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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Apr 26. 2020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습니다

매일 아침 코로나 뉴스를 찾아본 게 벌써 두 달이다. 로또 번호를 맞추는 심정으로 확진자 수를 실눈으로 확인하며 음이 무거웠고, 신규 확진자란에서 마침내  자릿수 나타났을 땐 가짜 뉴스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다.


현시점에서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생계가 시급한 사람에겐 전염병보다 눈 앞에 닥친 생활고가 더욱 모질게 느껴질 것이고, 기저 질환을 앓는 가족이 있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외줄 타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앗아간 불안. 사정이 어찌 됐든 저마다 '설마'하는 마음과 '혹시'하는 우려를 품고 사는 요즘이다.


확진자가 줄어들자 정부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서서히 생활 방역 대책을 내놓기 시작한다. 전염병이 세계를 위협하자 더 이상 종식이란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가 없다. 제 우리는 분단국가의 위험뿐 아니라 치료약이 없는 무시무시한 질병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품 살가야 할지 모른다. 물론 정부가 이야기하는 방역 대책이지금처럼 서로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얘기일 테지만, 어찌 됐든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 코로나 사태를 보며 나는 막연했던 여행 계획을 조용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여행은 다 갔네'.


예정대로라면 올해 첫 여행은 결혼 1주년을 맞아 타이완으로 갔을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잠시 백수로 지내는 동안 붐비지 않는 동남아 어느 도시를 골라 한 달 살기 같은 걸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출장과 휴가로 올해도 최소 대여섯 번 정도는 해외에 나갔다 오지 않을까 감히 예상했는데, 제는 어디를 가도 예전처럼 '여행'이라는 걸 마음 편히 할 수 있긴 한 것일까, 의구심이 다. 


코로나 덕분에 세계는 하나다 라는 클리셰 같은 문구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유럽과 미국의 가파른 확진 추세가 결코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닿을 수 있던 나라의 문이 닫히니, 괜히 엄청난 피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유난을 떨자면, 사방이 막힌 상자 속에 완전히 갇혀 버린 것 같아 허망하기도 하고.


정부에서 예측한 하반기가 되더라도 해외를 전처럼 마음 편히 오가기는 힘들 거라 감히 예상한다. 당분간 여행을 하는 사람이나 여행자를 받는 나라나 서로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애국인 것처럼 당분간은 국제적 거리두기가 자국민 보호를 위한 행동 지침이 될 수도 있다. 초대받지 않는 손님을 자처할 만큼 여행에 대한 의지는 사그라졌고, 일상의 무기력은 여행의 욕심도 삼켜버렸다.  올해는 반드시 필요한 출장 외 개인적인 해외여행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가만히 보면 바다의 풍경과 그 소리가 정말로 즐길 만한 것인지 의구심을 품다가도, 이런 풍경과 소리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호텔 방에 들어가서 하루에 100프랑씩 내기로 동의했을 경우에는, 이런 풍경과 소리가 정말 즐길 만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지지 못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왜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드는 법이다. 당분간 이국적인 풍경을 보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니,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중  '눈을 뜨는 방법' 챕터에 등장하는 이 문장이 더욱 친밀하게 와 닿았다. 그동안 집착적으로 떠났던 여행의 의미를 차근차근 곱씹게 된 것이다.


여행을 권해왔던 입장에서 나 또한 경제적 지출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보증할 거라 믿었던 사람이다. 내 안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고갈됐다고 느낄 때면 또다시 짐을 싸고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 떠났. 하지만 렇게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의 기억은 빠르게 휘발다음 여행 주기를 더욱 앞당고, 다음 여행이 계획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행을 통해 무수한 아름다움을 수집했지만 과연 그것들 중 '진짜 내 것'이 된 건 얼마나 될까? 프루스트가 강조하는 눈을 뜬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다시 한번 바라봄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행복이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게 매번 값비싼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만 가능한 일이라면 너무나 피곤하고 번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아름다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가진다면,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모두 여행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전염병의 도움(?)으로 그동안 거듭 말해왔던 일상을 여행하는 것에 대해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올해 나에게 일상을 깊이 여행하며 아름다움을 찾는 연습의 장이 펼쳐진 셈이다(흠. 이런 걸 정신 승리라고 하나요?). 중세 도시를 걷고 지중해 해변에 뛰어드는 대신 국내에서 열리는 인상파 작가의 전시에 기꺼이 찾아가고, 로마에 사는 친구에게 레시피를 물어 그녀의 머니가 만들어줬던 라자냐를 리해보며 지난 로마 여행의 기억을 되새겨야지. 그래도 타국으로 떠나고 싶을 땐 프루스트가 소리치는 일침을 다시 한번 꺼내보기로.

로마의 평원, 베네치아의 장관 그리고 말을 탄 샤를 1세의 위풍당당한 표정만 보려고 들지 말고, 찬장 위에 놓인 그릇, 자네 집 부엌에 있는 죽은 생선, 식당에 놓인 바삭바삭한 빵 덩어리도 좀 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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