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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an 08. 2021

2-1) 커피를 마실 시간입니다

행복의 루틴을 만듭니다.

 내 생을 구성하는 요소를 몇 가지 고르라면 그중 커피가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보통 원두의 원산지, 향, 산미, 볶음 정도와 기간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아니다.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더 배탈이 자주 났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면 꼭 화장실을 갔다. 우유가 한몫 크게 작용했다. 따뜻한 우유와 시럽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사랑하는데, 장은 유독 견디기 힘들어했다. 카페에서 어떤 우유를 쓰느냐에 따라 화장실 방문 빈도수가 급증하기도 급락하기도 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또래 여느 딸들처럼 나도 스타벅스에서 프리퀀시 모으는 것을 즐겼고, 매해 다이어리를 받았으며 가끔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프리퀀시를 받곤 했다. 유명 바리스타의 커피 브랜드를 방문했을 땐 시럽이 들어간 커피류는 없다며 이상한 표정과 말투가 내 커피 취향을 무시하는 듯했지만, 난 아직 커피 취향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점들은 아니다. 


사랑하는 친구와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학교에 다닐 때에는 종종 수업에서 나와 카페로 향했다. 공부에 그다지 취미가 없던 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그 날의 기분에 대해 그 날의 날씨에 대해 그 날 함께 자리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글을 끄적이기를 즐겼다. 어떤 날은 흐린 날씨와 우울한 기분 그리고 창가 자리를 차지한 부지런한 대학생에 대해 썼고,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았지만 보고 싶은 이 때문에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려 글을 썼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커피를 받아 손에 들고 내 책상으로 가면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을 받았다. 향긋한 커피 향이 나를 감싸면 ‘자 오늘도 달려볼까’ 하며 이메일을 보기 시작했고, 동료들과 가끔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나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 내기 등을 하면서도 커피를 마셨다. 퇴근 후에 동료들과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를 찾기도 했다. 


재택근무 시대가 도래해도 커피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차가운 새벽에 잠에서 일어나면 먼저 화장실로 가 이를 닦고 커피를 마실 준비를 한다. 텁텁한 입이 어느 정도 정돈되면, 즐겨 사용하는 385ml 컵과 우유 거품기를 준비한다. 우유 거품기 max 부분에 소화가 잘된다는 저지방 우유를 따르고, 버튼을 눌러 작동시킨다. 그 사이 컵에 꿀 두 번을 펌프해 넣은 뒤 작년 네스프레소에서 구매한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커피를 추출한다. 추출된 커피에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넣고 거품을 휘저으면 나만의 커피가 완성된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만든 루틴이 지켜지지 않을 다른 어떠한 방해물도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이들은 정반대의 상황이 되겠지만, 혼자 사는 나로서는 이 루틴이 지켜진다는 것이 가장 큰 안도를 준다. 커피를 다 준비하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와 마주하면 모니터 뒤로 슬금슬금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창틀에 줄지어 선 작은 다육이들과 동백꽃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저귀는 새소리도 언뜻언뜻 저 멀리 들려온다. 컴퓨터 왼쪽으로는 작은 창이 있고 이 작은 창에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어젯밤 안부를 전하듯 나를 스쳐간다. 커피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작은 산 능선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어둑어둑했던 옷을 갈아입는다. 


 어떤 행위나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 자리가 오래 굳어지면 루틴이 된다. 커피는 어느새 내가 만든 하나의 의식이 되었고, 의식을 치르지 않은 날은 어김없이 발을 동동거리게 되지만, 어느새 그 동동거림마저 내가 숨 쉬고 있고 살아내고 있고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의 목소리가 되었다. 

커피는 요즘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루틴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카페에 가지 못해 주춤거리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루틴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그런 루틴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우리는 왜 커피를 사랑할까. 커피를 품고 있는 다양한 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나눌 수 있는 대화, 편안한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위로받는 시간,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해주는 친구, 추운 겨울 꽁꽁 얼어버린 손을 잠시나마 녹여주는 고마운 존재, 바쁜 일상 속에 잠깐의 여유 우리는 모두 커피의 노예가 되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커피가 아닌 담배, 술, 산책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를 우리 각자의 루틴 속에 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어떤 사물이나 행위에 루틴 만들기를 권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만의 루틴이 나를 평온하게 해 준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 없지 않을까. 내가 가는 장소, 내가 즐겨 입는 옷, 나만의 행동 모두 루틴의 소재가 된다. 하루의 시작에 커피라는 매개체를 두지 않는다면 난 오늘 같은 새벽을 느끼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의의를 부여한 행위나 물체에 내 행복을 반사하여 본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반사된 행복을 먼저 지그시 본다. 그 행복 속에서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이 추구하는 행복은 어떤 것에 반영되어 있는지 주변을 살펴본다.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나에게 설렘을 주는 것, 나에게 숨 쉬라 말하는 것, 나를 움직이는 것까지 내가 바라보는 그 방향이 되어 반사된다. 


 엄마는 혼자 서울살이 하는 내 집에 크기가 저마다 다른 부엉이 세 마리, 작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액자, 풍요로운 삶을 누리라며 금전수 화분을 두고 가셨다. 어떤 것 하나 의미가 대수롭지 않은 것이 없어서 버리기도 뭣한 그런 물건들이 하나둘씩 내 생에 쌓인다. 이렇게 나는 생에 대한 의지를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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