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백 Jan 17. 2021

1-4) 감정 쓰레기통을 버리다

청소를 합니다.

주변이 깔끔해야 인생이 깔끔해진다


 엄마가 늘 내게 하시던 말씀이었다. 나는 유난히도 청소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커피를 좋아해서 늘 책상에 커피잔이 두세 잔씩 쌓여 있기 일쑤였다. 다 마시지도 않은 커피잔에서 곰팡이가 피어오를 때가 되어야 치울 마음이 생겼다. 어릴 땐 엄마가, 커서는 동료들과 친구들이 눈살 찌푸리며 치워줄 정도로 말이다. 옷은 벗고 싶은 곳에 훌렁, 빨래는 산처럼 쌓여 있고 설거지도 제때에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깔끔하지 않은 내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책을 정말 재밌게 보다가도 마지막 장을 넘기고 싶지 않아 옆에 툭, 다른 책을 또 열심히 읽다가 그 옆에 툭, 그렇게 쌓인 대여섯 권의 책들이 침대 위를 차지하고 비켜서지 않거나, 화장실에도 한 권, 소파 위에도 몇 권, 책상 위엔 자기 계발을 해보겠다고 전문서적 몇 권들이 제각각 구역을 지키고 있는 것도 못된 독서 습관 중 하나였다. 

 사랑을 할 때에도 다름없었다. 특히 매듭이 깔끔하지 못했다. 이별을 통보하는 방식도 어느 날 갑자기 톡으로, 문자로, 전화로 툭-. 상대방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멍할 때 그렇게 툭- 미처 자르다 만 실타래처럼 나 혼자 관계를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이별했지만 완벽히 이별되지 못한 인연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요즘엔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목구멍 뒤로 훌렁 넘기기 시작했다. 언쟁과 갈등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말문을 닫다 보니 상대를 향한 마음의 문도 닫히고 있다. 


 내 주변에 쌓이는 이 감정과 인연들은 정리되지 못한 채 못된 저글링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를 게워내야 한다.  


 우선 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혼자가 아닌 지금은 동백이가 혹여 먼지를 머리카락을 쓰레기를 입에 댈까 걱정되어 조금씩 집을 치워 나가는 중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먼지가 더 자주 눈에 밟히기도 했다. 눈에 밟힌 먼지는 동백이를 향한 내 사랑을 검열이라도 하듯 빤히 날 바라봤고,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청소를 하다 보니 이내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이 되어도 곧잘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청소란 것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밀물 같아서 금방 돌아서면 다시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참으로 할 것이 많았다. 바닥의 먼지를 치우려면 먼저 어지러운 것들을 정리해야 했고, 물건들을 정리하려면 넣어야 할 수납 바구니가 필요했다. 그 뒤엔 수납 바구니 별로 무엇을 담을지 분류를 해야 했고, 분류를 하다 보니 몇 년 동안 손도 대지 않은 물건들이 어찌나 많은 지 버려야 할 것들이 눈에 밟혀 내 속을 간지럽혔다. 


 결국 나는 대청소를 결심했다. 분리수거를 해야 할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종이류, 플라스틱류, 병이나 캔류, 비닐류에서부터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가뜩이나 좁은 집이 쓰레기통들로 한자리를 차지했다. 냉장고에 가득 메운 오래된 음식물들도 정리가 필요했고, 그때그때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서 진공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마련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문 밖을 나서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집이 비워졌다. 분명 이사 올 때에 여러 묶음을 버리고 왔건만 손이 잘 가지 않는 먼지 쌓인 책들,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은 헌 책들도 눈에 밟혔다. 헌 책들은 yes24 중고서점을 이용해 정리했다. 어플을 통해 바코드를 스캔하면 중고 매입가가 얼마인지 한눈에 알 수 있고 한 박스에 20권씩 담아 문 앞에 두면 회수해가시는 것까지 너무도 편한 책 처분 방법이었다. 그렇게 책장을 게워내니 금방이라도 새로운 책이 올 것 같아 설레었다. 입지 않는 옷들은 당근 마켓을 이용하거나 지인과 나누었다. 정리된 옷 중에서 한 두벌쯤 선물하거나 팔러 나가게 되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비워진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채워질 것이라는 새로운 설렘을 낳았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무자비하게 쏟아내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타인의 작은 실수에 분노하거나, 자신의 상식과 다르다고 느낄 때,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그저 습관적으로 감정을 뱉어낸다. 바로 나였다. 청소를 스스로 해야 하듯 나의 감정 쓰레기들도 나 스스로 버려야 한다. 더 이상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하길 강요할 수 없다. 


 책 읽는 습관도, 사랑과 이별을 할 때 마음가짐도, 관계에 있어서도 청소처럼 한 걸음씩 좋은 습관을 만들고 지켜가면 언젠가 나도 개운한 관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해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깔끔하게 정리된 선들과 책상을 보면서 아직은 더 수련해야 할 내 마음을 함께 본다. 


작가의 이전글 2-4) 집단 이기주의에 대처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