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는 날이 있다. 글쓰기도 싫고, 원고 보기도 싫고, 집안일이나 텃밭 정리도 싫고, 계속 뒹굴고만 싶은 날. 아무 이유도 없다. 그냥 그런 날인 거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하는 척이라도 해보기'. 글을 쓴다면, 주제와 상관 없이 일단 아무말이나 적어보는 것. 업무를 한다면, 목표와 상관없이 일단 화면에 자료를 띄워보는 것. 집안일을 한다면, 일단 눈에 보이는 물건부터 원래 자리에 갖다두는 것.
그렇게 뭐라도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집중력이 올라온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행동활성화 (Behavioral Activation)'라 부른다고 한다. 이런 학술적 용어가 있는 걸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다행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마음이 몹시 피곤할 때는 아무것도 안 하며 푹 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냥 귀찮은 것뿐이라면,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일정이 꼬이고, 몸은 더 피곤하며, 역시 나는 이 모양이라는 자괴감까지 밀려오니까.
그래서 가장 좋은 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시작하는 것. 물론 쉽지는 않다. 무거운 수레를 움직여야 할 때 처음에는 힘이 더 필요하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훨씬 적은 힘으로 술술 굴러간다. 이 무거운 몸뚱이와 두뇌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일단 시작되고 나면 훨씬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다.
그 덕분에 오늘 이렇게 한 편 썼다. 기특하다, 내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