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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Jul 18. 2020

방구석 여행이 지겹다

수고스러운 여행이 그리운 이유

 올해를 시작하며 수없이 일상을 여행하는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했건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호텔 방에 들어가 바다의 풍경과 소리를 들어야만 그것이 정말 즐길 만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인가 보다(무슨 얘기인가 궁금하다면, 일전에 쓴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습니다'의 편을 찾아보시길). 전 세계에 코로나 19라는 장벽이 쳐지면서 마음 편히 떠나지 못하고 방구석 여행이니, 랜선 여행이니 무얼 해봐도 공허할 뿐이다. 타고난 집순이라 늘 외출이 달갑지만은 않았는데, 요즘은 한 달에 몇 번 없는 약속마저 뜸해졌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멋진 공간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분명 여행에 빗댈 만한 생활의 활력소가 되겠지만, 어째 그런 사소한 기쁨마저 공허하게 느껴지는 노잼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여느 해 같았으면 지금쯤 다들 일찍이 예약해둔 여름휴가를 떠날 마음에 들썩였을 테지만, 어째 올해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조차 죄스럽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방호복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가 어려워서다. 물론 써놓고 보니 방구석 여행이 지겹다 같은 말조차 무척 배부른 투정 같다.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문을 점차 열어두고, 자가격리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도 낸 모양이다. 이를 두고 희망을 보는 사람도 있고, 절망을 보는 사람도 있다. 아직 내 주변에선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에 나간다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지만, 점차 한 두 명이 뭇매를 대신 맞고 여행을 감행해 본다거나 하는 일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과연 그들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여행 기자로 일하면서도 '여행을 싫어해도 괜찮다''여행을 등 떠밀려 가지 말아라'라고 주창했던 이유는 여행의 실재는 사진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의 장면만 지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더럽고, 치사하고, 위험한 이면이 늘 혼재한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에겐 떠나야 할 이유보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구체적이며 객관적 근거가 타당하지 않았던가? 전 세계 관광 도시마다 테러 위험이 끊이지 않았고, 인종 차별, 범죄, 전염병 등은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는 기꺼이 몸을 던져 어떤 위험천만한 상황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것과 맛있는 것을 찾아내고, 기쁨의 순간을 기록했으며 똑같은 여정을 누군가에게 강권하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여행의 실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사진 뒤에 감춰진 이면과 직접 대면하고 맞서는 무척 수고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지난 여행 사진을 들춰보며 이야깃거리를 찾거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일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재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 속 여행은 아름다운 풍경에 가려 실재를 감춘다. 비교할 만한 것이 딱히 없으니 자꾸 지난 시간을 끌어들여 과거 속 나를, 과거 속 여행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분명 모든 여행이 좋았다고만 할 수 없을 텐데, 지난 여행이 뭉뚱그려 행복한 시절로 분류돼 버렸다. 내가 그리운 것은 사진 속 아름다운 풍경이나 한 살이라도 앳된 얼굴이 아닌, 여행을 하며 겪을 수밖에 없는 생경한 좌절과 감춰둔 내면의 감정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1년 간 혼자 여행을 다니는 동안 여행의 효용을 만끽했던 시절을 떠올렸고 여행 기자로 일하며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가, 어떻게 여행을 전달할 것인가를 자문해 왔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떠나는 것 자체가 불가해졌으니 여행의 모든 순간이 아득하기만 하다. 언제쯤 다시 여행의 실재를 경험하고 좌절을 맛보는 여행가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르니 당분간은 지겨워도 방구석 여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 여행 사진을 들춰보는 대신 주변의 사물을 새로이 보는 안목을 키우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과 맛있는 것을 찾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일상의 이면을 직접 대면하고 맞서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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