밖에 없다고 여겼건만. 그 시절이 쌓여,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깨달음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조급했고, 이제 막 창작의 늪을 걷기 시작한 주제에 시건방지기까지 했다.
이럴 경우, 어설프게 조금씩 고쳐 나가다간 결국 와르르 무너진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이 걸려도, 기본부터 다시 다지기로 했다.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내 부족함을 마주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때로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나에게도 지리한 과정을 지나며 헛된 시간과 돈만 쏟은 게 아닐까 싶었던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뜻밖의 순간, 그것들이 단초가 되었던 경험을 다시 내 앞에 불러 앉혀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한번 넘어가 보자고, 그렇게 나는 또 나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