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아세요? 이 부분 좀 읽어보세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산책 겸 동네서점에 갔더니 책방 주인장이 책을 내민다. 글을 너무 잘 써놔서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다며 그가 내민 책은 《그냥, 사람》(홍은전, 2020).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냥 좋다.
세상에 책은 많기도 많고 그 많고 많은 책을 만나는 사람들의 방식도 그만큼 다양하다. 20대든, 30대든 혹은 60대든 살아있는 이상 날마다 제 사는 자취로 각자의 결, 각자의 무늬를 새긴다. 그리고 그 결이 어룽진 시선으로 책을 읽으니 꽂히는 구절이 다르고 좋아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이유로 마음을 뺏기고 다양한 이유로 자신에게 시도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 유용성과는 별개로 언제나 짜릿하다. 그리고 그 짜릿함을 공유하고 싶을 때 “이거 읽어 봤어?” 주위에 묻기도 하는 것이고. 이런 일이 너무 즐거울 때 간혹 생각한다. 나에게 책은 대체 뭘까.
간혹 “책이 구원이었다”라고까지 말하는 작가들도 있다. 언뜻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일상의 위로나 휴식이라는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치유의 수단이 되기도 하니 가능한 말인 것 같다. 왜 그런 일 있지 않은가. 책 속 한 문장에서 느닷없이 다시 한번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하고 벅찬 위로를 받아 눈물 쏟은 후 감정이 정화되는 그런 치유의 과정 말이다. 그렇다지만, 정말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내가 책을 읽는 과정에서도 일어날까. 사실 그건 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지만, 간혹 정말 알고 싶다는 눈빛으로 “책을 왜 읽어야 하나요?”, “책을 읽으면 정말 길이 보이나요? 답을 얻나요?” 하는 진심 어린 질문을 받을 때는 말문이 막힌다. 사실 너무 진심이라 더 당황스럽다. ‘그러게요. 왜 읽어야 할까요, 정말 책 속엔 길이 있을까요.’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 2017)에서 어느 프랑스 의사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밝고 환한 태양과 같은 환희와 쾌락주의적인 색채가 풍부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권하고, 우울증에 빠진 듯한 사람에게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보이는 어둠》을 처방 삼아 권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 문학 작품을 읽는 것으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정말 책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길도 찾을 수 있을까?
문학 작품을 읽으면 각자의 처지에서 책 속의 주인공이나 순간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깨달으며 감정의 정화를 거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해 주는지 스스로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질문할 수 있게 된다는 건, 퍽 근사한 일이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텍스트 앞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폴 리쾨르의 말처럼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은 곧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이 내 삶에 어떤 영향과 모양새를 부여하는지 질문할 수 있다면, 때로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도 수긍할 만하다. 분명 좋은 책의 어떤 한 구절은 우리 안의 무언가를 건드려 “읽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깊은 변화가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틱한 일이 꽤 자주 일어나는 ‘판’이 책판이라 감히 말한다. 책 속에 정말 길이 있냐는 질문을 곱씹으며 아득해질 때도 있지만, 입 닫고 있을 순 없으니 대체로 안 그런 척 허둥지둥 대답은 한다. “일단 책을 읽다 보면 내 생각이 조금씩 생기고요, 생각이 쌓이다 보면 나를 알고 싶어 져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저도 ‘나’를 알게 될 것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된다면 가야 할 길도 보이지 않을까요.” 두루뭉술한 대답이지만, 책을 읽어서 내 생각이 하나둘 생겼고 하나둘 질문을 하게 되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애쓰다 보면 언젠가 나 자신도 알게 되고 길도 찾지 않을까.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그 책방 주인장이 내민 《그냥, 사람》은 내게 몇 번이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 책이다. 좀 괴로운 질문도 있지만 몇 번이고 할 만한 질문이라 지금도 곱씹고 있다. 가령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찐’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와 같은 개미지옥으로 빠질 것이 뻔히 예상되는 질문이지만 나에겐 필요한 질문 들이다. 스스로 질문할 수만 있다면 좀 천천히 가더라도 삶의 모양새가 좀체 자신과 어긋나지 않으며 제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개중 손쉬운 방법으로 그런 계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책이 아닐까. 그것이 책이어야 하냐고, 다른 훌륭한 방법도 있다고 권한다면, 그 또한 좋다. 성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