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불안 앞에서, 운다①

8화. 에밀아자르, 《자기 앞의 생》

by 김편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 허둥지둥 당황한다. 누구네 아버지가 수술을 해야 해, 누구는 할 수 없이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어, 누구 할머니가 치매래, 갑자기 돌아가셨대……. 일상이 깨지는 소식은 늘 갑작스럽고, 그 갑작스러운 균열은 앞날을 가늠할 수 없을 때 불안의 덩치를 더 키운다.


나이를 먹으니 그런 류의 뜻밖의 사건 소식이 심심찮게 접하는 일상 소식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매번 놀랍고 매번 겁먹는다. 남의 일만 같지 않다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며 언제고 내게도 떨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다고나 할까. 그것이 내 일이 될 것인가, 혈육의 일이 될 것인가가 다를 뿐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 수습되고 어떻게 전개될까, 그러고 나면 다…… 어떻게 될까.


그 구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 모두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 받지 않고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110쪽


아픈 몸은 당사자에게도 옆에서 지켜보는 주변인에게도 고통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거의 십오 년쯤 류머티즘을 앓으셨다. 관절은 차츰차츰 안 좋아졌다. 어느 때부터는 근교 나들이에도 계단이나 경사 진 곳은 피하게 됐고, 가족 여행이 힘들어졌고, 가끔 있는 가족 외식 때도 아무리 맛집이라도 계단이 있으면 제외되는 일이 당연해졌다. 물론 장 보는 일이나 외출도 점점 줄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쯤의 거리에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까지의 운동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하는 것이 그즈음 내가 엄마의 컨디션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언젠가 류머티즘과 당뇨가 악화해 약 한 달쯤 입원하신 적이 있다. 한 삼 일 동안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 급한 대로 직접 옆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워낙 깔끔한 성격이시라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어우~ 별나, 별나”하고 타박을 해버렸는데 삼 년이나 석 달도 아니고 고작 삼 일 간병하면서 아픈 엄마에게 그랬나 싶어 마음이 몹시 불편했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나 참 고작 이 정도에’ 하는 자책에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이제 우리 엄마, 아빠는 몸이 더 좋아질 일은커녕 현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가 최선인 연세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왈칵, 두려웠다.


고통스럽고, 늙어가고, 불행에 빠지곤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일상사다. 고통 받지 않고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는 그런 삶이란 없다. 시시때때로 힘들고 아프고 근심스러운 일은 닥쳤다 물러가곤 하는 것이 인생사다. 한평생 별일 없이 평온하게만 산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세상 이치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매번 삶의 불안에 가슴을 졸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늙어가는 일이, 그러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 자연스럽고 평온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나이를 먹으며 보고 듣는다. 그러니 누구네 집 어른이 어디가 편찮으시다든가 요양원을 알아본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말을 자꾸 하게 된다. 간혹 당장 무슨 일이 닥칠 것 같아 조마조마하거나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우리 생의 마무리가 고통 없이 자연으로 스며들 순 없는가, 하는 부질없는 소망을 품기도 한다.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하는 모모는 열 살 나이에 이미 그런 게 다 절실했나 보다. 소년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서커스 모형 진열장은 기계 세상이다. 울긋불긋한 옷차림과 반짝이는 빨간 전구를 달고 화려한 서커스 쇼를 펼치는 어릿광대와 곡예사, 힘센 장사, 마술사, 원숭이, 코끼리, 끊임없이 손뼉을 쳐대는 가짜 구경꾼까지 모두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기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 별세상을 보며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만큼 좋아서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모모의 어깨를 잡으며 금발을 늘어뜨린 한 여인이 묻는다. “너, 왜 울고 있니?”



**뒤편의 이야기는 8월 9일(토) 업로드됩니다.

**인용글 출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 2013)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 2013)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전 07화죽음,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없는 보통의 서사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