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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Jan 07. 2020

여행과 관광의 경계에서

소외된 여행지를 발굴한다는 것

관광과 여행. 12월 모 매거진의 외주 원고를 쓰다가 두 단어에서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동안 여행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편애하고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된 것이다. 공식 명칭으로 ‘관광’이 들어가야 하는 곳에 습관처럼 여행을 갖다 붙이는 바람에 퇴고 때 여러 번 애를 먹었다.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 의미를 새겨 두자니 어딘가 탐탁지 않다.


관광 ;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

여행 ;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그렇다면, 유람의 뜻이 궁금할 것이다. 유람 ; 돌아다니며 구경함.)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관광도 하고 유람도 하고 풍경도 보고 풍습과 문물을 구경한다. 역전앞과 같은 동의어가 반복될 뿐이다. 그런데도 관광이라는 단어는 나도 모르게 기피한다. 온갖 광고와 시각 매체 혹은 학습으로 자리 잡은 편협한 판단 때문일 것이다. 관광이라고 쓰면 어떤지 우르르 떼 지어 다니는 등산복 무리가 먼저 떠오르고. 여행이라 하면 모름지기 아웃도어 복장을 했어도 라이카 카메라를 무심히 손에 쥔 자유로운 영혼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그는 철저한 혼자여야 한다. 그렇다면 관광과 여행의 차이는 동행인의 수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5인 이상이면 관광이고, 그 이하면 여행이라 부르는 것이다. 실 5인 이상이 되면 제대로 된 여정을 만들기 힘들다. 5명의 여행자 취향이 고루 섞는 것은 어떤 화학 작용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류의 역사처럼 리더가 필요하다. 여정을 만들고 이끌 선봉자와 이에 동의하고 따라나서는 이가 성립되어야 비로소 무리 지어 다니는 여행이 성립된다. 그러니까 관광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가이드 혹은 선봉자)의 일정에 맞춰 다니며 두루 구경하는 행위. 여행은 홀로가 될 수 있고, 여럿이 될 수 있지만 스스로 일정을 만들며 유람하는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나만의 논리로 대강 정리하고 말았다.  



 한 달 전 다녀온 베트남 여행은 사전적 의미나 자체적인 기준으로 보면 관광에 가까웠다. 취재로 방문한 호아빈성(하노이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의 고산 도시)에서 나는 그곳의 풍경과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했으니까. 소수 민족이 모여 사는 고산 지대 마을은 스스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유람할 정도의 여행지가 아니다. 말도 안 통할뿐더러 지도로 표기된 지명조차 명확하지 않아 최소한 드라이버나 통역이 동행해야만 한다. 또한 풍경, 풍습, 문물이라는 말이 역시나 잘 어울리는 장소다. 내가 방문한 소수 민족 마을은 가구의 절반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화장실이 없다.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를 여전히 자급자족으로 해결한다. 새해맞이 옷 1벌을 만들기 위해 4개월 전 옷감부터 만든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내가 본 가장 기이한 장면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와이파이 수신기였지만.


베트남 북서부 지역에 모여 사는 소수 민족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다. 전통복을 입고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등에 짊어진 소수 민족의 사진은 베트남 여행 책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베트남에는 54개의 소수 민족이 북서부 고산 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다. 내가 이번에 관광한 호아빈성의 마이차우(Mai Chau)지역도 그중 하나다. 몇 해 전부터 지역 주민이 직접 관광 활성화에 나서면서 베트남을 대표하는 지역 사회 기반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에선 주로 현지인이 홈스테이로 여행객을 맞이하는데, 아직은 관광화가 덜 된 지역이라 관광을 즐기는 쪽과 관광객을 받아들인 원주민이 서로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호스트는 언어 대신 몸소 배려와 친절함을 보여주고, 이쪽에선 그들의 생활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어떤 불편함도 감수한다. 사실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쩔 도리 없이 그냥 다 ‘댓츠 오케이’다.


 돌이켜보면 불편함이랄 것도 크게 없다. 산골에 가면서 30인치 캐리어를 끌고 가는 건 이쪽의 불찰이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 못 드는 걸 가지고 딱딱한 매트리스 탓을 하기엔 비겁하. 추위는 침낭이나 패딩을 넉넉히 챙겨갔으면 될 일이었다. 그들이 내준 매끼 엄청난 양과 종류의 음식은 아무 탈 없이 내 위를 두둑이 채웠고, 매일 밤 정갈하게 놓인 매트리스 위에서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베트남 현지인과 함께 다녔는데, 그는 여행을 이끄는 리더였고, 나를 포함해 동행한 이가 5명이 넘었으니 그건 관광이라 쓰는 게 맞았을 것이다. 이번 취재를 주관한 쪽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여행의 일환 중 하나인 지역 사회 기반 ‘관광’을 하고 있다고 인지시켜줬다. 비록 나는 관광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단어 편식자이지만, 이번 외주 원고에서는 기꺼이 남발했다. 오버투어리즘을 완화하고 소외된 지역을 알리는 지역 사회 기반 관광(Community-Based Tourism)을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우리의 여정이 현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로 인해 지역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부지런히 유람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해야겠지. 올해는 관광이란 단어에 대한 편견도 좀 버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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