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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Jun 10. 2019

삶을 리셋하러 호텔에 갑니다

호캉스를 왜 가냐고 물으신다면

지난주, 지인이 베푼 은혜로 아난티 클럽 회원만 묵을 수 있다는 부산 해운대 아난티 레지던스 숙박 찬스를 얻었다. 날짜 변경 불가. 단서처럼 붙은 저 말이 직장인에게 꽤나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직장인이 스스로에게 고취시키는 소속감과 우월감, 책임감과 희생이 엄청나다는 거다. 이는 거시적으로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들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꽤나 서글픈 현상이다. 내 주변의 직장인들만 봐도 입으로는 내일 당장 그만둘 것처럼 말하지만, 내일 당장 하루 쉬는 것도 말 못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누군가와 동행하는 여행을 도모하려고 보니,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고작 세 손가락에 꼽혔다.


모두가 예상하고,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첫 번째 동행자 후보는 남편. 하지만 그는 제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잠만 자는 곳’에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논리가 확고한 사람이다. 목석같이 굴게 뻔한데, 굳이 데려가 (지난번처럼) 서로가 귀찮은 여정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일단 대기. 두 번째 동행자 후보는 대학 친구. 결혼 전 일찍이 남편에게 나와의 단독 여행을 허락받은 친구는 여행 경비의 절반을 숙소에 투자하는 ‘호충’ 여행자다. 사실 내 주변에는 좋은 호텔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애초에 부산이 고향인 그녀와의 동행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세 번째 동행자 후보는 부산의 맛집을 꿰뚫고 있는 여행책 저자. 그녀 또한 호텔이라면 앞뒤 안재고 기꺼이 동행할 여행자(한때 호텔에서 잠시 일했던 그녀는 지금도  습관처럼 침구에 칼 주름을 잡는다.)이지만, 안타깝게도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일군의 직장인이었다. 떠나기 직전까지 나의 동행자는 뒤집혔다 엎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두 번째 후보가 낙점됐다.


런던에서 가방 1개만 덜렁 메고 매달 공항을 들락거렸던 시절이 떠올라, 런던에서 파리를 가듯 그 시절의 프라이탁 가방을 어깨에 메고 기차에 올랐다. 어렴풋한 기억마저 사라질 정도로 오랜만에 온 부산역은 생경했다. 실제로 파리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나는 지하철역을 한참 찾아 헤맸고 택시 기사님의 사투리에 귀가 먹먹했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소설가 김영하는 삶의 안정감을 호텔에서 찾는다고 말한다. 나는 호텔에 대한 동경은 별로 없지만, 그가 얘기하고 싶은 그 안정감에는 크게 동감한다. 1년 치의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런던에 처음 입국했을 때, 매 순간 다른 언어로 쓰인 입국심사장의 도장을 받기 위해 기다릴 때, 호텔 리셉션 직원이 어설픈 발음으로 내 이름을 확인해줬을 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이방인이 하룻밤 동안 소속감을 갖게 되는 순간.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린 이방인은 그저 감사다. 그의 말대로 여행자들은 안정된 직장과 평화로운 집안이 아닌, 낯선 곳에서 그렇게 변태적인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아난티는 구석구석 참 예쁘덥디다.

또다시 어쨌거나, 예전처럼 호텔 방 안에 안정적으로 짐과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루틴을 시작다. 호텔 주변을 휘적거리다가 ‘디스 이즈 비어’라는 수제 맥주 간판에 이끌려 들어다. 낮술은 여행자의 특권이 아니던가. “혹시... 혼자세요?” 종업원은 내가 ‘잘못’ 들어온 것으로 착각했는지 한참을 무시하다가 묻는다. 나는 뭐가 ‘잘못’ 된 건지를 그제야 깨닫고 큰 소리로 “네 혼잔데요.”라고 대답다. 맥주와 늦은 점심으로 타코 샐러드를 하나 시켰더니 한 끼에 3만 원이 넘는 식사가 차려졌다. 값비싼 호텔에 체크인되는 순간 나는 이곳을 뉴욕쯤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설마 하는 목소리로 ‘혼자’라고 묻는 종업원이 적잖이 낯설었고(어느 도시에서도 혼자 온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한 끼에 3만 원이 넘는 물가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고국 아니, 내가 살던 어제까진 한 끼에 1만 원이 넘지 않는 식사를 주문했지만, 오늘은 한 끼에 3만 원을 아무 죄책감 없이 지불한다. 그것은 고급 호텔이 하루 동안 부여한 우월감이고, 어제까지의 삶과의 단절이었다.


호텔에 입성한 사람들은 동떨어진 세계를 경험한다. 이방인은 핫플레이스를 찾아 ‘이터널 저니’에 ‘방문’하지만,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개인 서재인엘레베이터를 타고 수시로 들락거린다. 지척에서 유명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고, 수제 맥주가 항시 대기 중이며, 호사스러운 수영장과 스파의 옵션을 고민한다. 언제든 불편함을 해소해줄 컨시어지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가져다주는 직통 전화도 제공 받는다. 김영하가 책에서 말하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으로부터 벗어나 어제까지의 삶을 잠시 지우는 경험. 여행자는 값비싼 돈을 지불하고 잠시나마 고달픈 삶을 벗어던질 수 있는 입장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나 또한 우연히 손에 쥔 1등석 티켓으로 열차의 1등 칸에 앉은 승객이었다. 꼬리칸의 삶을 잊고 1등 칸의 삶을 즐겼다. 아무도 없는 인피니트 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전복죽을 퍼먹으며. 퇴장 시간이 정해진 자유이용권의 효력이 다할 때까지 온전히 그곳의 삶을 누렸다. 마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처럼.


“아, 공기마저 다른 것 같아.”


호텔 출구를 나서자마자 친구가 허망한 듯 내뱉었다. 거세게 부는 바닷바람은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후덥지근 도심의 바람은 잠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평화로운 울타리에서 온전한 이틀을 보내고,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열차 안, 막차 시간을 체크하고 남겨진 집안일을 걱정한다.


또 한번 어찌됐든, 그날 이후 나는 호텔이 잠만 자는 숙소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값비싸지만, 값진 경험은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동경으로 치환된다. 맛집을 찾아 훌쩍 떠나 듯 숙소를 찾아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일. 조만간 나의 고달픈 삶을 지우고 싶은 어느 날 한번 더 저질러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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