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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Sep 19. 2022

나의 '출근' 해방일지

경기도민은 아침마다 '퇴직'을 꿈꿉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사람이다
-밥 딜런(Bob Dylan)


여느 아침과 똑같이 알람 소리로 잠을 깬 나는 스스로 얼마나 게으르고 위선적인 인간인가를 자각하는 시험대에 오른다.


 '반차 낼까, 아프다고 까, 지금 안 일어나면 버스 놓친다. 그래 지금이야 으쌰!'


단순한 늦잠 따위로 감히 성공을 운운하자는 건 아니지만, 밥 딜런이 남겼다는 위의 저 말을 책에서 보고 난 이후부터 알람 소리에 기계처럼 일어나 출근하는 내 모습에 연민 같은 걸 느낀다. K직장인이면 무릇 내 시간을 빚져 회사에 받치는 것 정도로 억울해선 안되는데, 이 아침 수면권에 있어서의 촉수는 도무지 둔해지지 않는. 돌이켜보면 10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일보다도 나를 압박한 건 정시 출근이었고, 내가 퇴사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타이밍도 바로 알람 소리에 눈을 떠야 하는 그 때다.


경기도민이 되고  출퇴근이 더욱 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한 해악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기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초반 스토리 대부분은 경기도민 직장인의 현실 고증으로 시작하데, 세 남매를 옥죄는 저마다의 속박은 다르지만 그 공통적 기저에는 고단한 출퇴근 점철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이미 기상한 지 3시간이나 가까워가는데 아직도 회사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아침 출근에 집착하다 보면 다음 연봉 협상 때는 아침잠에 대한 보상도 필요한 게 아닌가에 대한 터무니없는 발상이 든다. 더 나아가면 아니, 왜 잠을 고 또 자도 모자란 아이들에게 0교시나 9시 등교시간을 정해놓고 가하게 굴었던 것인가 의문이 든다(엄마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라 그런 건가요?)


일명 '대퇴사'시대. 공식적 실업률과 별개로 주변에는 모두가 사람이 구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나 또한 급하게 요청할 일이 있을 때마다 퇴사한 사람들부터 연락을 돌리지만, 다들 노는 듯 보여도 그들을 설득시켜 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사자는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 것처럼 고고하게 눈에 드는 사냥감을 기다린다. 물론 저마다의 거절 이유는 타당하다. 시간이 곧 돈인 외주 프리랜서들에겐 선택적 일이 곧 비즈니스니까. 거시적으로 보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단순한 입장 차이다. 내가 회사에 몸을 담을 때는 일이 넘쳐나는데, 막상 프리랜서가 가능한 몸일 때는 일이 나를 등 진다. 이 알고리즘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 일이 넘쳐나 선택적 업무가 가능한 삶을 꿈꿔 왔다. 비교적 프리랜서 작업이 많은 내 업계에선 이런 일들이 나이나 연차를 떠나 비일비재했는데, 사회적 변화가 크게 일면서 너도나도 이제는 어느 업계나 혼자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바야흐로 회사의 배경이나 소속감보다는 개인의 경쟁력을 갖춰 빠르게 돈을 더 많이 버는 게임이 된 것이다. 이를 빠르게 깨달은 입들의 근속 근무 점점 줄어들고 퇴사를 넘어 퇴직을 꿈꾸는 시대가 오고 있다(요즘은 애초에 취업보단 창업을 더 선호한다지).


라테 좀 마셔보자면, 내가 신입 때는 업계 선배들 30대 중후반이 되면 갈라지는 행보에 내 운명을 맡겨야 했다. 어떤 선배는 직급이 오를수록 실무가 아닌 회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윗분들 지시를 영 못마땅해하면서도  일에 존감을 담아 몸을 받쳤던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회사를 박차고 나가  '독립' '사업'이라는 것으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다. 더 이상 마감은 지긋지긋하다며 6시 칼퇴가 보장된 회사에서 새로운 만족을 찾은 선배도 있었다. 어느덧 그들의 나이가 된 나는 점점 조급함이 몰려왔다. , 이제 마이 턴! 어떤 선택지를 를 것인가!


회사에 소속되는 한 대전제는 변함이 없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고 연차가 차오를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회사에 머물러 관리직이 되느냐. 점핑 이직으로 커리어에 배팅을 하던가. 프리랜서가 되어 선택적 일을 하던가. 아님 일찍이 치킨집을 차리던가. 선택이 어려울 땐 버리는 카드를 먼저 고르는 것도 방법. 일단 관리직이 되는 건 내 성향과도 안 맞을뿐더러, 그들이 받는 고액 연봉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떠안는 건지 알기에 내 그릇에 그걸 담았다가는 쉽게 깨질 거라는 게 자명하다. 세상도 그렇지만 회사에서도 결코 대가 없는 호의와 공짜는 없다.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했냐고? 이제 곧 회사에 도착할 시간이라, 일단 오늘의 선택지는 지문을 찍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또다시 밥 딜런의 문장을 떠올리겠지. 사실 나도, 여러분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고민의 고리를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 우물쭈물할 시간에 내가 봐온 선배들처럼 새로운 노선을 빠르게 정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바깥 세상이 보아는 유리문 앞에 서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성이기만 하는 그림자가 곧 나고, 당신이고 그리고 이미 그곳에 있었을 지난 나의 선배였으리라. 나는 과연 이 문을 힘껏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아님 바깥 세상을 등지고 회사의 한 자리를 지키며 버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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