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그리움, 첫사랑의 시인

양자오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릴케 읽는 법

by 김편

중학생 시절, 문집 만들기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릴케의 ‘그리움이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이형기의 ‘낙화’, 김남조의 ‘평행선’ 같은 시나 황미나 작가의 만화 ‘아뉴스데이’, ‘굿바이 미스터 블랙’ 같은 만화의 한 장면이나 지문을 옮겨 적은 것이 주 내용이었고 마지막에는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색깔이나 노래, 만화 제목, 좋아하는 선생님이 누구냐고 묻는 앙케트 내용을 덧붙이곤 했다. 나도 유행에 발맞추어 만화 주인공의 눈물범벅 얼굴을 베끼고, 그 옆에 릴케의 ‘그리움이란’ 시를 옮겨 적던 열다섯 살 시절의 추억이 있다.


목마의시.jpg <열다섯 살의 감성> 중학생 시절, 앙케트를 겸한 문집 만들기가 유행이었다. ⓒ 김은경


그 오래된 문집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시인 중 한 명을 소환했다. 내 사춘기 시절의 오래된 문집과 함께 떠오른 추억의 시인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책장 깊은 곳에서 누렇게 바래 온 문집이 어쩌다 보니 4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만큼 긴 역사를 가진 추억이지만 그 긴 역사에 비해 내가 기억하는 시인 릴케는 몹시 단편적이다.


장미 가시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는(실은 급성 백혈병이라느니 패혈증이라느니 그의 사인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과장된 비극적 이미지와 그의 사랑 시에서 어렴풋하게 느꼈던 낭만성과 우울의 심상이 아는 것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미미한데, 이제 와 생각하니 나는 릴케를 ‘뭘 모른 채’ 사춘기와 함께 떠나보낸 것 같다. 그렇게 잊었던(혹은 잃었던) 시인을 양자오 선생의 세계문학 공부를 통해 다시 만났다.


무수히 인용되며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유유, 2025)의 부제는 ‘릴케 읽는 법’이다. 중화권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소설가, 문예비평가인 양자오 선생은 그동안 유유 출판사의 ‘세계문학공부’ 시리즈를 통해 하루키, 마르케스, 헤밍웨이, 카뮈와 같은 세계문학작가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읽는 법을 소개해 왔다. 그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소개하는 작가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이다.


내가 릴케에 관해 뭘 몰랐다고 느끼듯,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이경 작가도 “백석과 윤동주가 사랑한 릴케,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드물”지만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이는 더욱 드물다”고 말한다. 확실히 우리에게 릴케는 그 어떤 유럽 시인의 이름보다 익숙하면서도 실은 무지하기도 한 시인인 것 같다. 그런 사정은 아마 타이완에서도 비슷한가 보다. 타이완 문학 풍조에서 릴케는 타이완 작가들의 작품 속에 “수수께끼와 암호로 즐겨 인용되며 무수히 오독되고 과장”되었고, 타이완 시인들이 인용하는 수많은 이야기에서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구태여 “작품을 찾아 읽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당연히 안다는 착각은 보아야 할 것을 대충 보게 만드는 법이다.



릴케가 말하는 ‘시’


먼저, 이 책에서 처음 거론하는 릴케의 작품은 그의 유일한 소설 <말테의 수기>이다. 이 소설에서 릴케는 주인공 말테의 입을 빌려 시가 무엇인지, 시를 쓰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사실 <말테의 수기>로만 접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양자오의 해설과 함께 하니 릴케에게 시가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그가 시에 관해 말하고자 한 것이 얼마나 지극한 내용인가를 새롭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 빈곤한 무명시인 말테(라고 쓰고 릴케라고 읽는다)는 시인이라면 삶과 사랑, 경험하지 못한 죽음의 기억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경험을 기억하고 저장했다가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릴케에게 시란, 그래야 그 충분히 깊고 고요한 체험의 심연 속에서 비로소 떠올라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시가 추구하는 것, 시가 대면해야 하는 도전은 이 수많은 소화된 체험을 통해 당신이라는 사람과 세상 사이의 다른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당신이란 사람의 가장 독특한 부분을, 당신이 당신인 이유를 표현하는 것이다.

-본문 60쪽


릴케에게 시인의 역할과 시련이란, 시인의 삶이란


릴케는 그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도입부에서 “시인의 역할과 시련은 부단히 용감하게 자신의 공허함을 발견”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내면의 공허함을 발견해야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충실하게 채울 기회를 얻는다고 말한다. 또 다른 시 <유대인 묘지>를 통해서는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일을 통해 자아의 재창조를 경험”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정확한 몇 줄의 글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이며 재창조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진정한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문득, 그의 그 유명한 명령,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의 마지막 행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라는 갑작스럽고 이상한 문구가 양자오의 해설과 함께 선명해진다.


“고로 어려운 것은 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기에. 자신을 재창조하지 않고, 반드시 변화해야 하는 삶을 살면서도 계속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본문 105쪽



좋은 길잡이와 함께 걷는 새로운 길


이 책에서는 <말테의 수기>를 통해 시와 시를 쓰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시 쓰기를 위한 조언을, <벗을 위한 레퀴엠>을 통해 죽음에 관한 물음을, <기도시집>을 통해 신에 관한 릴케의 사유를 양자오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신과 예술을 사고하는 방식, 죽음과 애도와 삶을 대하는 방식, 완전히 다르게 구축한 죽음의 이미지, 세상을 보는 관점, 우리와 세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사유, 시의 논리를 말하는 바를 꼭, 반드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혼자 가닿기 어려웠던 릴케의 세계를 어느 부분에서는 전율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곱씹어보는 매력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양자오’라는 학자 덕분이다. 때로는 길잡이가 있어야 이야기로 생겨나는 길이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당신이 창조한 이 세계를 떠날 수 없다. 이 세계는 바로 당신을 둘러싸고 당신과 관계를 맺은 모든 ‘사물’의 총합이다. 이것이 당신이고, 이것이 삶이다. 이것이야말로 산다는 것이다.” -본문 208쪽


마지막으로, 내용을 건너뛰어 한마디 덧붙인다. 릴케를 거쳐 와 양자오는 말한다. “모든 우연과 혼란은 우리가 진정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그렇다면 진정으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이 만들어지는 책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질문과 생각, 대답이 이어지며 삶과 신과 예술을 사유하게 되는데, 그의 말은 의외로 서늘하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다. 쓰고 보니 첫사랑과 청춘의 시인으로만 릴케를 오독했듯 이 책을 오해하게 할 수도 있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사유하는 것이 진정으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인가 싶기도 해서 덧붙였다. "겹겹이 쌓인 의혹과 걱정과 문제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살기 위한 '삶의 필요 목록'이 무엇일지, 무엇으로 나를 채워야 할지… 생각해 보는 사월이다.


릴케읽는법.jpeg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유유, 2025) 중화권 대표 인문학자 양자오의 '릴케 읽는 법'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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