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어딜 가?"
"에그타르트 먹으러 마카오 간다고."
"으하하핫~ 니들이 말로만 듣던 우동 먹으러 일본 가요, 하는 그 애들이냐?"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촉촉하고 진한 달걀크림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에그타르트. 원래는 포르투갈의 대표 디저트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 포르투갈과 중국문화가 만나 만들어진 마카오식 에그타르트이다. 뜬금없이 에그타르트 먹으러 마카오에 간다는 말에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냐, 그래. 에그타르트 맛있게 먹고 오니라. 고마 다 잊고 푹 쉬고 와~"
그렇게 좋다고, 사랑한다며 난리치던 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급작스런 마무리를 함께한 후배와 갑작스런 여행을 떠났다. 좀 쓰라린 결말이었으나 우리는 그동안 최선을 다 했고, 충분히 열심히 해서 미련 한 톨 남지 않았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좀 쉬어도 될 것 같았다. 조용하고 느긋한, 느린 여행을 꿈꾸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간도 짧고 장소도 꼬인 채로 강행해야 했던, 마카오 3박 5일 자유여행.
적극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에그타르트는 꼭 먹고 오자, 이러며 신나게 웃으며 떠났다. 우린 그저 완벽히 낯선 길을 좀 거닐고 싶었고, 나는 좀 긁히고 씁쓸해진 마음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9월 초의 마카오는 습도 높은 여름 날씨라는 악명 때문에 떠나기 전부터 워낙 겁을 먹은 탓인지 막상 마카오에 도착했을 때는 안도했다. 뭐 그 뒤 잠깐잠깐의 위기 상황은 있었지만 대체로 날씨에도 잘 적응했고, 룸이나 호텔 주위에서만 맴돌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보다는 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꼬박꼬박 8시간 이상씩 푹 자며. 다만 첫날을 보내고 조금 우려했던 건 마카오가 이런 분위기라면 우리가 가장 원했던, '낯선 골목길에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어슬렁거리기'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닌가 하는 거였다.
그 걱정은 순전히 에그타르트를 위해 향했던 장소에서 사라졌다. 마카오 최남단에 위치한 콜로안 섬.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마카오식 에그타르트의 원조로 유명한 로드 스토우스 베이커리를 찾았다. 금방 구워내 따끈따끈한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입에 물고 시작한 길에서 우리가 원했던 여행이 시작되었다. 조그만 우체국을 만나 엽서도 쓰고, 파스텔이나 원색의 색감이 예쁜 조용한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아, 그래 갖은 괴상망측한 포즈로 사진도 찍으며 골목을 지나고 광장도 지났다. 그러다 멈춘 어느 성당에서는 아예 자리 잡고 앉아 제목도 모르는 성가를 멍하니 들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따가웠는데 바람이 불어 좋았고 벤치에 앉아 여유로이 앉아 있는 어른들의 풍경도 좋았다. 바싹하게 구워진 갈색의 타르트지 위에 탐스럽게 고여있는 샛노란 에그필링의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더 사들고 그곳을 떠났다. 처음 한입 물고 이렇게 외쳤으니까. "꺄~악! 너무 맛있어!!" 아, 정말이지 행복했다. 맛있는 걸 먹어서.
동화책 <우리들의 에그타르트>에는 난생처음 접한 에그타르트를 맛보고는 그 맛에 반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에그타르트가 있다는 마카오에 가기 위해 마카오 가기 대작전을 세우는 열두 살 소녀들이 등장한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들은 저마다 고민과 고충들로 좌충우돌하고... 그러던 중 에그타르트의 원조국가는 마카오가 아닌 포르투갈이라는 소식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엉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아이들이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함께 신 나서 일할 동지와 든든한 언덕이 되어줄 보스가 있어 드디어 오래 마음을 안착할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열 받고 때때로 신났고 쭉- 재미있는 날들이라 행복했는데 좀 부질없이 사라졌다. 이곳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좀 충격받고 화나고 안타깝고 무엇보다 슬펐다. 뭐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다인데. 좀 쓸쓸하지만 걷고 싶은 또 다른 길을 찾아야지. 12살 소녀들이 꿈을 위해 애쓴 것처럼 다시 애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 즐기며 살 곳을 찾아.
아직은 재미에서 의미를 찾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하는 말을 으하하핫 웃으며 함께 소리칠 동지가 있으니 걸어볼 만한 새로운 길을 또 찾아 나서야 하는 일도 아직은 괜찮다. 마카오면 어떻고 포르투갈이면 어떤가. 이러다 또 어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대박 맛있는 달짝지근 촉촉한 에그타르트를 한입 가득 물고 있겠지.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다고 막 외치며.
이른 아침 잠깨어 하릴없이 강변으로 발걸음이 닿습니다. 초록의 나뭇잎, 이슬 머금은 풀잎, 잔잔히 흐르는 강물의 수면을 따라, 혹은 맑은 대기 중에서 부서지며 반짝이는 햇살 부스러기들을 따라 세상은 반짝입니다.
천천히 거니는 고요한 아침 산책길, 눈길은 저 어디쯤 아득히 허공에 닿았습니다. 깊고, 한가롭고, 허허로운 상념에 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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