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들(4)
출판사 운영 초반에 한 작가로부터 투고 메일을 받았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경력을 가진 작가였고, 1인 연구소를 운영하며 각종 미디어에도 노출이 되었던 작가였다. 나는 작가의 유명세보다 원고의 퀄리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그가 보낸 원고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이전에 출간했던 책들에 비해 콘셉트가 약했고, 내용도 명언 위주의 자기계발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원고를 검토하며 느낀 사항과 거절 사유를 적어 회신을 보냈다. 며칠 뒤,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신생 출판사인 것 같은데 나 같은 저자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존에 거기서 나온 책도 별것 없던데 그 책들에 비하면 내 원고는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도 시원치 않을망정 이제 막 생긴 출판사가 이것저것 따질 입장이 돼요? 나 같은 경력 저자가 신생 출판사에 투고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뭔데 내 원고를 거절해!’
이 메일 한 통으로 그의 인성이 드러나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회신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최근까지 그 작가는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펴내고 있지만 그의 원고를 거절했다는 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간혹 ‘출판사라면 질이 떨어지는 원고를 받아서 크게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런 능력이 중요하다. 특히나 작은 출판사라면 더더욱. 그러나 출판사의 소중한 인력과 자본을 그런 인성을 가진 작가에게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에게는 원고가 마치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같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끊임없이 글을 쓰고 만져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글을 썼고, 좋은 곳에 보내서 멋지게 재탄생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에도 각자 상황이 있고, 주로 다루는 분야나 성향이라는 게 있다.
출판사라고 해서 모든 원고를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고 후 출판사로부터 긍정의 회신이 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만약 거절의 회신을 받았다면 ‘무엇을 보완하면 될지, 어떤 콘셉트로 수정이 필요한지’를 고민하여 수정하고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한 출판사의 의견이나 사유를 분석해서 해당 부분을 보완한 뒤 다시 투고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오랜 시간 나와 블로그 이웃을 맺고 있는 작가가 있다. 첫 책을 중형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며 나에게도 기획안과 원고 일부를 보내주었다. 작가의 첫 책은 에세이였는데 두 번째 책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쓴 에세이였다.
요즘 에세이 분야는 뚜렷한 콘셉트보다 위로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포장되어 작가의 일상에 감정을 담아 쓴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분명 이 작가의 첫 책은 그랬으나 두 번째 책은 형식만 에세이일 뿐 내용은 자기계발서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첫 책은 예쁜 에세이로 출간해 봤으니 다음 책은 앞으로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될 대표 저서급의 자기계발서를 출간하시라’고 조언하며 콘셉트를 명확히 정해주었다.
결국 우리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콘셉트가 희미할 때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는 출판사가 거의 없었는데 바꾼 기획안과 콘셉트로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해본 결과, 몇몇 대형 출판사에서 계약하자는 회신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며 기획의 중요성을 느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처럼 투고가 거절됐다고 해서 지나치게 낙담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그 부분을 수정한 후
다시 진행하면 된다.
간혹 출판사의 거절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굳이 출판사에 나쁜 이미지를 남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거절을 이기고 내 기획안 혹은 원고를 더 탄탄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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