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인간을 위하여

by 김편

세 든 집의 거실 천장 조명이 수명이 다 되었는지, 고장이 났는지, 켤 때마다 깜빡이더니 급기야 몇 분은 걸려야 완전히 불이 켜졌다. LED 전구 교체를 할 때 분리가 까다로우니 어설프게 손대다 고장 내지 말고 필요하면 꼭 말하라고 집주인에게 들었던 터라 전구를 바꿔 달라고 요청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미련했던 나는 거의 두어 달이 넘도록 말하지 않고 버텼다. 불이 완전히 켜지기까지 길게는 15분 넘게 걸리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안 켜졌는데 그러고도 다른 간접 조명에 기대 또 두어 달을 더 연명(?)했다.


그 무렵 우연히 집에 들렀던 후배가 이 상황을 보고 황당해하며 왜 이렇게 있냐는 물음에 모르는 사람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그냥 있는 거라고 했더니 더 황당해하며 아무리 그렇다고 넉 달이 넘도록 이러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답답해했다.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이러고 있을 거냐며, 그럼 자기가 있을 때 부르면 그나마 나을 테니 당장 전화하라며 재촉했다. 못 이기는 척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도 이 정도는 스스로, 알맞은 전구 모델도 알아내고 조명 커버 분리도 뚝딱해서 교체도 척척 해내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제목을 보는 것과 동시에 이미 손이 구매 버튼을 클릭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야말로 아무도 안 부르고 혼자 고치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형광등 교체나 현관문 도어록, 문고리 고장 정도의 사소한 문제는 초보자도 혼자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생활기술 서른한 가지가 담겨있다니 그야말로 마음에 쏙 들었다.


‘소소한 집수리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보며 실생활에서 그렇게 생생한 경험을 하고도 나는 왜 이런 책을 기획할 생각을 못 했는지 내 머리를 쥐어박고도 싶었다.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방식대로 살고 싶은” 전북 완주군 여성들의 느슨한 모임 ‘완주숙녀회’와 완주숙녀회 멤버이기도 한 이보현 작가가 공동 저자로 올라 있는 이 책의 소개 문구 중에는 “자기 집 정도는 자기가 직접 돌보는 방법”이라든가 “자립인간을 위한 생활기술 큐레이션”이라는 표현이 있어 내 마음을 더 휘어잡았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책을 주문하고 책장을 넘겨 탐독했으니 “매력적인 자립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는가, 하면 사실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어떤 생활의 난관이 내 일로 당장 코앞에 닥쳐야 해결할 ‘거리’가 되고 그제야 발로 뛰게 되니 아직은 더 당해도 보고 단련도 거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안 부르고 혼자 고침》 같은 제목에 환호하고, 어디선가 ‘여성메이커를 위한 공구 교육 & 제작’ 같은 내용으로 워크숍이 열린다고 하면 절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살면 살수록 아무도 안 부르고 혼자 해결이 가능한 ‘생활 자립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천장 조명뿐만 아니라 보일러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난다거나 찬물에서만 수압이 약해진다거나, 현관 도어록이 먹통이 된다거나 하는 크고 작은 문제가 늘 닥쳤고 지금도 부지불식간에 맞닥뜨리기 일쑤다. 괴로워 못 살겠다는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미미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그런 생활의 고충은 매번 골치 아프고 매번 헤매며 끝끝내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어디 가서 뭘 사면 해결할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으면 정확한 답이 돌아올지 아는 정도의 상식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수많은 자립의 고수와 자립의 달인, 자립의 마스터들이 각종 ‘살아가기’를 위한 다양한 정보를 광활한 비디오 플랫폼 세계에서 앞다퉈 공유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독립이나 자립은 단순히 부모의 집을 떠나 독립된 세대주가 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제 삶을, 제 일상을 얼마나 스스로 잘 영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생활을 꾸려나가는 일은 그래서 수련과 단련이 필요하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일의 긍지와도 맞닿는다.



IMG_6246.jpg 1인 가구로 살면 조립식 가구 조립하기의 달인이 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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