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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May 27. 2019

여행에서 만난 제3의 인생들

삶을 주관식으로 씁디다

"라테 이즈 홀스"


최근 새롭게 배운 신조어다. 꼰대의 여음구인 "나 때는 말이야"를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받아친다고 한다. 매일같이 창궐하는 줄임말에 뒤쳐질수록 어쩐지 꼰대의 범주에 안착해가는 기분이다. 스물일곱 이후부터 나이 세기를 멈춘 나는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잠시 버퍼링에 걸린다. "그러니까, 올해가 몇 년도죠?" 그러다 의도치 않게 한 두 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 언저리쯤 될 거예요." 써놓고 보니 참 성 없는 대답처럼 들린다. 그런데 대체 나이는 왜 궁금한 걸까?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라테 이즈 홀스…..


1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 몸에 새긴 배움 중 하나는 타인의 사생활을 묻지 않는 거다. 특히 나이와 결혼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조심한다. 설사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더라도, 지나온 과거를 캐묻지 않고, 어떤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아왔든 크게 놀라지 않는다. 당시에는 신사의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한 관문 같았지만, 따지고 보면 타인에게 내 잣대를 들이대며 훈수를 둘 만큼 선비 같은 삶을 산 것도 아었다. 그러나 몸에 주요 감각이 퇴화하면 대체 감각이 예민하게 발동는 법이다. 입을 닫고 나니 타인을 면밀히 관찰하는 습관이 다. 함께 일상을 부딪치며 관찰하고 실험하는 인간 탐구. 그 학습의 최적의 장은 역시나 여행이었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가 가득 차르는 감동, 위로 순간 금없이 찾아온다. 거리의 악사가 나를 위한 음악을 연주하고, 형용할 수 없는 자연물이 마치 내가 이곳에 오길 몇 백 년 동안 기다렸다는 듯 웅장한 장면을 연출 때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그랬다.


런던 생활이 얼마 안 됐을 무렵, 막 사귀기 시작한 다국적 친구들은 파리 오르세 박물관의 규모만큼 나를 당황시켰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태연한 듯 그들을 관찰했지만, 생김새와 언어,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매 챕터마다 갈등이 뒤섞이는 소설책 같았다. 9살 때부터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웠다는 나폴리 출신의 변호사, 자국민이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소매치기를 당한다는 콜롬비아 의사, 잘 나가는 스타일리스트를 때려치우고 피렌체에 살면서 뜬금없이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는 일본인 주부 등. 여행에서 스친 만남은 더 가관이다. 리스본에서 알게 된 어떤 커플은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도시를 찾기 위해 3개월째 여행 중이었다. 돈이 떨어지자 여자는 하우스키퍼로 일하고 남자는 클럽에서 기타를 치며 여행 자금을 모으는 중이었다. 각자의 인생에서 스쳐갈 어떤 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나는 조물주가 기획한 1권의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책 속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혈연단신 런던에 온 아시아 여자의 이야기는 한없이 지루한 문장으로 기록될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들과 공유한 삶의 접점에서 우리가 나눈 위로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이나 가망 없는 꿈, 통장 잔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밤새 술과 담배를 즐기며 건강에 대한 염려는 애써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지금, 오늘을 살아내며 이곳에서의 기쁨을 찾으면 그만이으니까. 나에겐 서점에 떠도는 ‘그만하면 됐어’ ‘쉬어가도 괜찮아’ 같은 문장 대신 낯선 곳에서 찰한 타인의 삶씬 큰 위로가 됐다.


자체 방학을 마치고 개학 준비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인생의 답안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어 놓았다. 남이 정해놓은 보기를 지우고, 나만의 답을 그럭저럭 써 내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막힐 때가 있는데, 예를 들면 ‘꼰대 아니면 인싸’ ‘백수 아니면 직장인’ 같은 한국식 이분법적 분류에 빠질 때가 그렇다. 보통은 그때마다 새로운 답을 찾으러(간다는 핑계로) 여행을 떠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제3의 분류로 살고 있는 다국적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힌트를 얻는다. 며칠 전에는 일이 재미없어 취미로 발리볼을 가르다는 로마 친구, 어설픈 영어 실력이었지만 어엿하게 글로벌 항공사에 취직한 홍콩 친구, 한국에 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타이완 가이드가 지금 하동에서 미국인 보스와 차 밭 투어 중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시간 되면 다른 도시에서 잠깐 살아보는 건 어때?”


몸이 아파 잠시 휴직하고 노르웨이에 있다는 리스본 친구의 뒤늦은 메시지는 잠시 내 삶을 환기시킨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의 삶은 이분법에 속하지 못해 서성이는 우리에게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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