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슈테판 츠바이크 《모르는 여인의 편지》
사랑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지점에서 우리는 늘 특정한 누군가여야만 할 때가 있다.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 나를 애정해서 좋고,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 나를 칭찬해서 뿌듯하고,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해서 가치가 생기는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늘 한 사람만을 원한다. 그리고 그 사람만은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봐 주길, 나의 사랑을 알아봐 주길,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길, 나만의 생각을 알아봐 주길, 그래서 ‘나’를 알아봐 주길… 간절히 바라곤 한다. 사실 그런 건 판타지에 가깝다. 말하자면 “한눈에 반했어요” 하는 류의 판타지다(간혹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찌하였든 그 마음은 간절해서 최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그 사람에게 선택(?) 받고 싶기에 무리하게 상대 앞에서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 놓기도 하는데 본인의 입장에서야 그것이 용기를 낸 솔직함이겠지만 과연 상대에게도 그럴까? 상대방이 보기엔 어차피 정보가 쌓이지 않은 모르는 사람이니 원래 그런 이라고 규정하고는 쉽게 지나치거나 오해한다. 그러니 결과는 절규와 절망이다. 책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단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내 절망과 절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여인은 매 순간 속으로 외친다. ‘이제는 나를 알아보실 거야. 이제는 틀림없겠지.’ 여인이 자신의 눈길 속에 흘려보냈을 간절한 절규는 분명 간절하고 절박했을 테지만 매번 상대는 알아보지 못하니 매번 절망한다.
하지만 저는 제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관계한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당신이 언제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여인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78쪽
“아이구, 이 사람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자존심이란 말이 너무 아파서 애잔하다. 오롯이 내 존재만으로 그 사람이 나를 선택하길, 알아봐 주길 바라는 연약한 마음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자기 밖에서 찾고자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꽤 많다. 나의 소중함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인정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은 상처받기 쉽다.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더라” “내 맘 같지 않더라” 하는 말은 대체로 진리이다. 세상에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은 없고 오히려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희한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 내 마음이란 것은 대개 나도 모를 것인데 하물며 더 모를 남의 마음에 자꾸 둥지를 만들려고 하니 둥지가 제대로 일리가 없고 그러니 매번 춥고 매번 외롭고 매번 헤매는 영혼이 되는 것 같다. 좀 쓸쓸한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 그런 둥지는 없다는 걸 나이를 먹으며 차츰차츰 인정하게 된다.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토록 오랜 어둠의 세월 뒤에 숨어 지냈던 저를 이젠 제발 알아봐 주세요. 이젠 제발 알아봐 주세요!” -113쪽
이 또한 여인이 끝내 말로 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외친 울부짖음이었을 뿐이다. 끝내 남자는 여인을 욕망한 적은 있어도 사랑한 적은 없고, 내 생각에는 죽는 순간까지 그 남자만을 생각한 여자조차 남자를 욕망한 적은 있어도 사랑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정말 사랑했다면 조금은 더 자신이 부서져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류의 아무 말을 늘어놓고 싶은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사랑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그 어느 사랑에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이 갑갑한 이야기에서 여자가 원한 것은 단 한 가지다.
“저는 사랑도, 연민도, 위로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저의 이 고백을 당신이 믿어 주시기를. 저의 이야기를 믿어 주시기만을. 오직 이것만을 당신께 간절히 원합니다.” -13쪽
아무것도 아닌 사랑, 아무것도 아닌 역사,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을까. 혹은 마지막까지 그녀는 자존심 수호만 한 것일까. 책장을 덮을 무렵엔 버스를 타고 그날의 숙소를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고개를 들며 세상이 좀 달리 보였던 기억이 난다. 오직 한 존재에게 갈구한 마음을 인정받지 못한 미저리misery, 그 ‘고통’이 오직 그녀만의 것일까 싶어서. 그런 고통으로 고독을 달고 사는 것이 우리 모든 인간이 아닐까 싶어서.
간혹 눈멀 때가 있다. 너무 반짝여서, 너무 탐나서, 너무 내 것인 것 같아서. 그리고 그런 처음의 눈멀었던 일을 기어이 훌륭한 서사로 완성하려는 욕심에 또다시 얽매이는 것도 같다. 그런 집착과 욕심에 얽매여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그나마 내가 찾은 방법이 있다면 ‘질문’이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어느 땐 질문조차 잘못된 것일 때도 있다. 틀린 질문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만 7년이 걸린 경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도 결국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 잘된 질문이든 잘못된 질문이든 그냥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던져본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을 질문하게 하는 내 집착과 욕심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며 결국 인정하게 되고 그러면 정신이 번쩍하는 느낌표를 만난다.
**인용글 출처: 슈테판 츠바이크, <모르는 여인의 편지>(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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