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로컬 부트캠프 in 홍성 둘째 날의 기록.
부드러운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고, 한옥의 고요한 기운이 아침을 깨웠습니다. 달마당 스테이의 아침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생기가 돌았지만 그 풍경은 여전히 평온했습니다.
너른 마루에 걸터앉아 따뜻한 공기를 마시며 어젯밤 도착하느라 보지 못했던 스테이 주변을 찬찬히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길에서 뜻밖의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마을 입구 논가에 덩그러니 떠 있는 오리배를 보고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걷자, 사육장으로 보이는 곳에 진짜 오리들이 꽥꽥거리고 있는거에요. 마치 홍성의 아침이 오리들의 인사로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었지요.
알고 보니 이 마을은 전국에서 최초로 ‘오리농법’을 도입한 곳이었습니다. 어린 잡초와 해충을 오리가 먹어치우니 제초제 없이도 논이 정갈하게 유지되고, 배설물은 유기비료가 되어 화학비료 사용량을 줄여준다고 합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 이 방식은, 마치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말없이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오리들과 눈을 맞추며 걷는 아침. 홍성의 평범한 논두렁에서, 아주 특별한 지속가능성을 배웁니다.
그리고 마당을 돌아 나와 몇 걸음을 옮기자, 스테이 바로 옆에 자리한 ‘내포 막걸리’ 양조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 옆에는 유기농 쌀을 이용해 빵을 만드는 작은 빵집과 카페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은 느리지만 단단한 로컬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정비와 체크아웃을 마친 참가자들은 조용히 아침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짧지만 깊었던 숙소의 시간을 뒤로했습니다. 각자의 짐을 정리하고 채비를 나선 이들은 숙소 앞에 미리 도착해 있는 대형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 속 풍경은 조금씩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둘째 날의 여정은 고요하고 부드럽게, 로컬의 숨결 위에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홍장남로 670, '테스트키친' 앞에 버스가 조용히 멈춰섰습니다. 전 날 하루를 함께 보낸 이들과 나누는 인사는 한층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어제의 어색함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친숙함이 마음 사이를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간단한 꼬마 김밥과 시원한 얼음물로 허기진 속을 든든히 채웁니다.
속을 든든히 채운 우리는 홍성 청년마을의 구해강 선생님의 인솔 아래 홍동 마을 투어에 나섰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수록 이 마을을 일구어 온 사람들의 손길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구해강 선생님의 설명 속에는 마을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 풀무학교와 협동조합, 유기농업으로 대표되는 이 마을의 역사와 철학은 로컬이라는 단어가 단지 공간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만드는 가치'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테스트키친' 바로 옆에 자리한 '마을 활력소'는 지역 밀착형 중간 지원 조직으로 마을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외부와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마을 회보를 제작하고, 사업을 돕고, 견학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회의실과 공간까지 대여하는 일을 지원합니다.
홍동에선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도,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도
마을 전체의 손길이 함께합니다.
혼자보다 함께, 더 멀리 가는 방법을 우리는 실험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마을 안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평생 교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 누군가의 성장이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단단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고맙고 경이롭게 느겨졌습니다.
<채소생활>의 텃밭에는 한여름의 태양 아래 쥬키니 호박과 땅콩 호박이 영글고 있었고, 홍동밝맑도서관, 풀무학교, 맛있는 빵집이 있는 풀무 생협까지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불과 20~30분 남짓의 투어였지만 그 안에는 한 마을이 함께 길러온 철학과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히브루 양조장에서 맛본 로컬의 깊은 숨결
홍성군 홍돈면의 조용한 시골 마을 끝자락에 아담한 양조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이히브루.
이히브루의 '이히는' 술을 마시고 절로 나오는 감탄사 '이히~'에서 따온 이름이자, 동시에 독일어로 '나'를 뜻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양조 라는 뜻의 영어 브루(brew)를 붙여 만든 이름이 바로 '이히브루'입니다.
15년간 농사를 지으며 땅과 계절을 배워온 남경숙 대표와 이연진 양조사는, 2022년 스스로 흙집 양조장을 짓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또 다른 첫번째’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151번째가 아닌, 또 다른 첫번째가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150개의 양조장 중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의미의 1번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은 건축부터 브랜딩, 그리고 납품 방식까지 차곡차곡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환경을 위해 병을 회수해 재사용하고, 유통 또한 직접 트럭을 운전해 다닌다는 고집. 그것은 철학이자 태도였습니다.
