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내 안에 글자가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 순간이 굉장히 반가운데, 이분들은 불시에 오시기 때문에 언제 갈지 모른다. 그럼 나는 안달이 나서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꿈속에서 본 숫자를 로또 당첨 번호로 여겨 허둥지둥 적을 것을 찾는 마냥 달뜬다.
손에 잡히는 대로 옮겨 적고, 잘 만져서 마침표를 찍는 순간. 온몸에 굉장한 이완을 느끼면서 동시에 짜릿한 안도가 남는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오르가즘.
내가 좋아하는 시인 박연준은 시상을 종이 위에 서둘러(안달이 나서) 옮겨 적는 행위를 두고 ‘종이 위에 하는 사정(射精)’이라 했다. 어쩜 이렇게 정확한 표현을. 과연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글자가 종이 위에 쏟아져 나올 때의 쾌감. 이건 배설과는 다른 카타르시스다. 눈물을 흘리고 난 뒤의 후련함과도 다르다. 표현이 궁하니 결국 시인의 것을 빌어 적는 수밖에.
나는 이 쾌감의 산물들을 종이의 모습을 띤 자궁에 품어, 살뜰히 다루어, 예정된 어느 날엔가 기어코 빛을 보게 하고 싶다.
유예된 나의 행복. 내밀한 그녀의 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