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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Apr 02. 2020

신혼여행, 1년 후

당신의 결혼은 순항하고 있습니까?

작년 오늘, 난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여행을 만끽 중이었다. '여행을 싫어해도 괜찮습니다'라는 글로 과분한 조회수를 기록했던 발리 신혼여행. 물론 그것이 인생의 한 번뿐이라는 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린 벌써 다음 기회를 노릴 만큼 용의주도하거나 부지런한 부부가 아니다(농담 삼아 이혼 절차 또한 결혼만큼 귀찮을 테니 그냥 대충 살자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 부모님이 알면 등짝 스매싱각). 아무리 생략해도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끊임없이 이어졌던 결혼 준비를 생각하면 지금도 뾰족한 바늘이 두개골의 문을 콕콕 두드리는 기분이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결혼식에 참석해준 지인들에게 하나하나 감사 문자를 드리는데, 전 직장의 선배가 '신혼여행만을 앞둔 그 순간' 이 가장 행복하지 않냐며 부러움을 표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선배처럼 나도 인생의 대소사를 맞이할 때 클라이맥스보다 절정의 순간을 눈 앞에 둔 바로 직전이 가장 행복하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고 개강날까지 걱정없이 놀았던 20살의 2월, 이직을 앞두고 전 직장의 퇴사 날과 새 출근날 사이에 낀 일주일의 휴가 그리고 비행기표가 예약된 여행 전날의 나날들. 선물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물로 직접 선물을 확인하는 순간보다 그것을 풀어보기 전 상대방에게 건네받으며 주는 이의 수고로움과 따뜻한 마음, 기쁨과 설렘을 헤아리는 시간이 나는 훨씬 더 흥분된다(물론 그 포장이 오렌지색 박스라던가 검은색 박스에 하얀색 꽃이 달렸다거나 하면 아드레날린이 배가 되곤 하지만). 지금에서 말하지만 클라이맥스 같았던 결혼식 당일보다 다음날 신혼여행만을 앞두고 공항으로 가던 길이 더욱 흥분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결혼식의 절정이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지속된 건 사실이지만, 신혼여행기(제 브런치에 아직 있습니다)에도 썼듯이 정작 인생의 '단 한 번 뿐일지 모르는 그 여행'에서는 유지되지 않았다. 최고점에 머무르던 감정의 곡선은 바닥까지 내리치며 요동치다가 현실로 돌아올 때쯤 어디 중간 즈음에서 타협하고 정상 텐션을 찾아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결혼을 위해 떠들썩한 준비를 몇 달씩 하고 본격적인 결혼의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파티를 여는 설렘으로 혹은 우리처럼 오늘이 어제인 듯 아주 덤덤하게.


결혼 생활 1년을 돌이켜보면, 신혼여행 때 사소한 물의(?)를 일으킨 감정의 온도 차이가 '뜬금없이 벌어지는' 다툼 에피소드의 복선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연애 때부터 잘 싸우지 않는 편인데, 물론 그건 감정에 솔직한 나(동의어: 감정 기복이 심함, 이기적임, ㅈㄹ맞음)와 그런 나를 덤덤하게 받아주는 남편(답답이; 내 기준에서)의 성향으로 때문이다. 우리는 만남부터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존중하는 것을 제1의 미덕으로 이어왔기에 치약을 아래부터 짜고 중간부터 짜는 것을 가지고 싸우지는 않지만, 결혼 생활에서 감정이 어긋나는 일은 유치해서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곤 한다. 나의 경우는 그럴 때마다 결혼을 부정하고(내가 왜 결혼을 해서 이런 감정 소모를!), 남편은 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혼자 방에 들어가 게임만 죽어라 하다가 다음 날엔 다시 나에게 어리숙하게 말을 걸고 아무렇지 않게 외식할래?라고 묻는다.  


연애의 절정이 결혼이라면 결혼의 절정은 무엇일까? 신혼? 아이를 낳는 순간? 음 아직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회의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런 건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신혼여행을 통해 결혼 생활의 고락(苦樂)을 간접 경험했듯이 기쁜 날과 고된 날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고, 돌아올 때는 옆자리에 함께 나란히 앉아 있을 것이다. 감정의 텐션이 다시 요동칠 때도 올 것이고 요즘의 주가처럼 바닥을 기어가듯 천천히 움직이기도 하겠지. 그럴 때마다 나는 또다시 결혼을 부정하며 극한 감정을 주체 못 할 것이고, 남편은 비로소 프로게이머로 데뷔를 하게 되려나? 결혼이라는 항해는 큰 파도 없이 순항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암초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잡은 키를 놓지는 않으면 어디로든 함께 갈 수 있으리라. 이틀 전 우리의 첫 결혼기념일을 맞아 직접 쓴 축하 카드의 수신인은 남편이었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주된 내용은 '잘 참고 버티자' 그리고 추가로 덧붙인 협박은 '매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걸 늘 명심하도록.'


결혼은 옷에서 같은 빨래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도 자신의 일을 말끔히 끝낸 건조기가 얼른 이 토사물을 치워달라고 빽빽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우리의 옷에서는 1년째 같은 다우니 냄새가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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