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위플래쉬>
어두운 복도 끝,
어렴풋이 보이는 불 빛 사이로 홀로 앉아 드럼을 연주하고있는 남자가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메라 워킹.
첫 장면에서 이 영화가 그렇고 그런 음악 영화는 아닐 거란 어떤 확신이 들었다.
음악에 미친 두 남자의 이유 있는 광기, 영화 <위플래쉬>다.
한 줄 평을 먼저 남기겠다. 이 영화 힘들다. 탁월한긴장감의 끈과 배우들의 연기력, 탄탄한 시나리오의 삼박자가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을 이어준다. 유독 아무 일 없이 지나가던 고요한 토요일 밤, 무방비 상태에서어퍼컷을 맞은 심정이었다.
영화는 소재 선택부터 범상치 않다.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 음악을, 그것도 재즈를, 그 중에서도 드럼을 소재로 총 100분간의 영화 내내 예상을 뛰어 넘으며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는데 혀를 내둘렀다. 앞서 힘들다는 평을 내린 것은 일종의 반어인 셈이다. 100분 내내늘어지는 장면 하나 없이 긴장의 연속인 감정선을 유지하기가 벅찼던 것. 그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음악영화라는 의미다.
폭력과 욕설(두주인공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엄마아빠mother-father’를끊임없이 찾는다)과 유혈이 낭자한 음악영화는 니가 처음이다. 가장최근에 흥행한 음악영화 중 특히 <비긴어게인>의여운이 길었기에 이 영화의 연출은 더욱 신박했던 것. 평소 영화편력이 액션에 치중한 에디터의 장르 취향상‘피’는 위화감을 느끼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위플래쉬>의 피는 총격전의 그것과 다르다. 앤드류의 연주는 말 그대로 ‘피 나는 노력’끝에 완성된다. 정말 피가 난다. 앤드류의손은 영화 도입부가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피가 흐른다. 그 과정을 지켜 보고 있자면 마치 전화를받으러 뛰어나가다 문지방에 엄지발가락이 부딪힐 때의 말 못할 아픔과 비슷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다.
관람포인트 하나,
대역없이 소화한 실제 배우들의 연주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데 이 점이 큰 몫을 했다고 단언하겠다. 드러머로 열연한 ‘앤드류’역의‘마일즈 텔러’는 6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15살부터 드럼 스틱을 잡은, 음악에일가견이 있는 배우. 그가 영화 속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장면은 실제 대역없이 모두 직접 소화한 것으로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네 시간씩 연습해서 일궈낸 결과물이다. 얼굴에서흐르는 게 땀인지 침인지 모를 만큼 힘겨운 연주를 묘사한 그의 연기는 실제 그가 느낀 고통의 산물이었을 것. ‘플레처’역을 맡은 ‘J.K. 시몬스’역시영화 속에서 피아노를 치는 신이 있다. 그 역시 과거에 피아노 건반 좀 두드렸던 이력의 소유자로 이번영화를 위해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다 해도 ‘흉내’와 ‘실제’는 다른 것. 이들의 열연이 위플래쉬를 아카데미 삼관왕에 올렸으리라.
이 배우 어디서 봤더라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를 모를 리가 없다며 분명어느 영화에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렇다, 플레처역의 J.K. 시몬스는 <스파이더맨>의악덕 편집장 역할로 우락부락한 목소리로 특종을 닦달하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바 있으며, 이번에개봉하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도 출연한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찬사를 받은 그는, 특유의 굵고 톤이 낮아 쉽게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 마저 천생 배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앤드류 역의 마일즈 텔러는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을받고 있다. 자존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거지, 어딘가모르게 억울한 외모가 모성애를 자극하지만 <위플래쉬>에서밟히면 꿈틀하는 근성있는 지렁이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냈다. 지난 여름 흥행에 참패한 <판타스틱4>에서 천재 물리학자 ‘리드 리처드’ 역을 연기했고, ‘엠마왓슨’과 또 다른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더블 타임 스윙
영화의 전 후반을 이끄는 마의 연주 테크닉 ‘더블 타임 스윙’. 앤드류의 손을 하루도 성할 날이 없게 하는 그것이다. 더블 타임스윙이란, 드럼의 스윙악보를 두 배의 속도로 연주하라는 의미로 결국 앤드류는 더블 타임 스윙을 성공함으로써메인 드러머 자리를 따낸다.
앤드류의 우상이자 플레처의 뮤즈 ‘버디리치’
위플래쉬의 두 주인공에게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각자 음악의 우상으로 여기는 이가 같다는 것. 버디리치(1927년-1987년)는 미국의 브루클린 출신의 재즈드럼 연주자로, ‘세계 최고의 드러머’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인물이다. 생후 18개월부터 드럼 스틱을 잡았고, 4살에 첫 정기공연을 가졌다고. 드럼연주 테크닉과 특유의 리듬감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특히 스읭드럼 연주자로서 1인자였다.
라스트 신, 9분간의 롱테이크
내내 플레처의 스파르타 교육에 피를 보던 앤드류가 영화 후반부그에게 회심의 엿을 먹이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통한의 엄지를 치켜 올렸으리라. 엔딩까지 이어지는마지막 연주 신은 9분간 롱테이크로 몰입도의 막판 스퍼트를 올린다. 숨죽이고지켜보시라.
팔짱을 끼고 보던 손이 어느새 땀으로 젖어있었다. 눈이 뻑뻑한 걸 보니 깜빡일 새도 없었나 보다. 아티스트에 대한경이감보다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다는 솔직한 심정이 먼저 든다.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는 별이다섯 개. 그러나 재능이 있다 해도 앤드류처럼 광기에 이르기까지 파고들고 싶지도, 아무리 뛰어났다 한들 미치광이 같은 스승을 만나고 싶지도 않다. 한이서린 목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강제로 멀게 하는 <서편제>의모진 애비처럼 <위플래쉬>의 그들 역시 오직 신의경지만을 바라보는 미치광이 아티스트에 지나지 않았던 것. 극한에서 맛보는 예술의 경지는 마지막 씬에서두 사람의 얼굴에 띈 회심의 미소만으로 족하다. 그들의 혀를 내두를 연기력과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렀을때의 카타르시스. 난 그걸로 됐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