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람:결] 11월호 - 김문섭 님의 이야기
해온 것도 참 많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사람이다. ‘가장 나다웠던 순간’으로,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고민형 프로젝트’를 최초로 진행했을 때를 꼽았으니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며 지냈기 때문에 언어에 재능이 있고, 말주머니 또한 깊고 크다. 마음 또한 열려 있어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는 것과 언어유희를 즐긴다.
일을 할 때는 진지하고 어른스럽지만 씩 웃을 때는 영락없는 청년. 그를 보고 있자면 양립되는 것의 공존이 이리도 쉬운 일이었나 싶다.
Q. 최근 ‘요즘’을 돌아보고 있다고 하셨어요. ‘요즘’을 돌아본 소감은 어떠세요?
근래에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어요. 과정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었고, 새로운 배움을 얻을 기회를 가지려 하지 않았죠. 어느 샌가 제 자신에게 또 틀을 씌워둔 거예요. 그 후론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배워보려고 해요.
요즘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건 '온라인으로 일하는 삶'인 것 같아요. '디지털 노마드', 참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얼추 디지털 노마드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유연성’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요가를 시작했는데, 다양한 자세들만 수련하는 게 아니라 삶을 유연하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배우게 돼요. 오늘 요가수업에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표정이 일그러진다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호흡이 불편할 수도,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죠. 특히 마음이 불편하다면 노력하지 말고, 애쓰지 말고, 그냥 자신을 놓아주세요’.
요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최대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다음으로 갖춰야할 삶의 태도인 것 같아요.
Q. 문섭 님께선 집의 개념을 공간보다는 사람에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어요. 편한 인간관계 속에 있어야 비로소 집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문섭 님은 집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나 감각들이 떠오르시나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집'이 무엇이냐 물어오면, 보통은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를 인용하곤 했어요.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라는 가사에서 두 번째 '집'이 바로 제가 말하는 '집'이거든요.
집을 생각하면 이런 것들이 떠올라요. 목조건물, 은은한 주황빛 조명, 얼핏 창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바람 소리, 모두가 같은 걸 하고 있지 않아도 멀리서 봤을 때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풍기는 사람들. 별것 아닌 농담에도 숨 넘어갈 듯 웃고, 상대방의 웃는 모습이 웃겨서 또 웃고, 그런 소소하지만 흔하지는 않은 그런 것들. 생각만으로도 가슴에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그런 것들 말이에요.
Q.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혹은 가장 의미 있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가장 의미가 있었던 시기는 청년단체 ‘새벽’을 만난 그 시점인 것 같아요. 새벽에 속한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어요. '우리는 만났거나, 마주쳤거나, 모이게 된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어온 사람들을 이제서야 발견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인연이라는 거죠.
‘새벽’은 정말 많은 것들을 한 순간에 바꿔놨어요. 내가 뭘 즐거워하고,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어떤 것들을 꿈꾸고, 어떤 것들을 해나갈지 등 많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어주었어요. 제가 '가장 나다웠던 순간' 혹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새벽에서 ‘고민형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진행했을 때라고 말하면 저를 워커홀릭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제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된 순간이었기에 꼽게 되는 것 같아요.
Q. 스스로가 쓸모 없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슬프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내가 나를 ‘쓸모 있다’ 혹은 ‘쓸모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형태로든 제 노력의 가치들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꼭 부와 명예 같은 것들이 아니어도 타인의 미소나 스스로의 성장도 제게는 좋은 자극이 되었거든요.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이 가장 저를 보람되게 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마음을 쏟은 일이 허사로 돌아갔던 순간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실패의 이유를 알 길이 없는 그런 순간들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에 스스로를 쓸모 없다고 느끼는 것 같네요.
Q. 최근 외로움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요?
외롭다고 느낀 건 두 통의 전화 때문이었어요. 하나는 동생과의 통화였고, 하나는 친구와 한 통화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해외에 나가있어요. 또한 둘 다 처음으로 가족과 장시간 떨어져 혼자의 힘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요. 많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럴 때면 함께해주지 못하는 게 참 미안해요. 말로 전하는 위로는 분명 한계가 있거든요. 백마디 격려보다는 어깨에 무심하게 올려놓은 손이, 한번의 포옹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걸 해주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워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가 영국에서 생활하던 때가 생각나요. 그때 제가 가장 필요로 하던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거든요. 이 두 통의 전화가 제가 최근에 외로움을 떠올리게 된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Q. 내 삶을 다채롭고 의미 있게 만들려면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면 좋을까요?
'당신이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이었어요. 난 당신이 생각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겠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거죠. 그게 중요한 거였어요.'
영국 드라마 <셜록>의 대사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예요. 전 저런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꿈꾸고 있는 모습으로 나를 이미 바라봐주고 있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어서 나로 하여금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게, 또 될 수 있게 만드는 사람.
Q. 나다움을 찾는 여정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진정 나다워진다는 건, 3차원 이상의 개념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세상이라는 말이 맞다면, 그 사람이 나다워진다는 것은 곧 특정한 한 가지 모습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아닌 세상의 모든 모습을 가진다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영화 <루시>를 보면 주인공이 약물을 통해 뇌의 잠재력을 서서히 개방하게 돼요. 마지막에 100퍼센트를 발휘하는 순간, 주인공은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게 되죠. 세상 그 자체가 된 거예요. '내'가 된다는 건 그만큼 긴 여정일 거예요. 평생을 써도 못 끝낼 여정일 수도 있을 거고요. 조금은 여유롭게 즐기면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라는 개념을 규정짓는 것보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잖아요? 같은 맥락에서, '나다움'은 찾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는 이미 나예요. 그냥 인정하면 돼요. 지금 이 순간부터 나오는 모든 모습은 나예요. 잠깐 지나가는 모습도, 장기간 머물러 성격으로 남는 모습도, 전부 나죠. 도리어 찾으려 하면 할 수록 멀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해요. 애써 무언가가 ('나'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포함하여) 되려고 하다 보면 그 모습으로만 자신을 규정지어서 다른 모습들을 꺼내볼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