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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Apr 09. 2020

여행 사진 속에 정작 나는 없다

인증샷을 찍지 않았을지라도

외주 원고를 쓰다 보면 종종 필자의 사진을 요청받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1인칭 시점으로 어루만진 왜곡된 셀카를 보낼 것인가, 인물 대신 배경을 강조한, 그러니까 2인칭 시점의 풍경 사진 속 소품 같은 사진을 보낼 것인가를 두고 한참 고민에 빠진다. 물론 원고 한 귀퉁이에 손톱 만한 크기로 보일 걸 잘 알고 있지만, 원고를 보낼 때만큼이나 신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외장 하드에 저장된 수 천장에 달하는 여행 사진 속에 정작 내가 등장하는 사진은 스무 장도 안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런던에 간 2014년부터 여행 사진을 폴더 별로 모아뒀는데, 수많은 폴더를 여러 번 클릭해도 도시의 랜드마크라던가 여행 풍경과 어우러진 '지극히 여행자스러운' 독사진 하나를 찾기 힘들었다. 수많은 도시는 대부분 혼자 여행한 탓도 있고, 동행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 입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유유상종처럼 나와 여행하는 혹은 여행했던 사람들도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잘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들도 나처럼 여행의 멋진 순간을 기록하느라 진을 빼느니 최대한 눈으로 담고 온 마음을 다해 느끼는 줄만 알았다. 물론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추후 그들의 여행 사진 피드에는 셀카를 비롯해 누가 찍어줬는지(혹은 누구를 괴롭혔는지) 알 수 없는 멋진 인생 샷이 수둑룩하게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너 표정을 보면 찍어달라는 말이 나오겠냐?'


역시나 유유상종이라고 내 친구들은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른다. 잠깐, 여기서 변명을 하자면 나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에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심지어 어떻게 다리를 길게 찍어줄까, 배경과 인물이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가로, 세로 '여러 번'의 셔터를 누르는 기본 상식도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건네받고 돌려주는 데까지가 나의 호의다. 상대방이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어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돈을 주고 나를 고용한다면, 기꺼이 해줄 것이지만). 흔히들 100장 찍어 1장 건졌다는 사진을 보면 훌륭한 사진 기술보다 좋아요를 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노력, 인내에 탄복할 때가 많다(좋아요를 받을 사람은 찍힌 이가 아니라 찍어준 이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라고 하지만, 가끔은 주객이 전도해 화를 부르기도 한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셀카를 찍다 실족사하는 관광객이나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돌진한 드론,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작품 앞에 모여 셀카를 들이대는 전 세계 관람객. 여행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일상 속 수많은 인증샷 속에도 보이지 않는 불편함은 숨어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셀카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공공장소의 불특정 다수, 찍는 이의 눈에는 이국적 일지 모르나 찍히는 입장에선 감추고 싶은 현실의 풍경도 참 많다는 이야기다.


나 또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내 눈에 아름답다는 이유로 혹은 기사에 언제 쓸지 몰라 일단 셔터를 누르고 볼 때가 많지만, 훗날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면 당최 왜 찍었는지 모를 의미 없는 사진이 더 많다(특히 기사로 정리하다 보면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이름도 성도 모르는 외국인이 찍힌 사진을 볼 때면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입장 바꿔 알 수 없는 SNS 피드 속이나 어느 신문 기사에 불특정 다수로 등장한 'XXX 한 동양인'이라고 적힌 내 사진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셀피든 아니든 우리가 여행을 하는 동안 악착같이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이면 배경도 멋있고, 인물은 왜곡된 아름다움으로, 남들보다 새로운 구도라면 금상첨화. 그렇게 우리가 남긴 여행 사진 한 컷에는 수많은 욕망이 함께 포착되고 있다. 내 경우는 옛 여행 사진을 꺼내볼 때마다 한 살이라도 어린 과거의 나를 추억하기보다 당시에 갖고 있던 불안과 고민, 시기와 욕망을 조용히 알아차린다. 카메라 렌즈가 주로 나를 향하지 않고 내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 담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느낀 사소한 감정까지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초점이 안 맞고, 앵글이 좀 비뚤고, 가끔 내가 좀 뚱뚱해 보이거나 못생겼으면 어떤가. 보여주기용 사진이 거북스러운 이유는 스토리텔링이나 감정이 빠지고 테크닉과 보정만 두드러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행하는 동안 멋진 셀피를 건지지 못했다고 슬퍼하지 마시길. 공식적으로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줄 거라곤 여권 종이에 다닥다닥 찍힌 입국 도장뿐이겠지만, 당신이 어디에 있든 진정한 여행자의 마음이었다면 가슴속에 이미 수많은 인증샷이 찍혔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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