이히브루에서 만드는 4가지 맥주의 종류
1. 비온뒤 : 직접 농사지은 쌀로 빚어낸 맑고 담백한 쌀맥주
2. 어스름 : 깊은 향을 가진 보리 맥아 맥주
3. 여름에 : 보리수 과즙이 들어간 상큼한 보리수 맥주
4. 별숲 : 밀을 주 재료로한 부드러운 밀맥주
맥주병을 감싸고 있는 일러스트에는 대표님의 아이들이 실제로 농장에서 놀다가 만난 식물과 참새, 개구리, 두더쥐 등의 동물들을 미술을 하시는 작가님이 직접 그리고 디자인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이곳에서 자라는 모든 것이 맥주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가볍게 마신 한 잔의 맥주였지만, 그 안에는 이 지역을 살아낸 사람의 시간과 고집, 그리고 묵묵히 스며든 땀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한 모금의 여운 속에서, 로컬이 품은 깊은 풍미와 잠재된 가능성을 다시금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이 순간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으로 지은 양조장 건물,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네 가지 맥주, 애정 어린 목소리로 그 철학을 들려주시던 양조사님, 그리고 귀 기울여 듣던 참여자들의 모습까지. 그 모든 풍경을 한 페이지에 오롯이 담고 싶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이히~’ 하는 흥겨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습니다. 이히브루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맥주를 맛보는 경험을 넘어, 지역의 시간과 온기를 깊이 느끼게 해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점심은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이어졌습니다. 홍성 읍내 중심에 자리한 이 곳은 30년 넘게 지역민의 한 끼를 책임져 온 정겨운 레스토랑입니다. 참가자들은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중 하나를 선택해 오랜만에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양식 한 상을 마주했습니다. 부드러운 오믈렛 위로 퍼지는 케첩 향,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의 고소함이 마치 어린 시절 동네 식당에서 부모님 손을 잡고 먹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메뉴 선택까지 완벽했던 홍성 투어였어요.
오후 2시, 다시 모인 우리는 젤리스라운지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 ‘더덕몽’의 로컬창업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평범한 식재료처럼 보였던 더덕에 이야기가 얹히자, 그것은 단지 먹거리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이자 하나의 철학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처음은 0원이었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숨을 쉬는 것이 살아있다고 느끼는지를 찾던 김예슬 대표는 더덕 농사를 짓던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다짐 하나로,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으로 한국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결국 그녀가 도착한 곳은 고향인 충남 예산의 작은 마을, 삽다리.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더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더덕의 맛을 가장 창의적으로, 가장 정직하게 전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시작했지만 처음엔 7평짜리 가공 공장에서 출발했습니다. 매년 조금씩 넓혀간 공장은 어느새 50평이 되었고, 더덕 꿀차, 더덕구이, 더덕 쿠키 같은 제품들은 팝업스토어를 넘어 백화점과 리조트에까지 입점하게 되었습니다. 더덕 하나로 이뤄낸 기적 같은 여정. 하지만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확장, 아이의 탄생, 자금난. 그때 김예슬 대표에게 ‘백종원’ 대표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시장 상인으로 1년 반 동안 수련을 쌓으며, 그는 장사의 기본부터 시스템, 마케팅, 세무까지 몸으로 배워냈습니다. 그렇게 더덕몽은 다시 돌아와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만들며, 먹거리타운 속 카페로, 그리고 지역 특산물의 가치를 전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꿈꾸는 것은 단순한 매출의 증가가 아니었습니다.
"왜 더덕을 먹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미식 여행, 더덕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스며드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그는 고객을 직접 만나고, 묻고, 들어가며 답을 찾았습니다. 그 마음이 더덕몽을 단지 ‘판매처’가 아닌, ‘경험의 공간’으로,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더덕을 고기로 생각해 보자는 제안, 당뇨 있는 이들도 먹을 수 있는 더덕 쿠키, 어르신들을 위한 더덕 라떼. 그가 만든 제품은 결국 사람을 향한 깊은 관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에요." 그녀는 말합니다. 브랜드의 핵심은 결국 ‘진심’이니까요.
더덕몽은 그저 하나의 농산물 브랜드가 아닙니다. 삶을, 실패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오롯이 껴안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더불어 사는 지역의 이야기입니다. 충남 예산이라는 땅에서 피어난 이 브랜드는, 이제 더덕의 세계화를 꿈꾸며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1박 2일의 로컬 부트 캠프 in 홍성 일정을 마무리하며...
1박2일 동안 로컬달인 참여자이자 기록자로 함께했습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행사 취재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던 이름들이 따뜻한 얼굴로 다가왔고, 낯선 마을의 골목은 어느새 마음에 작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대화 하나, 걸음 하나, 웃음 하나에도 로컬이 품고 있는 시간의 결과 사람의 온도가 묻어났습니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이틀 동안 마주한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반복되던 이 말은 저에게 이 기록의 방향을 일러준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기록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안고, 저는 오늘도 로컬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조심스레 써내려갑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바르게, 조금 서툴더라도 따뜻하게.
이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를. 그리고 또 다른 로컬을 향한 발걸음을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밀어주기를 소망합니다.
그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