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단순함을 원해요.
고수는 쳐내고, 하수는 붙인다.
나의 이십대는 이 한 문장을 듣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십 대 초반 무렵의 제게는 꽤 인상 깊게 남은 이야기 입니다.
어느 개발자의강연에서 시작된 이 한마디는 무릇, 한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별다른무늬 없이 새하얀 식기로 이뤄진 테이블, 역시 새하얀 시트가 정갈한 침구.
우리가처음 보았을 때 ‘심플하다’라고 생각하는 볼 것들입니다. 한 동안 패션지에 꾸준히 오르내린 ‘놈코어룩’ 역시 별다른 패턴이 없는 간결한 기본 차림이에요. 면티와 청바지그 외의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는 쿨한 자세, 화려해서 몇 번 못 입는 옷보다는 늘 손이 가는 기본룩의 디테일을 염두에 두는 현명함이 제가 생각하는 놈코어 룩의 핵심입니다. 심지어 애써 치장한 스타일링보다멋져요. 이처럼 우리는 ‘심플’을 어느새 세련되고 멋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자는크게 ‘물건, 몸, 마음’이라는 세 가지 갈래로 심플하게 살아야 하는, 심플하게 살아서 좋은점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가장 넘치게 소유하기 쉬운 물건에 대한 이야기 중 특히 집에 대한이야기가 흥미로워요. ‘언젠가는 쓰일 물건’들로 가득한 집도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집은 언젠가는 쓰일 물건들로 가득한 수납의 공간이 아니라,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여기에 몇 가지 팁을 알려주는데 그게 꽤 구체적이라 흥미롭습니다.
‘공간을 단순하게 만드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에는 큰 장점이 하나 있다. 통신 기기의 소형화 덕분에 기기들이 잡아먹는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손쉽게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예 들이지 말자. 전선은 벽 모서리 부분에 붙이거나 장판 밑에 숨기거나 몰딩을 이용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만들자. 꼭 안 잠기는 수도꼭지, 시끄러운 변기 물탱크, 너무 비좁은 샤워실, 잘 돌아가지 않는 손잡이 등 일상생활을 피곤하게 하는 자질구레한 문제는 모두 고쳐서 해결하자.’
간결한 삶의 자세에 대해서는 이미 법정스님의<무소유>가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은 바 있습니다. 어쩐지 이 책이 그리 낯설지 만은 않았던 건, 프랑스인 저자가 동양에서도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이끌려 둥지를 틀고 지내면서 깨달은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무 테이블 위에 홀로 있는 찻잔이 담긴 표지 디자인은 동양을, 일본을 연상시킵니다. <무소유>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 책의 저자는 ‘적게 소유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신 꼭 필요한 물건은 좋은 것들로 장만해 오래 쓰자는 것이 포인트.
여기서 이야기하는 ‘좋은 것’이란 사치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물건을 집에 들이는 기준은 ‘안락함’입니다.그리고 고급 물건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선입관을 버리자고 말해요. 예를 들어, 집집마다 하나 이상은 있는 담요 역시 굳이 중저가로 여러 장 두는 것보다 비록 값이 나가더라도 좋은 캐시미어로된 담요 한 장을 오래 쓸 것을 당부합니다. 담요 두 장을 겹겹이 덮는 것 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하며활용도도 높아 오랫동안 기분 좋게 쓸 수 있다는 겁니다. 얼마 못 가는 자질구레한 물건을 굳이 여러개 소유하는 것 역시 낭비라는 맥락에서 수긍이 가는 이야기에요.
물건에서부터 몸과 마음에 이르기까지, 저자가이야기하는 세 가지 갈래는 작은 실천부터 몸의 습관과 마음의 온전한 동의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책을따라 순서대로 읽다 보면 어느새 간결한 생활방식이 주는 삶의 풍요로움과 함께, 주변에 차고 넘치는 불필요한것들의 구분이 확실히 되기 시작해요. 저 역시 어느새 심플하게 사는 삶의 제일 첫 관문인 ‘물건’을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물건은 사용하면 닳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고가의 물건은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음에도 고이 모셔두느라 정작 때를 놓치고 전리품의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값어치에 몰두하다 정작 우리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애초에 이걸 왜 구입했는지 생각해볼 일이에요. 정작 용도에 맞는 물건은 모셔두고 같은 용도의값싼 소모품들을 늘려 나가며 사용하는 편이 효율인지, 값이 나가는 대신 사용하기 용이한 물건을 한두개만 들여 손을 댈 때마다 만족을 느끼며 오래 쓸 것인지 말입니다. 사용이 까다로운 값비싸기만 한 물건은그러니까 들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값은 비싸지만 하나만 구입해도 오래 쓸 물건은 사치가 아니니까요. 손 닿는 곳마다의 물건들이 모두 그런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날마다 체감할 삶의 풍요로움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처치 곤란했던 자질구레한 물건은 과감히 치워 버리고 아껴두었던 그릇을꺼내 밥을 지어먹고, 다 먹은 인스턴트커피를 채우는 대신 아껴 두었던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실까 합니다. 오래 두고 볼 현명한 삶의 지침 <심플하게 산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