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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Mar 04. 2020

모닝 맥주와 스테이크

포틀랜드에서 아침을

*이 글은 2년 전 혼자 미국 여행을 하는 동안, 혼자 밥 먹는 게 적적할 때마다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갔던 글 중 하나를 옮긴 것입니다. 노트북을  뒤지다가 발견했어요. 세상 쭈구리가 없네요.


2018. 10. 26 금

포틀랜드 BIJOU Café에서.


호텔을 옮기고 어쩌고 하니, 포틀랜드 3일 차. 낮 12시다. 호텔 근처에 있는 스텀프 카페에서 뭐 좀 써볼까 하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브런치 카페에 계획 없이 들어와 버렸다. 어차피 밥도 좀 먹어야 할 시간이다. 미국에 온 이후부터 엉망진창의 수면과 식사 시간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행히 어디 하나 아픈 데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오후 6시에 잠들어 새벽 2시에 깨고, 아침 7시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하루에 한 끼만 먹든, 그 한 끼를 맥주와 커피로 채우든 예민했던 몸도 그러려니 잘 받아들이고 있다. 사방의 테이블에서 모두가 우아하게 칼질을 하며 계란을 으깨고 조약돌 같이 생긴 튀긴 감자를 찍어 먹고 있다. 나는 맥주와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여긴 포틀랜드니까. 브루어리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1잔씩만 마셔도 여행자가 이곳의 수제 맥주를 모두 마셔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마다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사명감에 취해 아주 여행자스러운 주문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이블에서 용케도 나를 알아본 담당 웨이트리스는 내 주문을 완벽한 선택이라고 엄지를 추켜올려 준다. 따지고 보면 세계적으로 이 도시가 맥주 맛의 자부심을 갖게 된 것도 나 같은 인간이 포틀랜드의 맥주를 티끌만큼 경험해 보고는 “아 내가 마셔본 맥주 중 포틀랜드의 사워 맥주가 최고였어요. 영혼을 빼앗겼다고요.”라는 식의 리뷰를 구글맵에 올린다거나 인스타그램에 그럴싸한 사진으로 대신해 올린 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나 같은 여행 기자가 ‘포틀랜드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경험’ 같은 기사로 마음을 울리는 형용사와 스토리를 거창하게 풀어쓴 것도 일조했을 것이다.


진한 갈색의 사워 맥주가 나왔다. 뒤이어 푹신한 강낭콩 요를 깔고 달걀 이불을 한 겹 덮은 스테이크가 내 앞에 놓인다. 브런치 카페에서 스테이크에 맥주와 스테이크를 먹어도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레스토랑의 모든 이가 나를 쳐다보며, 그중 누군가가 “오늘 로라랑 브런치를 먹는데, 옆에 글쎄 땅콩 만한 동양인이 아침부터 맥주에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걸 봤어. 아주 대단했다니까.”라며 스몰 토크에 날 주제로 올릴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은 서로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고 있는데, 주문할 때 나는 왜 괜히 소심해졌을까? 아, 못난 인간.


낯선 세상에 들어오고 싶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뒤섞이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그걸 존중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 그래, 존중까진 아니더라도 티를 내지 않는 세상. 딱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나는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일주일 넘게 지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세상은 이토록 크고 넓으며 나는 한없이 작다는 사실이다. 티끌처럼 작아서 보이지 않아(물론 원래도 작아 잘 안 보이지만) 혹시 내가 여기 와서 진짜 투명 인간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들은 내가 필요할 때만 대답을 하고(혹은 내가 걸거나) 그 외엔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밤낮이 뒤바뀐 시차 속에서 지구 반대편에 온, 당신들과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완벽한 타인이 되는 건 내가 작은 사무실에서 매일 같이 갈망하던 일이었다. 타인 속에 들어가 타인이 되고 싶어 나는 매일 떠나고 싶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마치 인스타그램으로 모두가 엮여 있는 듯한 온라인 세계에서 뒤처진다는 느낌에 내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타인의 타인이다. 그렇기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요구해야 할 것. 내가 주문해야 할 것. 내가 원하는 것. 내면의 목소리 무시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면 자아의 갈등이 생길 때도 있는데, 예를 들면 브런치 카페에서 아침 식사로 스테이크에 맥주를 먹어도 되나 하는 고민 같은 거다(바로 내가 했던 그 바보 같은 짓). 그럴 땐 지금처럼 시켜 보면 안다. 고작 이런 일로 고민했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하다는 것을. 지구의 티끌 같은 내가, 미국의 투명 인간처럼 체류하는 내가 아침을 거하게 먹는다 하여 천지가 개벽하거나 CNN 뉴스에 등장할 일 따윈 발생하지 않을 거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지극히 소심한 눈치보기 테두리에서 행해지는 것에서는 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러니, 나는 맥주를 한 잔 더 시켜야겠다. 이번엔 좀 더 큰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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