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리뷰: <리틀 포레스트>

미소시루는 미소시루고 된장찌개는 된장찌개다.

by 김현임

나의 노트북에는 두고두고 우려먹는 사골 같은 영화 폴더가 따로 있다(나는 보통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질릴 때까지, 마음에 들었던 책은 다시 처음부터, 영화는 대사를 외울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어림잡아도 한 편당 최소 백 번 이상은 보았을. 한두 해에 한 번씩 남겨둘 것과 삭제할 것을 나눠 정리하다 보니 이제 이 폴더에는 최소 이삼 년은 삭제의 위기를 비껴간 진국만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무려 두 편의 시리즈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 바로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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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포스터와 리메이크작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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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시원하게 내려 어스름 푸른 끼가 돌던 여름날의 저녁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을 보았다. 마침 같은 계절이어서 그랬을까 거센 빗줄기 사이로 차분한 공기가 맴돌던 그날, 영화는 인상적이었다. 장르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신선한 연출,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마트가 아닌 밭으로 가는 주인공의 움직임과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지루하려면 내처 지루했을 소재였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대놓고 느린 영화에서 느껴지는 의외의 몰입도란. 그날 이후로 나는 밥을 짓고 먹는 동안 종종 이 영화를 켜두고 있었다. 음식 영화를 보면서 먹는 밥이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오랜 시간 나의 식사 시간을 함께한 이 영화가 임순례 감독에게 리메이크되었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길 잘 했다. 원작의 리메이크 버전이라지만 나는 두 영화를 아주 다른 영화라고 본다. 원작이 깔끔한 미소시루라면 임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구수한 된장찌개라고 할까. 원재료의 순수한 식감을 살리는데 충실한 일본 음식과 다르게 한국 음식은 재료 하나를 가지고도 여러 가지 맛을 낸다. 이 두 작품이 꼭 그렇게 다르다. 색감이 다르며, 톤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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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속 음식들

원작이 감독의 미학적 욕구를 반영하는데 공들인 영화라면 임 감독의 작품은 그보다는 대중성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원작 속 청년들의 고군분투가 주로 대사를 통해 전달되었다면 임 감독은 대사 대신 신 scene으로 ‘보여’ 줘 공감 요소를 끌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편의 원작을 한 편으로 줄이면서 원작 특유의 느린 호흡이 덜 담겨있는 점도 그러하다.

원작에도 물론 청춘의 동시대적 삶이 그려지지만 ‘음식 영화’라는 인상이 강할 만큼 한 그릇의 음식이 완성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정말 밭에 씨를 심어 수확하고 부엌에서 썰고 덥히고 조미료를 넣는 것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여 보여준다. 관람객 수를 의식하지 않은 듯 보일 만큼. 과연 음식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일본다운 연출이다.


그에 반해 임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의 핵심인 조리과정을 대부분 생략하고 등장인물의 스토리와 농사 에피소드에 비중을 실었다. 그리고 레시피. 리메이크를 논의하던 당시 원작 속 음식을 동일하게 연출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아무렴 시나리오가 한국의 밭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로 만드는 음식인데 이게 무슨 억지인가 싶지만 아무튼 한국형 레시피를 본 원작자는 만족해했단다. 그도 그럴게 원작 속 레시피의 감성을 한국 정서에 맞게 잘 변형했을뿐더러 몇몇 음식은 그대로 가져왔다.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 고모와 이모의 온도 차. 한국적인 위트도 이렇게 조미료처럼 맛을 돋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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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image (2).jpg 왼쪽부터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 혜원(김태리)

인물 역시 캐릭터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유타 역을 분한 류준열(재하)은 원작 속 캐릭터와는 다르게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다소 ‘가오’를 잡던 유타와 달리 수더분한, 그러나 소신과 결단력 있는 인물로 그려졌고, 단짝 친구 키코 역을 분한 진기주(은숙)는 그런 재하를 적극적으로 짝사랑한다(원작에선 러브라인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 이치코 역의 김태리(혜원). 그녀 아니고서야 달리 누가 이 역할에 이만큼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까. 원작 속 주인공보다 인물에 대한 매력도가 높다. 느낌이 좋았다는 것인데 주인공의 캐릭터 자체가 무던한 편이지만 혜원 쪽이 조금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의 반려동물.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반려동물로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임 감독의 작품 속에선 개가 등장한다. 시골 개가. 유난히 품종 따지기 좋아하는 한국에서 똥개로 불리며 하대 받는, 1미터도 안 되는 짧은 목줄에 묶여 평생을 혹한과 혹서에 시달리다 산책 한 번 못 나가보고 죽는 그 개. 실제 ‘오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개는 안락사를 앞두고 있던 유기견이던 것을 제작진이 입양해 키우면서 출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 속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흐르는 동안 오구의 몸집이 커지는 모습도 앵글 안에 자연스럽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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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은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를 운영 중이다. 그 누구보다 시골 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사람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대신 시골 개의 모습을 무던히 보여준다. 분명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속 ‘오구’는 강아지로 불리던 시절, 집안에서 잠깐 귀여움을 받다가 몸집이 커지면서 당연한 듯 마당견 생활을 시작한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밤, 개 짖는 소리에 깬 혜원(김태리)은 비를 홀딱 맞은 채 짖고 있는 오구를 보고 마당으로 달려 나간다. 젖은 오구의 등을 닦아 주지만 비가 온다고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는다. 애초에 떠맡기듯 넘겨진 오구는 혜원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서 쪽지와 함께 마당에 덩그러니 남는다. 그렇게 시골 개의 모습을 무심하게 전달한다. 과한 설정이나 동정심을 배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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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는 오리고기 요리를 위해 오리를 잡는 장면이 삽입된다. 오리농법을 목적으로 집 청둥오리를 키우는데 키우는 사람은 잡아먹고 싶지 않아한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알고는 있지만…”이라는 말에 뒤이어 오리를 잡는 장면이 나온다. 오리를 어떻게 잡아 어떻게 해체하는지 상세하게. 이치코는 처음 오리를 잡았을 때 오리를 자루에 담아 안고 조금 걷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거웠다고 말한다. 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상세히 보여줌으로써 그 무거운 마음을 전한다. 한국판에서는 이 장면 대신 이웃 아저씨가 마당에 닭을 던져주는(먹으라며) 장면으로 대체되었다. 혜원은 닭을 잡는 대신 닭장을 만들어 계란을 얻는다. 원작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연출을 위한 살육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레시피 중 살육에 의한 음식은 없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이지만 이렇게 달랐다. 때문에 둘 중에 뭐가 더 마음에 드는지 고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묻는 싱거운 질문처럼.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 애국심과 별개로 사심을 담아 임순례 감독의 작품이 흥행하길 바란다. 나는 엄마가 더 좋다.

사실 어떤 작품이 더 좋았는가를 따지기엔 두 영화가 모두 나름 나름으로 즐겁다.

그렇게 <리틀 포레스트>는 노트북 폴더 속에 원작 시리즈와 리메이크작이 나란히 머문 최초작이 될 것 같다. 미소시루는 미소시루고 된장찌개는 된장찌개다. 둘 다 나름의 매력으로 맛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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