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랜드, 아이슬란드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 연습 삼아 만들어본 곳.

by 김현임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 연습 삼아 만들어본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나라.

시선이 부딪히는 곳마다 대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얼음왕국 ‘아이슬란드’.

오늘은 여행지로 삼기엔 다소 낯선 이곳으로 홀연히 발걸음을 뗀 어느 뮤지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눈앞에 선한 아이스-랜드가 어쩌면 당신의 여행지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는 걸 기억하시길.


이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여행 기피자에 가까웠던 내가 어디든 떠날 용기가 생겼다는 것과 또 하나, 여행지는 어디가 되었든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 보통은 파리에 가면 에펠타워를 꼭 가야 하고(아 이건 동의한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도 하거니와 그 정취는 꼭 둘러볼만할 테니까) 루브르 박물관 투어를 마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고 가는 비용에 들인 게 있으니 뽕을 빼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몸을 혹사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모든 스팟을 돌게 하는 건 아닌지 우리는 여행을 두고 그 목적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한 번쯤 혼자 하는 여행에 로망을 품은 적은 있으나 지극히 외로움을 타는 에디터에게 혼자란 아직도 낯선 일. 그러나 ‘캐스커’의 이준오는 홀로 떠났다. 그것도 미지의 여행지 아이슬란드로. 여행 지부터가 해외여행 순위의 그것과 완전히 생경하다.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그곳, 사실 이것 말고는 아이슬란드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에디터에겐 정말로 낯선 감히 혼자서는 상상도 못할 장소다. 낯설기는 그도 마찬가지. 일상의 덫에 놓인 그는 여행 출발일까지 비행기 티켓 말고는 아무 일정도 세우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 ‘데미언 라이스’는 2집을 낸 뒤 8년이라는긴 시간 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이곳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다녀오고서야 다음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8년 동안의 슬럼프를 대체 어떻게 견뎠을까 싶은 갑갑함과 함께 대체 그 묵은 고통을 덜어낼 만큼 여긴 굉장한 치유의 힘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은 뮤지션으로서 데뷔 12년 차에 접어든 이준오 역시 음악 작업에 있는 대로 힘을 쏟아냈던 터라 지친 마음을 덜어내고자 이곳을 선택했다. 필자가 경험한 아이슬란드의 매력은 참 오묘하다. 온통 겨울인 이곳의 해는 굉장히 짧아서 낮 동안 풍경에 취해 이곳저곳을 헤맨다 하더라도 해가 지는 순간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해가 지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띄엄띄엄 놓인 상가들도 해가 지면 모두 문을 닫으며 거리는 어둠에 삼켜버린다. 이 점이 의외로 대자연의 풍경 못지않게 나를 설레게 했다. 일정 동안 활동할 수 있는 장소도 시간도 한정되어 있으니 오롯이 그 시간을 만끽한 후 일찌감치 숙소에 돌아와 남은 긴 하루의 여독을 여유롭게 풀어내며 곱씹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이 점이 내게 설레는 무언가를 심어냈다.

'이곳은 영원히 존재하는 곳이지만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되돌아가고 싶어도 겨울의 짧은 해는 나의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숙소를 향해 달리는 여행. 차창의 풍경과 나 자신에만 집중하는 여행이다. 목적지까지 달려가는 길 위에선 또 새로운 아름다움들이 펼쳐지겠지만 그것은 어제와는 다르다. 나는 이미 어제와 이별했으며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82p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이곳은 사실 많은 것들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그의 심정이, 광활한 대지를 눈 앞에 두고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이, 괜히 참을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헛웃음이 어떤 감정인지 알 것만 같았다.

에디터가 장거리 여행을 기피했던 이유는 그 후유증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 앞을 가득 메웠던 그때 그 순간의 찬란함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과거가 되어버리고, 우리는 또 그렇게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니까. 여행지에서의 감흥이 깊을수록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렵고 허망한 건 에디터만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필자의 후유증은 말해 뭐할까. 이렇게 긴 후유증을 남긴 여행은 처음이었다고 책의 말미에 그는 그 고충을 토로한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드넓은 빙하의 장엄함,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화구 아래 터를 마련해 살지만 불안함보다 그저 자신들 또한 대자연의 일부로 여기며 무던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일상, 우연히 맞닥뜨린 오로라의 유영, 그 찬란함을 어떻게 가슴에 묻어두고 밥벌이를 그 지루한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후유증의 시간을 앓고 난 후 그의 안에 무언가가 단단해졌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여행은 그에게 대자연의 풍경이 주는 감동만을 남기지 않았다. 광활한 대지에 홀로 선 그는 고독의 근원을 경험했다. 외로움과는 다른 차원의, 어쩌면 성숙한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고독을. 그것은 아마 서울 곳곳에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 치여 살던 그가 세상에 나와 처음 겪었을 고독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그는 긴 후유증 끝에 알았다. 일상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지만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내면을 돌아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필시 아이슬란드는 한 사람의 내면을 간파하는 여행지가 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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