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무심코 퍼 올린 스푼 속 눅눅한 시리얼.
그걸 한참 들여다보다 다시 내려놓을 때 달칵하고 적막을 깨는 소리. 별안간 현실을 실감하는 순간. 깨진 적막 사이로 공허가 비집고 들어와 서서히 몸뚱이를 집어삼킨다.
공허란 것은 사람의 생기를 먹고 자란다.
나의 생기를 먹고 자란 공허의 몸집은 이제 제법 태가 난다.
나는 종종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느덧 나만큼 몸집을 키운 그것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내가 공허의 존재를 자각했을 때 그것은 이미 내 키만큼 자라 있었다.
공허는 때때로 나를 스토킹한다.
이 인분의 삶.
출퇴근길 버스에 앉아 있는 나는 나일까 공허일까. 나의 존재와 공허의 존재가 헷갈릴 때쯤 벨이 울리거나 카톡이 울려 현실로 돌아온다.
그렇게 현실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