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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an 09. 2021

1-3) ‘엄마’라는 잔인한 숙명

누구의 불운도 누구의 행운도 계속되지 않는다.

 2020년 한 해에 엄마는 많은 생을 살아냈다.

 동생과 엄마의 엄마를 하늘로 보냈고, 딸은 암에 걸렸다. 셋 모두, 아직 잃지 않은 나까지 포함하여 암에 빼앗긴 세 가지 생을 살았다. 엄마의 엄마는 폐암, 동생은 구강암, 딸은 대장암, 엄마의 속은 희뿌연 먹물과도 같았을 것이다. 


 엄마에겐 6명의 손자들이 있다. 2명의 아들이 나 말고 더 있고, 2명의 며느리가 그리고 1명의 아들 같은 조카와 조카며느리가 있다. 무엇보다 제주도에서 만나 여생을 함께 동거 동락하고 있는 남편도 있다. 


 엄마의 남편이자 나의 아버지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적 점쟁이에게서 궁합을 보고 난 뒤 엄마에게 순금 거북이 목걸이를 선물했다. 점쟁이가 아빠는 평생을 거북이처럼 엄마 앞에 돈을 모아다 줄 것이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빠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엄마에게 딸이 하나 있는 것과 비슷했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의 생을 합쳤고, 우리는 대가족이 되었다. 아빠는 그 후 정말 거북이처럼 꾸준히 엄마에게 가족에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희생하는 생을 택했다. 두 개의 큰 생이 합쳐 하나의 생이 되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쌓였다. 

 엄마의 풍성하면서도 길고 웨이브 진 머리를 본 기억은, 오빠들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함께 살던 집에 찾아올 그즈음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불 꺼진 방에서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던 엄마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던 그 밤에 엄마는 목덜미가 훤히 보이도록 쇼트커트를 하고 춥고 어두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신 엄마의 긴 머리를 볼 수 없었다.


 엄마는 내 생에 딱 두 번 나에게 손을 댔다. 한 번은 외할머니네 나를 남겨두고 제주도로 가려할 때 어린 딸이 하도 매달려서, 또 한 번은 사춘기 딸이 아빠에게 외할머니댁으로 간다 소리쳐서, 쳐다만 봐도 가슴 시린 딸에게 손을 댔다. 체구가 워낙 좋고 불 같은 성격이셔서 한 번에 그칠 리 없었던 매질에 멍은 내가 들었는데도 엄마 마음이 더 멍들었을 것은 두 말할 것 없다. 


 엄마의 책장에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오갔다. 자기계발서부터 일본어 회화책, 영어 회화책, 경매나 주식 관련 책들이 아무런 기준과 규칙 없이 책장의 자리를 옮겨 다녔고 이내 사라졌다. 남는 것은 성경과 성경을 수없이 필사했던 엄마의 노트들이었다. 아빠가 밤이면 밤마다 텃세가 심한 제주도 동네 어르신들의 보일러를 고치러 불려 나갈 때에도, 엄마가 추운 겨울 횟집에서 서빙하며 발을 동동거리던 때에도 나는 책 한 권씩 읽으면 엄마에게 용돈을 받았다. 엄마는 내게 책을 사줄 때 가장 환히 웃었고, 다 읽었으니 용돈 달라할 때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조금씩 읽는 책이 많아지고 그 주기가 짧아지자 나는 양심적으로 금액을 낮추다가 이내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책을 사랑한다. 엄마의 교육은 성공적이었다.



 그런 엄마는 작년에 몇십 년 동안 의지한 종교와 이별하고 세례를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고, 일주일에 두어 번 50원짜리 고스톱을 치러 동네 슈퍼로 외출하며, 요즘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달고 산다. 그리고 20여 년간을 머무른 집 베란다에 작은 다육이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김포공항에서부터 챙겨간 버리기 아까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서부터 제 할 일을 다한 다양한 포장용기들이 엄마의 손끝에서 예쁜 화분으로 자라났다. 여유로운 하루에는 그곳에서 2~3시간을 멍하게 혹은 어지럽게 앉아있다 했다. 마음 아픈 딸이 드라이브하고 싶다고 억지를 부려 엄마를 모시고 간 다육이 농원에서 이 시대의 엄마들이 얼마나 다육이를 사랑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집에도 엄마가 두고 간 다육이들이 자라고 있다. 


엄마의 다육이 정원


 그런 엄마가 다시 무너지는 듯하다. 


 엄마도 네가 먹는 약 먹어볼까?

 아무나 주는 약 아니라며 갱년기냐 다그치기만 하고 훌쩍 전화를 끊었지만 못내 가슴이 시렸다. 항암치료를 하던 내 곁을 떠나 다시 제주도의 품으로 돌아간 엄마가 다시 씩씩하게 생을 살아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믿음은 그저 못난 딸의 이기심이었다. 


 우리 두 모녀는 서로를 지독히도 그리워하면서 끝끝내 함께 하지 않는다.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서로의 마음이 시려서 못 견디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는 여러 사연을 갖고 설득해봐도 끝내 서울에 남으라는 엄마의 말을 이젠 더 이상 서운하게 듣지 않는다. 

 너른 바다를 사이에 둔 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내 몸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는 세상에서 가끔 안부 전화해드리는 것뿐이다. 



 그렇게 전화를 해도, 받아 달라고 애원을 해도, 받지 않더니 요즘엔 왜 이래? 

 요즘 나는 엄마를 귀찮게 한다.  엄마는 투정을 하지만, 이내 좋아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히 그려진다. 동백이를 핑계로 사진도 동영상도 영상통화도 더 자주 건다. 


 누구의 불운도 누구의 행운도 계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은 오늘이라는 새로운 생을 낳고 오늘의 생은 내일이라는 생을 낳는다. 지속되지 않는 불운과 행운 속에 단 하나 지속되는 생이 남는다. 그리고 그 생도 언젠가는 닫힌다. 


 엄마의 2020년 불운은 그렇게 마감했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딸처럼 행운도 함께 마감했다. 2021년은 우리의 생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나의 오늘 생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를 향한 애정 어린 글을 쓰는 것으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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