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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실생활자 김편집 Sep 21. 2015

#08 오카리나

ⓒkimeungyoung



십여 년도 더 지난 일이다. 동네에 아기자기한 이쁜 풍경으로 유명해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캠퍼스가 있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주말이면 책 한 권 옆에 끼고 그 캠퍼스 노천강당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어슬렁어슬렁 걸어 노천강당 돌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람도 좋고 하늘도 좋은 날이었다. 여유롭게 책장을 뒤적이는데 어디선가 맑고 청아한 음색이 귀를 사로잡았다. 피리 소리인 듯도 하고 팬파이프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돌계단 한 켠에서 한 남학생이 무언가를 불고 있었다.        


“저...”

“?”

“저...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게 무슨 악기예요?”

“아, 오카리나라고... 흙으로 구운 피리 같은 거예요.”

“아... 너무 궁금해서... 고맙습니다.”


오카리나... 오카리나...

애조 띤 맑은 그 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주저하다 근처 악기사에 들렀다. 가격대별로 천차만별이었는데 플라스틱은 싫었고 그래도 흙으로 구운 것이 좋아 개중 제일 저렴한 것으로 4만 5천 원을 주고 구입했다. 구멍이 11개인, 저음이 풍부하다는 알토용이었다. 악기사 아저씨는 금방 배운다며 운지법이 설명된 프린트를 한 장 주었다.


오카리나ocarina라는 말은 작은 거위를 뜻한단다.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새 모양의 오카리나는 흙으로 만들어서인지 손에 쥐고만 있어도 마음이 좋았다. 흙과 물로 만들어 몇천 년 이상 불리어 온 이 악기를 지금의 새 모양으로 만든 건 특이하게도 지우제페 도나티Giuseppe Donati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과자 직공이라고 한다. 


아저씨가 주신 프린트물로 운지법만 익히고 인터넷에서 ‘학교종’ 악보부터 연습용으로 프린트했다. ‘학교종’ 같은 곡만 한 이주일 때쯤 부르며 연습했을 때 회사에서 같은 방에 있는 두 선배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아~~~~ㄱ~ 쪼~~~~~~~옴!!!!!!”


음, 곡을 바꾸어야겠군. 좀 급작스러운 업그레이드일까 싶었지만 이번엔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

첫날부터 사무실에 선배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실력은 늘지 않고 미련만 남아 그 뒤로 동그란 오카리나까지 두어 개 손에 쥐고야 사랑이 멈추었다. 역시 직접 연주하기보다 감상이 훨씬 기쁨을 주기에. 내게도, 그리고 주위에도.


여전히 로망은 있다. 해 질 녘, 짙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고요히 ‘엘 콘도르 파사’를 부르는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씨익 웃곤 한다. 






오르페우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이자 시인인 그가 초원의 동물들에 둘러싸여 하프를 켜고 있다. 그가 하프를 연주하면 생명이 없는 나무나 돌도 춤을 추었고 사나운 맹수도 그의 곁으로 와 온순해졌다. 그의 연주는 폭풍도 잠재웠으며 요사스러운 물의 요정 세이렌들의 노래까지 물리쳤으니. 오르페우스는 지극히 사랑한 아내 에우리디케가 급작스런 비극으로 죽음을 맞자 아내를 되찾으려 지하 저승 세계까지 찾아간다. 아름다운 그의 연주는 죽음의 신 하데스 마저 감동시키고 마침내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슬프게도 비극이다. 죽은 오르페우스의 하프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Albert Cuyp, Orpheus with Animals in a Landscape, 164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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