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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an 16. 2021

2-4) 집단 이기주의에 대처하는 법

부끄러운 생을 되짚어봅니다.

 새언니가 씩씩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가씨 이제 우리 주차 못할 것 같아요"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주차된 차에 물건을 가지러 간 새언니에게 어떤 남성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빌라는 지정 주차 지역이며, 이미 배분이 완료되었고 계약이 모두 되었기 때문에 다른 호수들은 당연히 주차할 수 없으며, 지금 막 모르는 차가 (전화번호는 기재되어 있었지만) 세워져 있어 타이어를 잠그려 했다는 식의 일종의 협박을 새언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도 그 남성이 자기네 집 앞에 내릴 때까지 내내 들어야 했고 영문 모르는 새 사과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와 달랐다. 나는 이 집을 매매 계약하면서 지정 주차를 요구했지만, 빌라의 주차장이 호수마다 분배가 되지 않아 지정주차는 어렵다고 단칼에 거절당했었다.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빌라의 관리업체, 분양사, 건물주 등에게 모두 연락을 취했고 지정 주차가 아니며 모든 입주민이 주차하기 꺼려하지만 가능한 구역을 포함하여 8곳 모두 주차 권리가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주차 문제는 빌라 입주민들끼리 잘 의논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입주민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분은 관리업체 일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적 있고, 감사하게도 번거로울 입주자 대표까지 자처해주시고 있어 여러모로 고마운 분이셨다. 이미 차를 소유하고 있는 입주민들 사이에 단톡 방이 있어 그곳에 나를 초대해주시기로 하셨고, 감사하게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보시고 분위기를 봐주시겠다고 선뜻 말씀해주셨다. 


 다음 날 이야기가 뜻한 바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초대드린다며 단톡방 초대가 왔다. 


-  안녕하세요! 초대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차가 없어서 차를 빌려서 쓰고 있거든요 ㅎㅎ 앞으로는 번호랑 호수 잘 기재해서 두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고정주차는 불가합니다


 새언니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가한 그 사람이었다. 인사도 없이 시작한 앞뒤 꽉 막힌 대화는 그 뒤에도 이와 같았다. 그 사람과 나의 대화는 사방이 꽉 막힌 상자 속을 헤매는 것처럼 출구가 없었다. 입주 시 지정 주차를 계약하고 들어왔다는 근거 없는 내용과 함께 주차구역은 이미 배분이 완료되었고 계약이 되었다는 내용, 권리는 단순 권리이니 계약된 순서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내용과 무슨 말을 해도 다시 돌아오는 고정 주차가 불가능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들이 둘 사이에 반복되었다. 


 이대로는 분쟁만 커진다는 생각에 분양사로 전화하여 항의를 했다. 분양사도 입주민과 통화를 한 듯 싶었는데 다시 전화 와서 OO님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세요. 주차하실 수 있습니다.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지정/고정 주차로 계약서를 작성한 입주민이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설명했고, 주차라인은 6대지만 골목 도로에 인접해 있어 주차하기 꺼려지지만 충분히 주차 가능한 2곳을 포함하여 8대까지 감안하여 생각하여 주셨으면 한다고도 이야기했고, 차 구매 의사가 있지만 다른 입주민들이 이미 주차장 사용하고 계시니 충분히 차량 구매를 뒤로 미룰 의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서로 양보하면서 좋게 타협하기를 바란다고도 이야기했지만 끝내 고정 주차 불가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마지막엔 나도 어깃장 놓듯 나는 집을 매매 계약했기 때문에 대지지분도 포함하여 권리가 있으며, 세대 당 주차 가능 수를 고려하여 1대는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주차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 뒤 예의 없는 답장을 읽씹 했다. 더 이상의 감정 섞인 언쟁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무턱대고 아무나 의심할 수 없지만, 워낙 흉흉한 소식들이 많은 서울살이에 혼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내 권리를 계속 주장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후로도 몇 달간 그 대화방엔 대화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카톡방이 울렸다. 

 나와 언쟁을 한 사람이 밤 중에 많은 눈이 걱정되어 눈 앞을 치워야 할 것 같아 조금 치웠다는 내용을 올리자 주차 문제 때는 단체로 읽기만 하던 ‘이미 주차 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 서로 고맙다고 인사하며 자기도 눈을 치우겠고, 주차장 청소를 준비하겠다는 내용들을 주고받았다. 


 나는 한순간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소외에 휩싸였다. 주차 문제로 카톡을 주고받던 기분 나쁜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침묵하고 그 사람과 나만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던 그 날은 꾸준히 나를 괴롭혀왔다. 



 네 말이 맞기 때문에 다들 조용히 하고 있는 거야.
다 알지만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아무 말하지 않는 거야


 엄마는 성난 나를 위로하듯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눈 소식에 서로 주고받는 정겨운 대화들을 훔쳐보다 잊고 있던 한 분이 떠올랐다. 바로 단톡방에 나를 초대주신 분이었다. 단톡방 사람들이 5, 4, 3, 2, 1 하고 읽고 있다는 흔적만을 남기며 사라져 갈 때, 내가 주차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면 양보하거나 여분의 공간(주차하기 정말 충분한 공간이다..)에 차를 세워야 함에도 나를 이해해주셨고 내 편에서 이야기를 꺼내 주신 그분이 다시 생각났다. 그분은 나와 그 사람이 언쟁을 하는 와중에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맞춰가자, 모두에게 권리가 있다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중립을 지키며 진정으로 화해를 권했었다. 물론 결과는 내가 양보하는 꼴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난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분을 생각하다 보니 부끄러운 내 과거가 겹쳐 올랐다. 나도 집단에 속해 있을 때가 많았다. 물론 오롯이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혼자된 적도 있다. 나는 집단에 속해 외로웠던 친구를 더 외롭게 만든 적이 있고, 더 많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많았으며, 내 이익이 우선될 때에는 다른 이의 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끄러운 과거의 나는 쉽사리 용서되지 않는다. 내가 주도했던 외면 속에서 외로웠던 이들을 떠올렸다. 수치스러운 내가 남았다. 집단에 속해 있어 안도하며 비겁했던 나 자신을 빗대어 보았다. 이 사람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이 몇 번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도 부끄러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번 주차 소동에서 어긋난 나의 권리보다는 소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준 그 한 분께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언젠가 나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자문했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이들에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도 해보았다. 당장은 자신이 없었다. 소소한 양보나 배려보다 더 큰 희생과 손해가 따를 때에도 나는 침묵과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지나왔던 내 생에 부끄러운 흔적들을 하나씩 되새김하니 무척 고역스러웠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이토록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이구나 체감했다. 그럼에도 내가 언젠가 외롭게 홀로 서있을 이들에게 조금은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을까 수치스러운 나 자신에 대고 희망을 걸어보았다.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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