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패배감을 안겨준 첫 여행
스물여덟에 처음으로 가장 먼 길을 혼자서 떠났다. 런던으로 목적지를 정한 건 당시 김중혁 작가의 소설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중반에 주인공이 런던아이에 감춰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불현듯 내 눈으로 직접 런던아이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명확한 계획도 없이 일단 여름휴가 기간을 맞춰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내친김에 런던아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숙소도 일찍이 잡아 놓았다. 그러고 나니 이제 내게 남은 일은 떠나는 것밖에는 없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가는 길, 제일 먼저 맞닥뜨린 이국적 풍경이라 함은 튜브라고 부르는 런던의 지하철이었다. 그곳은 동굴처럼 어두웠고, 시큼한 악취도 좀 났다. 색이 바랜 의자의 패브릭 시트는 오물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하며 그린 얼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 되니 휴대폰의 신호도 갈피를 못 잡고 버벅거렸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뜻하지 않게 동굴 탐험을 하게 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편함과 불쾌감을 감수해야 했고, 튜브에 관한 청결 상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가이드북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그와 반대로 동굴 밖 도심은 책에서 말한 그대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작품처럼 빛났다. 내심 관광객임을 티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나 또한 서울역에 상경한 촌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당연히 시차도 처음 겪어 봤다. 새벽 4~5시에 깨서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다가 거리에 인적이 보이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고, 오후 3시가 지날 즈음엔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홀로 떠난 첫 여행이었기에 한동안 잠재하던 소심함도 강하게 분출됐다. 런던에서는 슈퍼마켓만큼이나 흔한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 기네스 맥주 한잔을 주문하는 데까지 이틀이 걸렸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엔 분명 시끌벅적한 펍에 한자리 차지하고 런더너들과 축구를 논하며 어울릴 줄 알았는데, 펍을 지날 때면 묵직한 금색 손잡이가 달린 문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밀 수 없는 바위 덩어리처럼 느껴진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두가 서서 맥주를 마시는 통에 펍 안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차 보였고, 건장한 무리의 틈을 뚫고 들어갈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첫날에는 맥주라면 동네 마트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자위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에 움츠러드는 내 모습이 여간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밤새 내면의 갈등을 겪다가 다음날 숙소 근처의 펍이 문을 열자마자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바에 앉아 기네스 한 잔과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한 후, 보라듯이 먹어 치우고 나니 그제야 구겨진 자존감이 약간은 펴진 듯했다.
여행을 잘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길눈이 밝고, 외국어가 유창하고, 부지런하며, 대범하고, 친화력이 좋으면 여행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니면 타고난 여행 유전자를 가져야 할까? 홀로 여행을 떠나본 후에 나는 잠시 동안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여행의 여담을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여행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별로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스러운 일만 기억에 남았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여행 후 다시 런던에서 1년 간 살아보기로 마음먹게 된 건, 남들처럼 여행을 잘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도 약간은 있었으리라.
때로는 말도 통하지 않은 곳에서 불확실한 여정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숙명이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혼자 길을 만들고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게 혼자 하는 여행이다. 꼭꼭 감추고 살아온 치부가 하나씩 드러나고, 실수를 반복하며, 피치 못한 재난 상황에 휘말릴 때마다 이 모든 것이 여행을 잘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자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낯선 세계를 관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처음 맛 본 음식, 끔찍한 악취, 이해할 수 없는 음악,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 여행자를 속이기 위해 작정하고 다가오는 장사꾼. 타인의 타인이 되는 모든 순간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응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이란 아무도 믿을 수 없지만 믿어야만 하는 낯선 세계를 기꺼이 감내하는 자에게만 진정한 효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파리를 처음 여행한 지인이 낯선 외국인들 틈에 끼어 지하철을 타는 게 무서워 일주일 내내 숙소 근처만 맴돌다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홀로 떠난 첫 여행에서 겪은 사사로운 실패담이 불쑥 떠올랐다. 때때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여행의 환상은 예상치 못한 패배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떠나라고 말하지만, 왜 여행자가 마땅히 견뎌야 할 두려움의 무게는 함구하는 것일까? 여행이 유용한 약이 되려면 낯선 두려움도 기꺼이 품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고, 지금도 가끔은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두려움의 무게에 짓눌려 좌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떠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