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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임 Mar 23. 2021

안부

오늘 하루는 어땠어? 있잖아, 나는 오늘 또 조금 울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아니 계속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냥 그냥 별일 아니야 하고 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코끝이 시큰하면서 볼을 타고 뜨거운 게 흐르면 아 그런 게 다 별일이었구나 하는 걸지도 몰라.

오늘도 많이 읽었어. 앉아서 읽다가 다리를 꼬기도 하고 또 반대로 꼬아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 읽고 페퍼민트를 우려 마시면서 읽었어. 그러다 침대에 폭 엎드려서 이번엔 시를 읽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없이 눈앞이 흐려지는 거야. 찰랑찰랑하더니 그게 이불 위로 투둑 떨어졌어. 둔탁한 마찰음. 소나기 같은 눈물이었다고 생각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저 시인이 빚은 글자를 더듬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냥 흘려보냈어. 어쩌겠어. 그렇게 밀고 올라오는 것들은 내버려 둬야 해. 이불 위에 떨어진 두 개의 얼룩이 눈이 되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흐리고 아무 감정 없는 투명한 두 눈. 나도 같이 눈을 맞대고 있다가 엉금엉금 일어나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눈앞에 옥수수처럼 노란 반죽 덩어리가 보여서 집어 들었어. 호떡을 만들어 먹자고 생각했지. 냉장고 온도가 너무 낮았나 봐. 돌덩이 같은 반죽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니까 꼭 보름달을 쥐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겉은 그럭저럭 말랑한데 속이 너무 단단해서 따뜻한 손바닥으로 살살 달랬지. 움켜쥐었다 두 손으로 포갰다 하니까 작은 보름달이 네 덩이가 나왔어. 소를 넣고 꼼꼼히 닫아서 기름 두른 팬 위에 한 장씩 둘러앉혔는데 별안간 먹을 기분이 나지 않아서 그대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뒀어.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오늘 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중이야. 너의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갔니? 아니면 너도 별일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별일이어서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을까. 그럼 있잖아 서로 어깨동무하고 앉아서 술잔이나 짠하고 부딪혀볼까. 마침 보름달 닮은 호떡도 빚어 놨는데 어때? 지글지글 부치고 있으면 이것도 제법 빗소리 같아. 그렇게 소란했던 하루를 꼭꼭 씹어 삼키자. 체하지 않게, 또 소란할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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