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그 남자는 참 한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밉지 않은 지 여자는 알 수가 없었다. 남자를 보며 치솟는 여자의 짜증과 어이없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남자의 ‘여유’에 전염되어 굳은 가슴이 자꾸 말랑해졌다.
대책 없고 한심한 저 남자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왜 귀 기울이는 것이며, 무얼 믿고 저렇게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인지 여자는 정말이지 의아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고 있게 하는가.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마저 저도 모르게 그 남자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불현듯 느끼며 여자는 깨닫는다.
‘어깨. 어깨가 사람을 향해 있구나.’
여자가 남자의 대책 없음을 비난할 때도, 가망 없어 보이는 미래를 조소할 때도, 냉소를 머금고 한심하다며 칼날 같은 말을 내뱉을 때도 남자는 어깨를 여자에게로 향하고는 그녀의 악다구니 마저 아주 중요하고 쓸모 있는 이야기인 양 열심히 아주 열심히 들었다.
남자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정성껏 들었다. 항상 상대방을 똑바로 향하고 있는 저 어깨. 어떤 말이든… 상대를 향하느라 어깨를 비스듬히 기울여야 할 때도 귀를 가까이 대며 최선을 다해 듣고 반응한다. 때로 사람들의 혼잣말이나 쓸모없을 이야기에도 일일이 열심히 대답하는 모습은 모자라게 보일 정도로 기막힐 지경이지만, 그 몸짓만으로 그 어깨만으로 남자는 세상 사람들의 신뢰를 당연한 듯 받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여자의 가슴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