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분 고이치로, 구마가야 신이치로《책임의 생성》
다리에 장애가 있는 한 사람이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영화관에 갔다. 그런데 그 영화관에 계단밖에 없다면? 70년대 이전까지는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그 사람의 다리에 문제가 있다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8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계단만 있고 엘리베이터는 없는 영화관 쪽(사회적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보게 되었다.
전자와 같은 사고방식을 장애의 '의학적 모델'이라고 하고 후자를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부른다. 신생아 가사(신생아 가사는 분만 전, 중, 후에 태아나 신생아가 어떤 원인이든지 전신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탄산가스 제거 및 산소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질환)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를 앓아 장애를 가지고 있던 누군가는 80년대에 이러한 사고방식을 접하고 '이제야 나는 살아갈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구마가야 신이치로다. 앞의 내용은 그가 <책임의 생성>(에디토리얼, 2025)을 통해 말한 내용이다.
<책임의 생성>은 고쿠분 고이치로와 구마가야 신이치로라는 두 학자가 함께 쓴 책이다. 작년 6월쯤 원고를 받아 초교를 시작했는데 올해 2월에야 책이 나왔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중동태'라는 조금은 낯선 언어의 '태'를 꺼내 들어 의지와 책임에 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 책 <중동태의 세계>(동아시아, 2019)로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끌어냈던 학자이다.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뇌성마비를 앓고 장애를 가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사자 연구를 하는 학자이다. 당사자 연구란, 연구자가 연구 대상과 동일한 경험을 가진 당사자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수행하는 연구 방식이다.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라니…. 둘 중 어느 것도 쉽지 않아 '이 여름, 쉽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겨울이 지나 책이 출간되었다.
서로 공명하는 학문의 세계
"구마가야 선생님이 당사자 연구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나 사건을 알려주고 내가 그것에 대해 개념을 내놓는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맞닥트린 사례나 사건에 구마가야 선생님이 개념을 제시해줄 때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이어져 온 '왔다갔다'의 현 단계에서의 기록입니다."
- <책임의 생성> 한국어판 서문 중
그러니까 이 책은 철학자와 장애 당사자 연구자인 두 학자가 서로의 학문을 바탕으로 현장의 '구체성'과 철저히 사유한 '추상적 개념'으로 서로의 이해를 돕거나 실마리를 찾거나 새로운 학문적 아이디어를 획득하는, 두 학문의 세계가 공명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문과에센스' 강의에서 구마가야 신이치로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재구성한 것과 아사히문화센터 신주쿠 교실에서 토론했던 내용이 담겼고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현장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생생한 질의와 그에 대한 응답이 정리되어 있다.
다루는 주제 범위도 다양하다. 능동과 수동의 패러다임과 중동태, 당사자연구와 당사자 주권, 자폐스펙트럼장애, 중독, 현상학과 발달장애, 자유의지와 책임, 다수와 소수 등.
이렇게 두 학문이 서로 공명한 통섭의 결과로 우리는 "(자신을) 연구한다는 것, 다양한 곤란함과 함께 살아 나간다는 것,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고 나, 사회 그리고 함께 살기의 세계관을 사유할 수 있다.
수동태도 아니고 능동태도 아닌 '중동태'적 태도?
고쿠분 고이치로가 말하는 중동태는 좀 낯선 언어 체제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 생각의 틀을 만들고, 그 생각의 틀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규정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능동과 수동의 측면에서 대립하는 시각에 익숙한 우리 생각의 틀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고 있을까.
'약물의존증자'를 예로 든다면 약물에 의존하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든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되는 대로 놔두든가' 하는 것처럼 능동과 수동의 자세로 이분화해 생각하게 되고 결국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안 돼!' 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리고 능동적이라 간주된 주체들은 그 행위에 책임질 것을 추궁당한다. 반대로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되면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런 식의 결론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고쿠분 고이치로는 능동태도 아니고 수동태도 아닌 그 중간이라고 설명되어 온 그리스어 문법 용어인 '중동태'에 주목했다. 능동태와 수동태에 익숙한 시각으로 만든 틀에서는 행위에 책임의 추궁이 따르기 쉽다. '의지'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오는 데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책임을 묻는 언어를 고쿠분 고이치로는 '심문하는 언어'로 부른다.
"능동과 수동을 대립시키는 언어는 행위의 의지를 문제삼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같은 현상이라고 자기 의지로 나타났는지 아니면 나타나도록 강요받은 것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라고 강하게 추궁하는 이 언어를 '심문하는 언어'라고 저는 부르고 있습니다.
- <책임의 생성>, 87쪽
주체와 객체가 분명히 구분되는 능동태와 수동태와는 달리 중동태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거나 그런 수동과 능동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물거나 흐릿하게 만든다. 중동태는 주체와 객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책임이란 무엇일까?
<책임의 생성>에서 생성되는, 생겨난 '책임'은 그러니까 자유롭고 자율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강압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책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책임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의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선택이 이루어졌다면 거기에는 의지가 있었던 거고, 의지가 있었기에 선택이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쿠분은 의지는 마음속에 느껴지는 것이고 선택은 현실의 행위이기에 양자는 전혀 다른 것이니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언가 선택하는 행위를 단순히 그 행위 자체로 보고, 거기에 의지가 있었냐 없었냐 하는 것은 또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의지와 선택을 동일시해 그 선택에 책임을 묻고 추궁하는 것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이러한 '의(義)의 마음'이 아닐까요. 자신이 응답해야 할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사람은 책임감을 느끼고 응답합니다. 이것이 원래 책임이라는 말의 의미가 아닐까요."
- <책임의 생성>, 97쪽
의지 개념을 사용해서 야기되는 책임이라는 건 "타락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책임은 "응답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우리가 아는 의지라는 개념에 의해 야기되는 책임에는 그 어디에도 응답의 계기가 없다.
우리의 일상은 주위의 반응과 응답으로 흘러간다
책임은 응답과 연결된다. 어떤 행위나 사건이 있을 때 단순히 대답하는 것은 '반응'이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응하는 것이 '응답'이다. 자기 '나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행위나 자신이 마주한 사건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롭다고 느낀다.
응답하는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응답해야 할 상대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 자기들과 비슷한 동등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응과 응답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 우리의 일상은 보통의 일상이 될 것이다.
"저는 요즘 한나 아렌트의 '고독'의 정의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거든요. 그는 '고독'과 '외로움'을 구별했습니다. 고독이란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반드시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건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없을 때, 사람은 누군가 자신과 함께 있어 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때 사람이 느끼는 게 외로움이라고 했지요."
- <책임의 생성>, 321~322쪽
이런 고독과 외로움의 정의가 당사자 연구에도 가닿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물론 당사자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며, 생각하며 구축하는 모든 세계관에도 가닿을 것 같다. 문제나 상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우리 인간은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자율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받아들여 책임질 수 있다.
앞서 "자신이 응답해야 할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사람은 책임감을 느끼고 응답합니다"라는 고쿠분 고이치로의 말이 하나의 화두로 마음속에 남아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응답해야 할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내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지, 누군가 함께 있어 줄 사람을 찾는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연대할지, 그 '내 나름의 방식'이란 것은 잘 익어가고 있는지, 한 번쯤 성찰해 볼 계기가 될 것 같아 권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편집의 책산책'에도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